현대 영화의 위대한 전당에서 기예르모 델토로만큼 독보적이고 애정 어리게 빚어낸 공간을 차지하는 인물은 드물다. 그는 영화감독이자 작가, 예술가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연금술사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어떤 이들이 “비천한 재료”라고 부를 만한 것들, 즉 괴물, 유령, 곤충, 그리고 공포 장르의 소품들을 가져다가 이야기라는 금으로 연성해내는 독특한 형태의 영화적 연금술을 실천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깊고 확고한 신념의 증거다. 바로 괴물은 “불완전함의 수호성인”이며, 그로테스크함 속에 독특하고 시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의 경력은 저예산 공포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명성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발전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평생에 걸친 일관된 프로젝트, 즉 영화적 ‘경이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을 구축하는 것이다. 각 영화는 이 방의 새로운 서랍이며, 동화가 역사의 잔혹한 기계와 충돌하고,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들이 종종 뿔이나 아가미, 태엽 심장을 가진, 세심하게 설계된 세계를 드러낸다. 이 확고한 비전은 그를 업계의 최고봉으로 이끌었고, 말 못 하는 여성과 강(江)의 신의 사랑에 관한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나무 소년에 관한 스톱모션 우화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안겨주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여정은 할리우드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의 비전을 바꾸지 않고, 순수한 예술성과 신념으로 할리우드가 마침내 그가 줄곧 지녀온 심오하고 괴물 같은 비전을 높이 평가하게 만든 한 감독의 이야기다.
그림자와 신앙 속에서 벼려진 유년 시절
델토로의 모든 예술적 비전의 원재료는 그가 1964년 10월 9일에 태어난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거리와 집에서 채굴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깊고 종종 모순적인 영향들이 뒤섞인 도가니였다. 그는 엄격하고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할머니의 손에 자랐는데, 할머니의 신앙은 풍부한 도상학의 원천인 동시에 뿌리 깊은 공포의 원인이었다. 할머니는 그가 판타지와 공포에 점차 매료되는 것을 창의적인 불꽃이 아닌 영적인 병으로 보았다. 그의 괴물과 악마 그림을 못마땅하게 여긴 할머니는 그의 영혼을 정화하겠다며 어린 소년에게 두 차례나 구마 의식을 행하고 성수를 뿌렸다. 추가적인 속죄의 형태로, 그녀는 그의 신발에 금속 병뚜껑을 넣어 발에 피가 나게 했는데, 이는 종교적 죄책감의 혹독하고 물리적인 표현이었다.
이러한 병적인 가톨릭 신앙은 도시 자체의 여과되지 않은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델토로는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죽음을 접했다고 말하며, 시체 안치소, 교회 지하 묘지, 그리고 사고나 폭력 사건 후 길거리에서 실제 시신을 본 생생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신성한 것과 불경한 것이 끊임없이 본능적인 대화를 나누는 이 환경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보지 못하는 정신을 형성했다. 그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상의 세계로 물러나 성인들이 아닌 괴물들에게서 위안을 찾았다.
그의 창조적 충동은 여덟 살 무렵 아버지의 슈퍼 8mm 카메라로 실험을 시작하면서 분출구를 찾았다. 그의 첫 영화들은 <혹성탈출> 장난감과 다른 집안 물건들을 주연으로 내세웠으며, 이미 어둡고 희극적인 감성이 깃들어 있었다. 한 주목할 만한 단편 영화에는 세계 정복의 야망을 품은 “연쇄 살인마 감자”가 등장했는데, 이 감자는 가족을 살해한 후 차에 무참히 깔려 죽는다. 이 초기 작품은 이미 공포의 관습을 가지고 놀며 섬뜩함 속에서 기묘하고 멋진 힘을 발견하는 정신을 보여준다. 델토로의 후기 작품의 핵심 갈등, 즉 완고하고 잔인한 제도와 영혼이 있지만 오해받는 “괴물” 사이의 충돌은 바로 이 어린 시절의 직접적인 외현화였다. 그는 단순히 할머니의 신앙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 고딕 양식의 화려함을 차용하여 경외와 공포의 감각을 자신만의 새로운 개인 신화로 옮겨왔다.
