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시대
영화 역사상 수많은 ‘변신’이 있었지만, 콜린 패럴이 오스왈드 “오즈” 콥이라는 인물 속으로 ‘사라진’ 것만큼 완벽하고, 충격적이며,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경우는 드물다.
그가 처음 등장한 것은 맷 리브스 감독의 2022년작 <더 배트맨>에서였다. 흉측한 흉터를 지닌 채 으르렁거리는 중간 보스 펭귄을 연기한 그는, 여러 겹의 특수 분장 아래에서도 강렬한 위협과 상처 입은 야망을 발산하며 캐릭터 창조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연기가 빛나는 조연을 넘어 그의 배우 경력을 정의하는 ‘승리’의 순간으로 승화된 것은 2024년 HBO 미니시리즈 <펭귄>에서였다. 팔코네가 사라진 고담시의 권력 공백기 속에서 오즈가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 이 8시간짜리 장대한 범죄 서사시는, HBO의 전설적인 드라마 <소프라노스>에 비견되며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패럴의 연기는 이 세계의 구심점이었다. 이는 그가 선보인 가장 거침없고 모든 것을 쏟아부은 연기이자 가장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유리를 긁는 듯한 목소리,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그리고 그 밑의 배우가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바뀐 얼굴. 그는 비굴하면서도 동시에 공포스러운 인물을 완벽하게 빚어냈다. 비평가들은 “제임스 갠돌피니가 제임스 캐그니를 집어삼킨 뒤, 병원에서 회복하는 동안 로버트 드 니로의 전작을 몰아본 것 같다”고 평했다.
이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다. ‘빙의’에 가까웠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풍부한 표정의 눈썹 사용이 봉쇄되었음에도, 그는 머리, 몸, 목소리 전체를 사용하여 캐릭터를 구현해냈고, 진정한 ‘변신’ 연기를 창조했다. 비평가들과 관객들은 실리콘과 메이크업의 가면을 D뚫고 그토록 풍부한 내면 연기를 전달하는 데 필요한 심오한 예술성에 만장일치로 찬사를 보냈다. 업계 또한 골든 글로브와 미국 배우 조합상(SAG)을 그에게 안기며, 놀라움으로 가득 찬 그의 경력에 기념비적인 성과를 더했다.
하지만 이 성공은 단순히 재능 있는 배우가 받은 또 하나의 트로피가 아니다. 이는 그의 경력을 양분했던 두 개의 뚜렷한 시기가 완벽하게 하나로 합쳐졌음을 상징한다.
이 역할은 그를 처음 스타로 만들었던 할리우드 시스템, 즉 거대하고 상업적인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연기 자체는 그가 지난 10년간 인디 영화계라는 광야에서 갈고닦은, 깊고, 섬세하며, 파격적인 캐릭터 연구의 산물이다.
<펭귄>은 ‘컴백’이 아니다. 이것은 ‘집대성’이다. 더블린 출신의 거친 청년이 전 세계적인 명성이라는 아찔한 고지로 쏘아 올려졌다가 거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뻔한 뒤, 다시 한 조각 한 조각 고통스럽게 자신을 재건하여 현세대 가장 존경받는 배우 중 한 명이 되기까지의 길고 험난했던 여정의 종착점이다. 고담의 이 거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캐슬녹에서 온 그 소년을 이해해야 한다.
캐슬녹에서 온 소년
콜린 제임스 패럴은 1976년 5월 31일, 아일랜드 더블린 교외의 캐슬녹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축구라는 또 다른 ‘무대’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 이먼과 삼촌 토미 패럴은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클럽 섀머록 로버스 FC의 유명한 선수였다. 한때 콜린 역시 아버지가 감독을 맡은 지역 팀에서 뛰며 그 유산을 이을 운명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른 길이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정해진 기대를 거부하고 더 본능적이고 개인적인 길을 추구하는 그의 초기 성향을 보여준다.
성 브리지드 국립학교와 명문 캐슬녹 중학교에서의 학창 시절은 그의 반항적인 기질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학업 순응보다 경계를 시험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불안정한 영혼이었고, 이는 17세에 교사를 폭행하여 퇴학당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했다. 비슷한 시기, 그는 아일랜드 보이 밴드 ‘보이존’ 오디션에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이 역시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또 다른 평범한 성공의 길이었다.
