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움직임 속의 예술가
틸다 스윈튼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모순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녀는 영원한 움직임 속에 있는 예술가이며, 회고를 거부하는 분류 불가능한 힘이다. 그녀의 커리어는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암스테르담 아이 필름 뮤지엄에서 열리는 그녀의 대규모 전시 제목 ‘Ongoing'(진행 중)은 이를 가장 잘 요약한다. 이는 과거 회상이 아닌, 그녀의 작업을 추동하는 창의적 파트너십의 살아있는 별자리이자, 결코 끝나지 않는 과정의 증거다. 2026년, 그녀는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무대로 돌아와 왕립 코트 극장 70주년을 맞아 1988년작 <Man to Man>의 역할을 다시 맡는다. 이는 베테랑 배우의 관습적인 커리어 궤도를 거부하는 또 다른 미래지향적 행보다.
스윈튼은 아카데미상 수상자, 패션 아이콘, 퍼포먼스 아티스트, 블록버스터 스타이지만 그 어떤 수식어도 그녀를 담아내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녀는 ‘배우’보다 ‘퍼포머(performer)’라는 용어를 선호하는데, 이는 그녀의 즉흥적이고, 자전적이며, 공동 저작적인 작업을 아우르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다. 뉴욕 타임스가 ’21세기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으로 꼽은 그녀는 역설의 토대 위에 커리어를 쌓았다. 공산주의자가 된 귀족, 할리우드를 정복한 아방가르드 뮤즈,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글로벌 스타. 이것은 캐서린 마틸다 스윈튼이 자신이 태어난 고정된 혈통이 아닌, 평생에 걸친 협업, 변신, 그리고 자아는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정이라는 급진적 믿음을 통해 어떻게 정체성을 구축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의 전시 제목은 단순한 이름 그 이상이다. 그것은 과거의 정적인 업적 모음이 아닌, 창조와 연결의 과정에 뿌리를 둔 정체성을 제시하는 그녀의 예술적 논제다.
내키지 않는 귀족
혈통의 무게
틸다 스윈튼의 끊임없는 변신에 대한 추구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녀가 태어난 환경의 불변성을 파악해야 한다. 그녀는 1960년 11월 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문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귀족 군인 가문 출신이다. 가문의 역사는 35대를 거슬러 9세기까지 올라간다. 그녀의 가장 오래된 조상은 886년 알프레드 대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녀의 아버지 존 스윈튼 경(소장)은 여왕의 근위 사단장이자 버릭셔의 총독으로, 수백 년의 전통, 기득권, 그리고 스윈튼 자신이 말하는 ‘소유 계급’을 구현하는 인물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역사적 무게감, 순응과 기대로 미리 쓰인 각본의 세계였다.
스윈튼이 이 유산을 거부하는 것은 그녀의 정체성에 핵심적이다. 가문의 고대 역사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그녀는 “모든 가족은 오래됐어요. 단지 우리 가족이 한곳에 오래 살았고 우연히 기록을 남겼을 뿐이죠.”라고 일축한다. 이는 과거에 의해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의도적인 신비주의 타파 행위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정해진 역할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특징지으며, 부모님이 일찍이 그녀가 “공작과 결혼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고 농담하곤 했다.
반항으로서의 교육
그녀의 정규 교육은 이러한 반항의 첫 번째 무대가 되었다. 10살 때, 그녀는 웨스트 히스 여학교(West Heath Girls’ School)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훗날 웨일스 공주가 되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그녀의 동창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그 경험을 끔찍이 싫어했으며, 기숙 학교를 “잔인하다” 그리고 “삶으로부터 당신을 격리하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묘사했다.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그녀의 반감을 확고히 한 결정적인 순간도 웨스트 히스에서 일어났다.
오빠들의 학교 교장이 남학생들에게 “너희는 내일의 지도자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후, 자신의 학교로 돌아온 그녀는 “너희는 내일의 지도자들의 아내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그녀에게 규정된 제한적이고 성별화된 역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그녀는 평생을 이 역할을 해체하는 데 바치게 된다.
케임브리지와 정치적 각성
그녀의 지적, 정치적 각성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루어졌다. 그녀는 뉴 홀(New Hall) 칼리지에서 사회정치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1983년에 졸업했다. 귀족적 배경에 대한 결정적인 반항으로, 그녀는 공산당에 가입했다. 또한 케임브리지는 그녀가 실험 연극에 몰두하며 연기 경력의 토대를 닦은 학생 프로덕션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곳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1984년부터 1985년까지 1년 동안 권위 있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에서 잠시 활동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남성 중심적이라고 느낀 극단의 분위기에 공감하지 못했고, 이후 라이브 연극의 관습에 대해 “정말 지루하다”며 깊은 무관심을 표명해왔다. 그녀의 길은 무대 위에서 고전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의 세계에서 자신을 위한 새롭고 쓰이지 않은 역할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모든 예술적 페르소나는 그녀가 태어난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평생에 걸친 직접적인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유동성과 역사적 결정론으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그녀의 매혹은 추상적인 관심이 아니라, 자신의 기원 설화를 전복시키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아 창조 프로젝트다.