장인의 도제 시절: ‘네크로피아’에서 <크로노스>까지
델토로가 어린 시절의 취미 생활에서 전문 영화감독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실용적인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했다. 그는 과달라하라 대학교 영화학과에 입학하여 앨프리드 히치콕에 대한 전기를 첫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교육은 교실이 아닌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엑소시스트>의 획기적인 효과를 창조한 전설적인 아티스트 딕 스미스를 찾아가 특수 효과와 분장을 배웠다. 이 멘토링은 그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10년 동안 델토로는 이 기술에 전념하여 특수 효과 분장 디자이너로 일했고, 마침내 과달라하라에 자신의 회사 ‘네크로피아’를 설립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알폰소 쿠아론, 엠마누엘 루베즈키와 같은 미래의 협력자들과 함께 <오라 마르카다> 같은 멕시코 TV 쇼에서 실력을 연마했으며, 과달라하라 국제 영화제를 공동 설립했다.
영화의 마법이 어떻게 물리적으로 조각되고, 주조되며, 생명을 얻는지에 대한 이 깊고 촉각적인 이해는 그의 감독 스타일의 초석이 되었고, 그의 환상적인 창조물에 실체적이고 본능적인 무게감을 부여하는 실물 효과에 대한 평생의 선호를 심어주었다. 이 집중적인 도제 시절은 1993년 그의 장편 데뷔작 <크로노스>로 절정에 달했다. 델토로가 일부 자금을 댄 약 2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장인으로서의 그의 여정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실물 효과 전문성에 의해 자금을 지원받고 그 위에 세워진 영화였다. <크로노스>는 400년 된 곤충 모양의 장치를 발견한 노년의 골동품상이 뱀파이어처럼 피를 갈망하는 대가로 영생을 얻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는 정교한 시계 장치, 곤충 이미지, 비극적이고 동정심을 자아내는 괴물, 그리고 가톨릭 상징주의의 깊은 원천과 같은 델토로의 특징적인 모티프를 세상에 소개한, 완전히 무르익은 포부의 선언이었다. 또한 이 영화는 장치를 쫓는 잔인한 미국인 역을 맡은 배우 론 펄먼과의 첫 협업이기도 했다.
<크로노스>는 멕시코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아리엘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9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어서 칸 영화제 국제 비평가 주간에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에 놀랍도록 독창적인 목소리의 등장을 알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제한적으로 개봉되어 고작 621,392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상업적으로는 미미한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는 그가 할리우드 시스템의 심장부로 나아가면서 그의 경력의 다음 단계를 정의하게 될 패턴이었다.
불의 시련: <미믹>과 할리우드에서의 고난
<크로노스>의 국제적 호평에 이어, 델토로는 1997년 미라맥스의 장르 레이블인 디멘션 필름스가 제작한 SF 공포 영화 <미믹>으로 미국 스튜디오 시스템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경험은 그에게 트라우마가 될 불의 시련이었다. 그는 프로젝트의 모든 측면에 간섭한다고 느꼈던 프로듀서 밥 와인스타인, 하비 와인스타인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스튜디오는 그의 줄거리, 캐스팅, 톤에 대한 결정을 의심하며, 델토로가 구상했던 분위기 있는 괴수 영화보다 더 관습적이고 “무서운” 영화를 요구했다. 유령 같은 하얀 곤충이 등장하는 원래 콘셉트는 거대한 돌연변이 바퀴벌레로 바뀌었는데, 델토로는 이 변화가 자신의 영화를 “거대한 바퀴벌레 영화”로 만들까 봐 두려워했다.
창작을 둘러싼 갈등은 너무나 격렬해져서, 하비 와인스타인이 토론토 촬영장에 쳐들어와 델토로에게 연출법을 지시하고 나중에는 그를 해고하려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시도는 주연 배우 미라 소르비노의 중재 덕분에 무산되었다. 델토로는 그 후 <미믹> 제작을 자신의 인생 최악의 경험 중 하나, 즉 자기 아버지의 납치 사건과 비교하며 “끔찍하고, 끔찍하고,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결국 영화의 극장판을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2011년 감독판을 출시하여 원래 의도 일부를 복원할 수 있었다. 이 시련은 그를 미국 영화계에서 거의 멀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미믹>으로 인한 직업적 트라우마는 그의 기술에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튜디오에 의해 작품이 재편집되고 통제되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델토로는 창조적 자기 보존의 한 형태로 의식적으로 특정한 감독 스타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쉬운 재편집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촬영하기 시작했으며, 세트장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복잡하고 종종 긴 카메라 움직임을 사용했다. 현재 그의 예술성의 특징으로 칭송받는 이 “유영하는 카메라” 스타일은 계산된 생존 전략으로 탄생했다. 그것은 카메라를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적 캐릭터로 만들고, 이야기의 논리를 샷의 시각적 언어에 너무 깊이 내재시켜 편집실에서 쉽게 해체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미믹>의 고통은 그가 미래의 걸작들을 만들게 될 바로 그 도구들을 벼려냈다.