진정한 불꽃은 경기장이나 무대가 아닌, 어두운 영화관에서 튄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에서 헨리 토마스가 보여준 연기는 그를 눈물짓게 했고, ‘연기’야말로 자신의 미래라는 씨앗을 심었다.
형의 격려로 그는 게이어티 연기 학교(Gaiety School of Acting)에 입학한다. 이곳은 에이단 터너, 올리비아 와일드 등 수많은 아일랜드 인재를 배출한 명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정해진 길을 끝까지 가지 않았다.
졸업도 하기 전에 인기 BBC 드라마 <밸리키스엔젤>에서 매력적인 말썽꾼 대니 번 역에 캐스팅된 것이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두 시즌 동안 ‘더블린의 나쁜 남자’를 연기하며 대중에게 처음으로 얼굴을 알렸고, 이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유명한 학교를 중퇴하고 현장 경험을 택한 이 결정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다. 이는 정해진 공식보다 자신의 직감을 신뢰하고, 공부보다 실행을 통해 배우는 그의 평생의 경향을 보여준 첫 번째 주요 사례였다. 이 본능은 좋든 나쁘든, 곧 그를 대서양 건너 할리우드의 심장부로 이끌게 된다.
할리우드의 뉴 프린스: <타이거랜드>라는 이변
패럴의 할리우드 입성은 폭발적인 동시에 이례적이었다. 팀 로스의 충격적인 감독 데뷔작 <더 워 존>(1999)과 케빈 스페이시와 호흡을 맞춘 <조폭 3형제>(2000)로 장편 영화에 데뷔한 후, 그는 인생을 바꿀 오디션을 만난다.
조엘 슈마허 감독은 1971년 베트남 파병을 앞둔 미군 훈련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저예산 영화 <타이거랜드>의 캐스팅을 진행 중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무명 배우였던 패럴은 런던 오디션장에 들어섰고, 단지 “불손한 매력” 하나만으로 다시 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맥주 몇 잔을 마신 뒤 텍사스 억양을 연기하는 테이프를 찍어 슈마허에게 보냈고, 감독은 즉시 그를 반항적인 주인공 롤랜드 보즈 이병 역으로 낙점했다.
200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1,000만 달러의 예산으로 고작 14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상업적으로는 재앙에 가까운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때로 ‘화제성’이 흥행 수입보다 더 가치 있는 화폐가 되기도 한다.
비평가들 사이에서 <타이거랜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 찬사는 거의 전적으로 주연 배우의 카리스마에 집중되었다. 평단은 패럴의 연기에 매료되어 “매혹적이다”, “카리스마가 넘친다”, “강렬하다”고 평하며 그에게 즉각 ‘주목해야 할 유망주’, ‘차세대 거물’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반항아 보즈를 연기한 패럴은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배우였으며, 무심한 듯 거침없는 태도와 폭넓은 감정 연기로 비평가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이러한 비평가들의 열광은 업계 내에 광풍을 일으켰다. 할리우드는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고, 어떤 스튜디오도 차세대 거물 스타를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패럴 자신도 훗날 “뭔가 뜨겁다는 소문이 돌면 임원들이 너도나도 달려드는” 시스템의 수혜자였음을 인정했다.
업계의 이러한 기대감은 ‘자기 충족적 예언’을 만들어냈다. 그는 단 한 편의 히트작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배역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출연한 <아메리칸 아웃로즈>(2001)와 <하트의 전쟁>(2002) 역시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진정한 돌파구는 2002년, 세계 최고의 무비 스타 톰 크루즈의 상대역으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SF 대작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캐스팅되면서 찾아왔다. 원래 맷 데이먼이 거절했던 야심만만한 법무부 요원 대니 위트워 역을 패럴이 거머쥐었다. 그는 톰 크루즈 앞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하며 세계적인 무대를 장악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가 연기한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위트워는 출세를 위해 누구든 짓밟고 올라설 수 있는 인물로, 영화의 완벽한 적대자 역할을 해냈다. 이 영화는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적으로 3억 5,8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고, 패럴은 명실상부한 주연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모든 댐이 무너졌다. 2002년과 2003년 사이, 그는 <폰 부스>(슈마허 감독의 스릴러), <리크루트>(알 파치노와 호흡을 맞춘 CIA 드라마), <S.W.A.T. 특수기동대>(사무엘 L. 잭슨과 함께한 액션) 등 연이은 히트작에 출연하며 자신의 흥행 파워를 굳혔다. 2003년 <데어데블>에서 악당 불스아이를 연기한 것 역시 잊을 수 없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의 무명 배우였던 그는 3년도 채 안 되어 세계에서 가장 바쁜 스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명성은 흥행 성적이 증명하기도 전에 업계의 입소문으로 ‘제조’된 것이었다. 이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성공 신화였지만, 동시에 그의 젊은 어깨에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지우는 일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계의 값비싼 대가
엄청난 성공의 이면에는 혹독한 개인적 대가가 따랐다. 그의 커리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그의 사생활은 통제 불가능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며 전 세계 타블로이드의 먹잇감이 되었다.