데릭 저먼의 시대: 정체성을 벼리다
운명적 파트너십
RSC를 떠난 후, 스윈튼은 제도권이 아닌 한 사람에게서 예술적 고향을 찾았다. 1985년, 그녀는 아방가르드 영화감독이자 예술가, 동성애 인권 운동가인 데릭 저먼을 만났다. 이 만남은 그녀의 커리어 첫 장을 정의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예술적, 윤리적 틀을 심어주었다. 9년간의 협업은 그녀의 장편 영화 데뷔작인 <카라바조>(1986)로 시작하여, 정치적으로 날 선 <잉글랜드의 마지막 날>(1988), 퀴어 사극 <에드워드 2세>(1991), 철학적 전기 영화 <비트겐슈타인>(1993) 등 8편의 영화로 이어졌다.
저먼의 정신
저먼과의 작업은 스윈튼에게 영화 학교였다. 그는 전통적인 영화 세트의 위계 구조로 일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스윈튼이 처음부터 신뢰받는 공동 저자인 집단적이고 협력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이 경험은 “관계가 곧 배터리”라는 믿음으로 작업하는,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평생 선호하는 그녀의 작업 방식을 형성했다. 저먼의 작업은 또한 마거릿 대처의 영국, 특히 동성애 ‘조장’을 금지하는 법안(Section 28)의 억압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인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격렬하게 정치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예술이 행동주의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으며, 영화감독이 문화의 중심을 쫓는 대신 자신 주위로 끌어당길 수 있음을 가르쳤다. 신뢰와 공동 저작에 기반한 이 협업 정신은 그녀의 DNA가 되었으며, 훗날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권력 역학에 조용히 도전하는 모델이 되었다.
전환점: 슬픔과 재창조
이 파트너십은 1994년 저먼이 에이즈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면서 비극적으로 끝났다. 33세의 나이에 에이즈로 사망한 43명의 친구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스윈튼에게 이는 엄청난 상실의 시기였다. 핵심 협업자의 죽음은 그녀를 창의적인 기로에 서게 했고, 다시 누군가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의 대응은 다른 감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를 발명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The Maybe>라는 살아있는 예술 작품이다. 그녀는 대중 갤러리의 유리 진열장 안에서 취약해 보이는 모습으로 잠을 잔다. 1995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에이즈 팬데믹이 안겨준 슬픔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 죽어가는 친구들 곁을 지키는 데 지친 그녀는 “살아있고, 건강하며, 잠자는 몸을 공공장소에 내어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는 관객이 스크린 속 인물처럼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 다가가 낱낱이 뜯어볼 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영화적 제스처이자, ‘연기되지 않지만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탐구였다. <The Maybe>는 그녀의 재창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수십 년간 그녀의 작업에 영향을 미칠 더욱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퍼포먼스로의 전환점이 되었다.
<올란도>와 안드로진의 이상
세계적인 돌파구
저먼의 시대가 그녀의 예술적 정체성을 벼려냈다면, 샐리 포터의 1992년작 <올란도>는 그것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1928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400년 동안 늙지 않고 살다가 중간에 여성으로 변하는 한 영국 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역할은 스윈튼의 비현실적이고 안드로진(androgynous, 양성적인)한 존재감을 담아내는 완벽한 그릇이었고, 그녀의 놀라운 연기는 그녀를 국제적인 인지도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유동성의 구현
<올란도>는 단순한 역할을 넘어, 스윈튼의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표현이었다. 캐릭터의 여정은 시간, 역사, 성별화된 상속이라는 속박으로부터의 문자 그대로의 탈출, 즉 그녀 자신의 귀족적 배경을 정의했던 바로 그 힘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스윈튼은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유지되는 캐릭터의 핵심 정체성에 대한 타고난 이해로 남성 올란도와 여성 올란도를 모두 연기했다.