뿌리로의 회귀: <악마의 등뼈> 속 스페인 고딕
할리우드에서의 시련으로 지친 델토로는 전략적이고 영적으로 필요한 후퇴를 감행했다. 그는 뿌리로 돌아가 자신의 제작사 ‘테킬라 갱’을 설립하고 스페인과 멕시코 간의 스페인어 합작 영화에 착수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2001년 작 <악마의 등뼈>로, 깊이 개인적인 고딕 유령 이야기이자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의 주제적 청사진이 된 창의적 재충전의 계기였다.
이 영화는 전설적인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그의 형제 아구스틴이 그들의 회사 ‘엘 데세오’를 통해 제작했다. 이 파트너십은 <미믹>의 독에 대한 완벽한 해독제임이 증명되었다. 델토로에게는 완전한 창작의 자유가 주어졌는데, 이 개념은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그가 최종 편집권을 요구했을 때,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진심으로 의아해하며 “하지만 당연히, 결정은 당신의 몫이죠!”라고 답했다. 이 보호된 환경 덕분에 델토로는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이전 영화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는 심지어 <크로노스>보다 먼저 썼던 각본을 부활시켰는데, 이는 스페인 내전 마지막 해인 1939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운영하는 유령 들린 고아원으로 보내진 어린 소년 카를로스를 따라간다. 그곳에서 그는 살해된 아이의 유령뿐만 아니라 관리인 하신토가 상징하는 탐욕과 폭력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악과도 마주한다. 영화는 초자연적 공포와 역사적 비극을 능숙하게 융합하며 스페인 내전을 델토로가 나중에 “유령 엔진”이라 부를, 그 유령들이 현재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심오한 역사적 트라우마로 확립했다.
<악마의 등뼈>는 분위기와 은유의 걸작으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델토로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그의 타협 없는 비전이 강력하고 울림 있는 영화를 낳을 수 있다는 확인이었다. 그는 이 영화를 나중에 만든 <판의 미로>의 “형제 영화”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후자의 여성적 에너지에 대한 남성적 대응물이라는 의미였다. <악마의 등뼈>의 창의적 성취와 비평적 성공은 그의 자신감을 회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대작을 위한 주제적, 역사적 토대를 마련한 필수적인 예술적 치유 과정이었다.
주류 시장 정복: <블레이드 2>와 <헬보이> 시리즈
<악마의 등뼈>가 안겨준 창작의 승리로 힘을 얻은 델토로는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판을 짰다. 그는 뱀파이어 슈퍼히어로 속편 <블레이드 2>(2002)의 감독을 맡아, 자신의 고딕적이고 괴물 같은 미학을 고출력 블록버스터 액션과 결합시켰다. 낭만적인 “고뇌하는 빅토리아 시대 영웅”이라는 틀에 박힌 캐릭터에 싫증이 난 그는 뱀파이어를 다시 무섭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영화는 1억 5,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의 독특한 감성이 주류 프랜차이즈 안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갈라진 턱을 가진 끔찍한 “리퍼” 같은 정교한 크리처 디자인, 분위기 있는 조명, 그리고 실물 효과에 대한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애정을 코믹북 영화의 세계에 가져와, 많은 팬들이 3부작 중 최고점으로 꼽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성공은 그에게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프로젝트, 즉 마이크 미뇰라의 코믹북 <헬보이>의 각색을 추진할 수 있는 업계 내 영향력을 안겨주었다. 재치 있고 붉은 피부를 가진 악마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여정은 델토로의 변함없는 의리와 예술적 고집으로 점철된 험난한 과정이었다. 7년 동안 그는 프로젝트에 대해, 그리고 특히 주연 배우 선택에 대해 주저하는 스튜디오들과 싸웠다. 델토로는 오직 한 배우만이 그 캐릭터의 영혼을 구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바로 그의 친구이자 빈번한 협력자였던 론 펄먼이었다. 그는 다른 누구와도 이 영화를 만들기를 거부했으며, 자신이 영화의 심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타협하느니 프로젝트 전체를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의 끈기는 결실을 맺었다. <헬보이>는 2004년에 개봉했고, 2008년에는 더욱 환상적인 속편 <헬보이 2: 골든 아미>가 뒤를 이었다. 이 영화들은 델토로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생생한 쇼케이스다. 숨 막히는 실물 효과와 크리처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중 다수는 그의 개인 노트에서 직접 탄생했다. 그는 이러한 프랜차이즈 영화에 고용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독립 작품에 쏟았던 것과 똑같은 작가적 열정으로 접근했다. 그는 폭발적인 액션과 진솔한 감동, 그리고 캐릭터 기반의 유머를 균형 있게 조율하며, 자신의 괴물 영웅과 그가 찾은 “괴짜” 가족을 인간적으로 그려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델토로는 예술 영화와 멀티플렉스 사이의 경계를 효과적으로 허물었고, 그에게 있어 동정심을 자아내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예산과 상관없이 가치 있는 작업임을 증명했다.