패럴은 언론이 그에게 씌운 ‘나쁜 남자’라는 이미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가죽 재킷, 입에서 떠나지 않는 담배, 반항적인 매력을 앞세운 그는 파티 현장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린제이 로한, 데미 무어 같은 스타들과의 스캔들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 페르소나는 양날의 검이었다. 한편으로 이는 그의 인지도를 높여 영화 외적으로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마케팅 수단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남자가 실제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증거였다.
패럴은 훗날 그 시절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회상하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다”고 고백했다.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그는 극단적인 쾌락으로 도피했다. 그는 <아메리칸 아웃로즈>를 포함한 몇몇 영화는 촬영 당시의 기억이 전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중독 상태였다고 시인했다.
그의 약물 남용 수준은 충격적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매주 엑스터시 20알, 코카인 4g, 스피드(암페타민) 6g, 해시시 0.5온스(약 14g), 위스키와 와인 여러 병, 맥주 60파인트를 소비했다고 털어놓았다. 14살 때부터 시작된 이 습관으로 그는 “거의 16년 동안 술에 취해 있거나 약에 취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그가 가장 크고 힘든 역할을 맡았던 시기와 겹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대작 <알렉산더>(2004)가 그중 하나였다. 그가 타이틀롤을 맡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미국에서 비평과 흥행 모두 재앙적인 실패를 겪었고, 이 요란한 실패는 그를 향한 잣대를 더욱 엄격하게 만들었다.
2004년 무렵, 그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나쁜 남자’ 이미지는 이제 독이 되었다. 스크린 밖에서의 기행이 그의 연기를 가리기 시작했고, 연이은 흥행 실패로 할리우드는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는 훗날 “내가 만든 캐릭터가 한동안은 나에게 득이 됐지만, 결국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페르소나가 이제 그를 몰락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변화는 단순히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달라진 삶: 금주, 부성애, 그리고 <킬러들의 도시>
전환점은 2005년에 찾아왔다. 악명 높게 힘들었던 마이클 만 감독의 <마이애미 바이스> 촬영을 마친 직후, 패럴은 재활원에 입소했다. 2006년, 그는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술과 약물에서 벗어난 상태로 퇴원했고, 그 이후로 줄곧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결정은 단순히 직업적인 필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삶에 새롭고 심오한 목적, 바로 ‘아버지의 역할’이 생겼기 때문이다.
2003년, 패럴과 당시 여자친구였던 모델 킴 보더네이브 사이에서 첫아들 제임스 패트릭 패럴이 태어났다. 제임스는 훗날 평생의 보살핌이 필요한 희귀 신경 유전 질환인 ‘엔젤만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책임감은 그의 삶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패럴은 제임스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제임스가 내 생명을 구했다”고 단언했다. 그는 자신이 아들에게 필요한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상태임을 알았다. “내가 술을 끊게 된 데는 아들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고 그는 설명하며, 자기 파괴적인 삶의 방식이 부모의 의무와 양립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내 첫째 아들 제임스는, 나 스스로를 돌볼 수 없었던 시기에, 내가 세상의 다른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변화는 직업적인 극적인 전환과 동시에 일어났다. 연이은 흥행 부진으로 이미 줄어들고 있던 블록버스터 영화의 출연 제의는 사실상 완전히 끊겼다. 하지만 이 커리어의 ‘강등’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연기 인생에 가장 해방적인 사건이 되었다.
