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거부의 미학: 생산의 압박을 멈추고 부채의 사슬을 끊어내는 2026년의 예술

MIT List Visual Arts Center에서 열리는 최신 그룹전 Performing Conditions: Artistic Labor and Dependency as Form은 창작 활동과 경제적 부채 사이의 필연적인 얽힘을 심도 있게 파고든다. Ghislaine Leung과 Constantina Zavitsanos를 포함한 25명의 예술가들은 거부와 의존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생산 지상주의 시대 속 현대 창작자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한다.
Lisbeth Thalberg

갤러리의 공기는 보이지 않는 의무의 무게로 짓눌린 듯 무겁다. 이곳에 흐르는 정적은 평화롭기보다는, 의도적이고 고된 철수의 결과물에 가깝다. 한쪽 구석에서는 베이비 모니터가 먼 방의 저주파 소음을 내뱉으며 관찰이라는 행위를 감시의 한 형태로 변모시킨다. 벽면은 단순히 오브제를 지탱하는 것을 넘어, 법적 합의의 긴장감과 수행되었거나 억제된, 혹은 전용된 노동의 유령들을 머금고 있다. 흔적의 부재가 납 조각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오는 공간이다.

오늘날 예술가의 형상은 고독하게 오브제를 빚어내는 낭만적인 창조자에서 계약의 포로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 풍경 속에서 독립적인 창작자라는 개념은 허구로 드러나며, 그 이면에는 역사적 부채와 제도적 감시의 복잡한 그물이 자리 잡고 있다. 전시 Performing Conditions는 이러한 진화를 추적하며, 모든 것이 화폐화되는 시대에 가장 유의미한 창조적 행위는 더 이상 생산이 아니라 자신의 소진과 거부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소진의 상태를 Constantina Zavitsanos의 메모리폼 매트리스 토퍼보다 더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There doesn’t seem to be anyone around (Host)라는 제목의 이 오브제는 누렇게 변색된 합성 고분자 사각형 덩어리로 벽에 기대어 있다. 그 표면은 5년 동안 공유된 수면의 지형도이자, 인간 신체의 자국을 그대로 간직한 부재의 질감이다.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도록 설계된 폼은 오히려 휴식의 영구적인 기록으로 굳어버렸고, 과거의 차가운 강철을 돌봄의 다공성이고 취약한 재료로 대체한 포스트 미니멀리즘 조각이 되었다.

이러한 부드러운 쇠락은 Ghislaine Leung의 개념적 악보가 보여주는 날카롭고 법적인 정밀함과 대조를 이룬다. 그녀의 작품 Maintenance는 전시 공간을 발견된 당시의 상태 그대로 유지할 것을 명령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청소, 조명, 보험 등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제도적 노동을 직면하게 만든다. 한편 Sophia Giovannitti는 계약을 물리적인 도구로 활용한다. 그녀의 퍼포먼스는 사적인 협상을 포함하며, 여기서 안무의 주체는 팔다리가 아니라 자원과 욕망이 되어 갤러리를 거래적 친밀함의 장으로 바꾼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성 지표의 붕괴와 전통적인 임금 체계의 실패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불안을 반영한다. 경제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커리어의 경로가 해체됨에 따라, 예술가들은 혈연 경제와 무임금 돌봄 노동으로 눈을 돌린다. 재활용 직물, 원주민 비즈 공예, 기록 보관 문서 등은 한때 낙관적이었던 시장의 고광택 마감을 대체한다. 이는 생존의 미학이며, 여기서 작품의 가치는 그것이 창출하는 자본이 아니라 그것이 유지하는 관계에 의해 측정된다.

전시는 이러한 현대적 우려를 착취와 식민지 부채의 긴 역사 속에 고착시킨다. Cercle d’Art des Travailleurs de Plantation Congolaise (CATPC)의 비디오 작품은 화이트 큐브 내부에서 재판을 연출하며, 예술계의 사치와 그것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했던 농장 노동 사이의 대립을 강요한다. 이것은 역사의 재현이 아니라, 갚아야 할 것에 대한 퍼포먼스적 실행이다. 예술 작품들은 수세기에 걸친 청산 불가능한 채무를 기록하는 장부로서 기능한다.

Chauncey Hare의 아카이브에서 거부는 개인적인 선택을 넘어 형식적인 전략으로 격상된다. Standard Oil에서의 경력을 버리고 예술계 또한 그에 못지않게 억압적임을 깨달은 Hare는 자신의 사진에 기업의 지배력을 경고하는 캡션을 계약적으로 결속시켰다. 그의 비판 없이는 이미지를 볼 수 없게 함으로써, 보는 행위를 정치적 교육의 행위로 만든 것이다. Yazan Khalili의 I, The Artwork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서명되지 않은 계약서를 액자에 담아 제시하며, 예술 자체의 관점에서 오브제가 자신의 소유권을 진정으로 보이콧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Carolyn Lazard, Fiction Contract, 2025 (still). Single-channel video with sound, 9:11 min. Courtesy the artist and Trautwein Herleth, Berlin. [In a small, dark control room, a person sits in front of multiple computer monitors while observing people in an adjoining patient room via an interior window]
Carolyn Lazard, Fiction Contract, 2025 (still). Single-channel video with sound, 9:11 min. Courtesy the artist and Trautwein Herleth, Berlin. [In a small, dark control room, a person sits in front of multiple computer monitors while observing people in an adjoining patient room via an interior window]

갤러리의 공간 배치 또한 이러한 의존성의 테마를 강조한다. Bakalar Gallery에서는 노동 운동과 영화적 형식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영상 프로그램이 순환 상영된다. 이 공간은 주 전시실에 의존하면서도 페미니즘적 재현과 반식민지 투쟁의 독자적인 리듬을 제공하는 제2의 폐와 같은 역할을 한다. 방과 방 사이의 이동은 자본과 정보의 흐름을 모방하며, 창작 과정의 어떤 부분도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음을 관람객에게 상기시킨다.

전시는 한 가지 냉정한 깨달음과 함께 마무리된다. 우리 모두는 역사적 채무자라는 사실이다. 의존과 부채라는 용어를 중심에 둠으로써, 전시는 노동이 의미를 갖기 위해 반드시 개별화되거나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뒤흔든다.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몸짓은 끝없는 생산의 순환에서 스스로를 철회하는 것들이다. 텅 빈 갤러리의 정적이나 폼 위에 남겨진 지친 신체의 각인 속에서, 예술가들은 새로운 종류의 행위 주체성을 발견한다. 그것은 멈출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주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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