걸작: <판의 미로> 속으로
2006년, 기예르모 델토로는 그의 경력을 정의하고 세계 최고의 영화적 비전가 중 한 명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할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원제: El laberinto del fauno)를 세상에 내놓았다. 스페인과 멕시코의 국제 합작 프로젝트였던 이 영화는 너무나 개인적인 작품이어서, 델토로는 완성도를 보장하기 위해 자신의 감독료를 투자했다. 이 영화는 그의 삶과 작품을 형성해 온 모든 주제, 영향, 그리고 집념의 궁극적인 종합체다.
그가 꼼꼼하게 기록한 노트에 20년간 모아온 아이디어, 그림, 줄거리 조각들에서 비롯된 이 이야기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지 5년 후인 1944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어린 소녀 오필리아가 임신한 어머니와 함께 그녀의 잔인한 새아버지인 팔랑헤당 대위 비달이 지휘하는 시골의 군사 전초기지로 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새로운 삶의 잔혹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필리아는 고대 미로와 신비로운 판(Faun)을 발견하고, 판은 그녀가 지하 세계의 잃어버린 공주라고 말해준다. 왕국을 되찾기 위해 그녀는 세 가지 위험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판의 미로>는 그림 형제 풍의 어두운 동화와 전후 프랑코 독재 스페인의 가차 없는 잔혹함을 훌륭하고도 가슴 아프게 엮어낸 작품이다. 환상의 세계는 현실로부터의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오필리아가 현실의 공포를 처리하고 직면하는 은유적인 렌즈 역할을 한다. 선택과 불복종이라는 주제가 핵심이다. 오필리아는 비달이나 판과 같은 권위적인 인물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그녀 자신의 타고난 도덕적 나침반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험받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창조물인 아이를 잡아먹는 ‘창백한 남자’는 파시즘과 이에 동조한 가톨릭 교회의 제도적 악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다.
영화는 2006년 칸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고, 그곳에서 22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영화제 역사상 가장 긴 환호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영화는 1,900만 달러의 적은 예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8,3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고, 광범위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델토로의 각본상을 포함하여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촬영상, 미술상, 분장상 등 3개 부문에서 오스카를 수상했다. 이 영화는 그의 모든 예술적 정체성을 완벽하게 증류해낸 작품이자, 그의 전 생애가 쌓아 올린 결과물이었으며, 그에게 앞으로의 모든 창작 활동을 위한 막대한 창의적 자본을 안겨주었다.