1억 달러짜리 영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조작된 스타의 페르소나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그는, 연기라는 본질적인 기술과 다시 연결되어야 했다. 그는 인디 영화계로 눈을 돌렸고, 이 선택은 그의 경력을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재정의하게 된다.
이 새로운 장의 첫 번째 결실은 2008년 마틴 맥도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 <킬러들의 도시>였다. 패럴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 뒤 죄책감에 시달리며 벨기에의 그림 같은 도시 브뤼헤에 숨어 지내는 신참 킬러 ‘레이’ 역을 맡았다. 끔찍한 실수와 씨름하며 어둡고 신랄한 유머 속에서 구원을 찾는 이 남자의 역할은 그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할리우드 액션 영웅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그동안 감춰져 있던 연약함과 놀라운 코미디 감각을 선보일 수 있었다.
영화는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패럴의 연기는 냉소적인 쾌락주의자에서 충격에 빠진 절망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오가며 ‘새로운 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이 영화로 생애 첫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길이 옳았음을 강력하게 증명했다. 블록버스터 스타로서의 지위를 잃은 ‘실패’가 역설적으로 그를 가장 위대한 예술적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무비 스타 콜린 패럴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배우 콜린 패럴이 등장했다.
성격파 배우의 캔버스
<킬러들의 도시> 이후 10년 동안, 패럴은 명성이 아닌 도전적인 역할과 선구적인 감독들을 쫓으며 자신의 경력을 꼼꼼하게 재건했다. 그는 인디 영화계의 가장 독창적인 감독들이 찾는 배우가 되었고, 끊임없이 자신의 스타 이미지를 해체하고 그를 불편하고 변혁적인 영역으로 밀어 넣는 역할들을 선택했다.
그의 진화하는 스타일의 핵심 특징은 지성과 섬세함, 특히 연기 교사들이 말하는 ‘감정 억제 연기(playing against)’의 완벽한 구사였다. 이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 애쓰는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오히려 더 강력하고 진실된 내면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마틴 맥도나와의 파트너십은 그의 경력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그들은 2012년 메타 범죄 코미디 <세븐 사이코패스>에서 재회했다. 패럴은 광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혼란스러워하는 ‘정상인’ 마티 역을 맡아 능숙한 코미디 본능을 선보였다. 친구의 범죄 행각에 휘말린 알코올 중독자 시나리오 작가로서, 그는 맥도나 특유의 신랄한 대사 속에서 재미있고도 신경질적인 ‘상식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평범한 인물 연기에도 능함을 증명했다.
그들의 세 번째 작품인 <이니셰린의 밴시>(2022)는 정점을 찍었다. 갑작스러운 우정의 종말에 상처받은 순박하고 마음씨 고운 남자 파우릭을 연기한 패럴은 가슴 아픈 페이소스를 전달했다. 한때 자신을 정의했던 ‘나쁜 남자’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은 이 역할로 그는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으며 두 번째 골든 글로브와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생애 첫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또한 무미건조하고 부조리한 스타일로 유명한 그리스의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도 중요한 협업 관계를 구축했다. <더 랍스터>(2015)에서는 독신자들이 동물로 변하는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외로운 남자를 연기하기 위해 40파운드(약 18kg)를 증량하며 또 한 번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올랐다. 이어진 <킬링 디어>(2017)에서는 저주로 인해 완벽한 삶이 무너지는 성공한 외과 의사를 연기했다. 그의 연기는 의도적으로 차갑고 냉정하며 모든 카리스마가 제거되어, 감독의 독특한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그의 헌신을 보여주었다. 이 고도로 절제된 역할에서 그는 연기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오직 그 표정 풍부한 눈썹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고조되는 고통을 표현해야 했다.
이러한 역할들을 선택함으로써, 패럴은 할리우드가 그를 위해 구축했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해체했다. 그는 자신의 고전적인 외모와 매력을 ‘전복시켜야 할 도구’로 사용했으며, 자신의 허영심을 버림으로써 남성성, 고독, 사회적 부조리라는 주제를 탐구했다.