제작자이자 협력자로서의 작가주의 감독
<판의 미로>가 거둔 기념비적인 성공 이후, 델토로의 영향력은 그 자신의 감독 작품을 훨씬 뛰어넘어 확장되었다. 그는 현대 판타지 서사의 중심적인 생성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굳혔고, 새로 얻은 영향력을 사용하여 다른 영화감독들을 지지하고 여러 플랫폼에 걸쳐 자신의 창의적인 세계를 확장했다. 그가 제작자로서 하는 일은 부업이 아니라, 그의 세계 구축 충동의 직접적인 연장선이다. H.P.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에서>를 각색하려던 그의 유명한 미완의 역작처럼, 상상력을 사로잡는 모든 이야기를 직접 감독할 수 없기에,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하여 주제적으로 일치하는 세계들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그는 J.A. 바요나의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2007)이나 앤디 무스키에티의 <마마>(2013)와 같은 호평받은 스페인어 공포 영화에서 제작자이자 멘토 역할을 하며 그가 사랑하는 장르 내에서 새로운 인재를 양성했다. 또한 그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핵심적인 창작 동력이 되어 <장화신은 고양이>(2011), <가디언즈>(2012), 그리고 <쿵푸 팬더> 속편들과 같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그의 영향력은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와 텔레비전으로도 뻗어 나갔다. <호빗> 영화 각색의 감독으로 내정되었다가 결국 물러났지만, 그는 피터 잭슨의 3부작 모든 영화에서 공동 각본가로 이름을 올리며 중간계의 서사를 형성했다. 그는 척 호건과 공동 집필한 뱀파이어 소설 3부작을 기반으로 한 FX 시리즈 <스트레인>(2014-2017)의 공동 제작자이자 총괄 프로듀서로 텔레비전에도 진출했다. 넷플릭스를 위해서는 <트롤헌터>, <쓰리 빌로우>, <위자드> 시리즈를 아우르는 방대하고 사랑받는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 <아카디아의 전설>을 만들었다. 이러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델토로는 어둠의 판타지라는 더 큰 공유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큐레이팅하며, 자신의 이름과 자원을 사용하여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훨씬 더 큰 규모로 자신의 ‘경이의 방’을 구축하고 있다.
비범한 사랑 이야기: 오스카의 모양
2017년, 기예르모 델토로는 그에게 업계 최고의 영예를 안겨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원제: The Shape of Water)을 감독했다. 영화의 시작은 어린 시절의 한 기억에 있었다. 바로 <해양 괴물>을 보면서 괴물과 여주인공이 사랑을 이룰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수십 년 후, 그는 그 소원을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화 속에서 현실로 만들었고, 이는 그의 가장 찬사받는 작품이 되었다.
1962년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비밀 정부 연구소의 말 못 하는 청소부 여성 엘라이자 에스포지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조용한 고립 속에서 살던 그녀의 삶은 연구소의 가장 민감한 자산, 즉 아마존 강에서 포획된 양서류 인간형 생명체를 발견하면서 송두리리째 바뀐다. 그녀가 그 생명체와 조용한 유대를 형성하면서, 잔인한 정부 요원이 그를 해부하려는 음모를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소외된 이들에게 바치는 아름답고 우울한 찬가로, 엘라이자가 찾은 가족—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게이 이웃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동료—은 그 시대의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한다. 비교적 적은 예산인 1,950만 달러로 제작된 <셰이프 오브 워터>는 196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혼란스러운 시대를 위한 동화”로 사용하여 오늘날의 사회적, 정치적 불안을 논하는, 분위기와 감정 표현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며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이후 비평가들의 찬사와 함께 시상식 시즌의 강력한 주자로 떠올랐다. 영광의 밤은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찾아왔다. 13개 부문에 최다 노미네이트되었던 이 영화는 미술상, 음악상, 델토로에게 감독상을, 그리고 모두가 탐내는 작품상까지 총 4개의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수십 년 동안 장르 영화는 주요 시상식에서 대부분 기술 부문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 승리로 아카데미는 델토로가 평생 주장해 온 논리를 완전히 받아들였다. 즉, 괴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 여성과 ‘물고기 인간’ 사이의 로맨스가 어떤 전통적인 드라마만큼이나 심오하고 예술적이며, 업계 최고의 영예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비천한 재료”가 기득권의 눈에 연금술처럼 영화적 금으로 변모한 것이다.