그의 캔버스는 넓고 다양했다. 코미디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2011)에서는 대머리에 빗어 넘긴 머리를 한 코카인 중독자 사장으로 변신해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고, <프라이트 나이트>(2011) 리메이크에서는 위협적인 뱀파이어를 연기했다. 또한 소피아 코폴라(<매혹당한 사람들>), 스티브 맥퀸(<위도우즈>) 같은 명감독들의 영화에서 강력한 조연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페르소나로 정의되던 주연 배우에서, 다재다능함으로 정의되는 성격파 배우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아버지의 소명: 콜린 패럴 재단
그의 직업적 생이 심오한 예술적 부흥을 겪는 동안, 그의 개인적인 삶 역시 새롭고 더 깊은 의미를 찾았다. 패럴은 현재 22살인 제임스와 16살인 헨리 타데우시(그의 <온딘> 공동 주연 알리샤 바흘레다-추루시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에게 헌신적인 아버지이다. 그는 종종 아들들을 “내 삶의 사랑”이라고 부르며, 아버지라는 역할이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역할임을 분명히 한다.
제임스와의 여정은 특히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엔젤만 증후군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아들의 용기와 노력에서 얼마나 많은 영감을 받는지 감동적으로 이야기해왔다.
이 깊은 개인적 경험은 그에게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중대한 공백을 깨닫게 했다. 패럴은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21세가 되면, 그들이 의존하던 많은 교육 및 국가 지원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그들과 가족들이 서비스의 ‘절벽’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그는 2024년 ‘콜린 패럴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의 사명은 지적 장애를 가진 개인과 그 가족들이 성인기로 전환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회복과 아버지로서의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을 직접적이고 실천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재단은 접근 가능한 주거 및 주간 프로그램 마련, ‘직접 지원 전문가(DSP)’ 인력 지원, 그리고 더 나은 기금 마련을 위한 정책 변화 옹호 등 핵심 분야에 중점을 둔다.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캠프 솔라스(Camp Solas)’는 아일랜드어로 ‘빛’을 의미하며, 돌봄 제공자와 그 자녀들에게 교류와 지원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휴식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자선 활동은 유명인의 피상적인 활동이 아니다. 이는 그의 개인적인 변화에 따른 논리적인 확장이다. 한때 자신 외의 누군가를 돌봐야 할 필요성에 의해 구원받았던 그는, 이제 그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알게 된 커뮤니티 전체를 위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옹호 활동은 모든 장애 아동의 부모가 직면하는 “우리가 떠나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될까?”라는 두려움에서 태어난, 부성애의 확장된 실천이다.
완전한 순환: 고담의 거장
오늘날 콜린 패럴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존경받고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로 우뚝 섰다. <펭귄>에서의 그의 압도적인 연기는 그의 경력을 정의해 온 두 개의 길이 하나로 만나는, 완벽한 원점 회귀의 순간을 상징한다. 그는 다시 한번 거대한 문화 현상의 중심에 섰지만, 이번에는 그의 명성이 아닌 오직 그의 연기력 때문이다.
그의 대중적 이미지 역시 예측 불가능한 이단아에서, 2023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될 만큼 사려 깊고 안정감 있는 원로급 배우로 진화했다.
그는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의 일을 대한다. 그는 연기를 그 어느 때보다 사랑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만큼 연기에 연연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이제 그의 초점은 한 명의 인간이자 아버지로서의 삶에 확고히 맞춰져 있다고 했다. “가족, 내 아들들이 첫 번째고, 일은 그 다음”이라는 그의 말은 우선순위를 분명히 보여준다.
마고 로비와 함께하는 <어 빅 볼드 뷰티풀 저니>, 넷플릭스의 <밸러드 오브 어 스몰 플레이어> 등 그의 차기작들은, 초창기 프랜차이즈 영화를 쫓던 모습과는 거리가 먼, 흥미로운 감독들과의 독특한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열의를 반영한다.
콜린 패럴의 이야기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구원’의 서사 중 하나이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일찍 손에 쥐고, 스포트라이트의 눈부심 속에서 길을 잃어 모든 것을 잃을 뻔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금주와 부성애라는 삶의 닻을 통해 다시 돌아올 길을 찾았다. 단, 그가 있던 곳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그는 무비 스타라는 페르소나를 부수고 배우의 영혼을 드러냈으며, 명성의 혼돈을 버리고 연기라는 기술에 대한 조용한 헌신과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택했다. 마침내 콜린 패럴의 두 인생은 하나가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그의 능력의 절대적 정점에 서 있는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목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