진화하는 비전: 누아르, 애니메이션, 그리고 미래
오스카 수상의 영광 이후, 델토로는 예술가로서 계속해서 진화하며 새로운 장르를 탐험하는 동시에 자신의 가장 오래된 열정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2021년, 그는 초자연적 요소가 없는 첫 장편 영화라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나이트메어 앨리>를 개봉했다. 윌리엄 린지 그레셤의 1946년 소설을 화려하고 암울하게 각색한 이 영화는 인간의 야망과 타락에 대한 순수하고 어두운 탐구이며, 고전 필름 누아르 장르에 대한 그의 숙련도를 보여준다. 눈부신 프로덕션 디자인과 브래들리 쿠퍼의 압도적인 연기로 이 영화는 작품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4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그의 예술적 역량이 판타지 영역을 넘어선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어서 그는 10년 이상 구상해 온 프로젝트,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2022)를 선보였다. 자신의 첫사랑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 그는 고전 동화를 어린이 이야기가 아닌,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불복종에 관한 어둡고 심오한 우화로 재해석했다. 이 영화는 수공예적인 아름다움과 성숙하고 반파시스트적인 주제로 찬사를 받은 기술적, 감정적 경이로움이었다. 영화는 시상식 시즌을 휩쓸었고, 델토로에게 이번에는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이라는 또 다른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이 승리는 감독에게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길을 확고히 해주었다. 그는 몇 편의 실사 영화를 더 만든 후, 남은 경력을 주로 애니메이션에 바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가장 순수한 예술 형태”이자 가장 큰 창의적 통제력을 제공하는 매체로 여긴다. 어린 시절 슈퍼 8mm 영화에서 시작되어 스튜디오의 간섭이라는 트라우마로 굳어진, 세심한 세계 구축에 집착하는 영화감독에게 스톱모션은 최종 개척지다. 그것은 감독의 손길이 말 그대로 모든 프레임에 닿아 있는 유일한 매체이며, 그의 의지의 직접적이고 타협 없는 표현이다. 이러한 전환은 그의 여정을 완결 짓는다. 과달라하라에서 장난감을 움직이던 소년에서, 세계적인 무대에서 자신의 인형을 움직이는 거장으로 말이다.
평생의 열정을 부활시키다: <프랑켄슈타인>
2025년, 델토로는 평생의 예술적 집념이 집대성된 프로젝트인 <프랑켄슈타인>을 공개할 예정이다. 델토로에게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장르의 고전이 아니라 개인적인 종교와도 같다. 그는 어린 시절 보리스 칼로프가 연기한 괴물을 보고 처음으로 “성인이나 메시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 깊은 개인적 연결은 수십 년 동안 메리 셸리의 소설을 각색하려는 그의 열망에 불을 지폈고, 그는 이야기의 전 세계를 적절한 규모로 재구성할 수 있는 올바른 조건을 기다려왔다.
그의 영화에 대한 비전은 전통적인 공포 영화가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적인 이야기”다. 그는 등장인물들이 문화적 캐리커처가 되기 전,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재현하고자 한다. 서사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델토로 자신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부성애와 아들로서의 관계라는 주제를 탐구할 것이다. 영화는 천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에 오스카 아이작, 그의 비극적인 피조물 역에 제이콥 엘로디가 주연을 맡는다. 출연진에는 미아 고스, 크리스토프 왈츠, 찰스 댄스도 포함된다. 영화는 2025년 10월 17일 제한적으로 극장 개봉한 후, 2025년 11월 7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될 예정이다. 델토로는 이 영화를 자신에게 한 시대의 끝이자, <크로노스>부터 현재까지 그의 작품을 정의해 온 미학적, 리듬적, 공감적 관심사들의 장대한 종합이라고 묘사했다.
불완전함의 수호성인
기예르모 델토로의 경력은 독보적이고 깊이 개인적인 비전이 지닌 힘의 증거다. 과달라하라의 괴물에 사로잡혔던 소년에서 현대 우화의 존경받는 거장으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자신의 핵심 신념에 대한 확고한 헌신으로 정의된다. 그는 소외된 자, “타자”, 그리고 불완전한 자들을 꾸준히 옹호하며, 그들 안에서 우리 자신의 결점 많은 인간성을 반영하는 영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의 확고한 반권위주의는 파시즘의 기계 장치를 향하든 교회의 교리를 향하든, 그의 모든 작품에 강력한 기저 흐름으로 흐른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작가주의 감독이며, 그의 주제적 관심사와 독특한 시각 언어는 즉시 알아볼 수 있다. 그의 영화는 어둡지만 희망적이고, 그로테스크하지만 시적이며, 동화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헤쳐 나가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라는 깊은 이해 위에서 작동한다.
기예르모 델토로는 단순히 괴물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필사적으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의 수호성인으로 여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괴물 같고 마법 같은 모습에 아름답도록 기묘하고 깊이 공감하는 거울을 들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