영화는 스크린 위 그녀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절정에 달한다. 현대를 배경으로, 올란도는 나무 아래 앉아 20초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녀의 수수께끼 같은 시선은 400년간의 변화와 생존이라는 사가의 모든 무게를 담아낸다. 이 영화는 수십 년 앞서 현대의 젠더 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예견한 대담하고 지적인, 시각적으로 훌륭한 각색이라는 평을 받으며 비평과 상업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패션 아이콘의 탄생
영화의 미학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탐구는 스윈튼을 문화 및 패션 아이콘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인상적이고 비관습적인 아름다움과 전통적인 여성성에 대한 거부는 그녀를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뮤즈로 만들었다. 빅터 & 롤프(Viktor & Rolf)는 2003년 가을 컬렉션 전체를 그녀에게 기반하여, 런웨이에 스윈튼의 도플갱어 군단을 보냈을 정도다. 그녀는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처럼 그녀가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디자이너들은 물론, 랑방, 샤넬 같은 하우스들과도 깊고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녀의 패션 감각은 연기처럼 일종의 퍼포먼스다. 그녀는 자신이 전통적인 이브닝 드레스보다 아버지의 군복이 지닌 날카로운 재단과 자수 마감,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의 안드로진한 글래머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올란도>는 그녀의 개인 철학과 대중적 이미지가 하나의 강력한 선언으로 융합된 순간이었다.
영화의 성공은 그녀의 반기득권적이고 성별을 전복하는 프로젝트 전체를 입증했으며, 그녀에게 타협 없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커리어를 쌓아 올릴 수 있는 문화적 자본을 안겨주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할리우드를 정복하다
전략적 진입
<올란도>의 성공 이후, 스윈튼은 주류 영화계로 조심스럽고 전략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비치>(2000)와 <바닐라 스카이>(2001) 같은 영화들은 그녀를 더 넓은 대중에게 소개했지만, 이는 ‘타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녀의 예술적 캔버스의 확장이자, 할리우드의 대규모 프로덕션에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을 적용하는 실험이었다.
블록버스터 속 이례적 존재
그녀가 대형 프랜차이즈에 진출한 것은 가장 상업적인 틀 안에서도 예술적 무결성을 유지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2005-2010)의 하얀 마녀 제이디스 역으로, 그녀는 사랑받는 어린이 판타지에 진정으로 오싹하고 얼음 같은 위엄을 불어넣어 무섭고도 매혹적인 악당을 창조했다. 이후 그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하여 <닥터 스트레인지>(2016)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 에인션트 원 역을 맡았다. 전통적으로 나이 든 티베트 남성으로 묘사되던 캐릭터를 연기한 것은 전복적인 캐스팅이었으며, 그녀는 이 마법사에게 초월적이고 미니멀한 평정심과 전형적인 전능한 스승의 이미지를 거부하는 조용하고 편안한 권위를 불어넣었다. 그녀는 이러한 상업 프로젝트를 실험으로 취급하며, 확립된 원형을 제약이 아닌, 내면에서부터 채우고 미묘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주형으로 본다. 이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아방가르드한 감성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크린으로 ‘밀반입’한다.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다
할리우드 생태계로의 성공적인 통합은 2008년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절정에 달했다. 스윈튼은 토니 길로이의 법정 스릴러 <마이클 클레이튼>(2007)에서 무자비하고 무너져 내리는 기업 변호사 캐런 크라우더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연기는 야망과 공황에 휩싸인 비도덕적 임원의 완벽한 초상, “미묘하게 오싹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스윈튼 자신도 이 역할이 기존의 양식화된 작업에서 벗어난, 자연주의적인 연기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수상은 타협 없이 예술 영화와 주류 영화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두 영역 모두에서 탁월함을 입증한, 업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서의 그녀의 지위를 확고히 한 중대한 순간이었다.
변신의 기술
변장의 대가
틸다 스윈튼의 커리어는 정체성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한 장편 퍼포먼스 아트로 읽힐 수 있다. 그녀는 진정한 카멜레온이지만, 그녀의 변신은 단순한 분장과 의상을 넘어선다. 그것은 젠더, 나이, 인간성에 대한 관객의 가정을 뒤흔드는 심오한 체화 행위다. 각각의 급진적인 변장은 고정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핵심적인 예술적 신념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며, 정체성이 유동적이고 수행적임을 보여준다.
변신의 사례 연구
몇몇 역할은 그녀의 변신 능력의 정점을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의 디스토피아 스릴러 <설국열차>(2013)에서 그녀는 권위주의적 권력의 기괴한 캐리커처인 메이슨 총리로 분해 알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돼지 같은 코, 커다란 틀니, 딱딱한 가발, 가짜 훈장을 단 메이슨은 마거릿 대처나 베니토 무솔리니 같은 역사적 괴물들을 뒤섞은 듯한, 광대 같고 한심한 인물이다. 그녀의 외모에 내재된 우스꽝스러움은 이 캐릭터의 핵심이다. 그녀는 잔혹한 체제의 걸어 다니는 확성기이며, 그 권력은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터무니없고 취약하다.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서는 84세의 부유한 미망인 마담 D.가 되기 위해 매일 다섯 시간의 분장을 감수했다. 아주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과장되고 집착적인 연기는 영화 전체의 소동극을 촉발시키며 영화가 애도하는 잃어버린 전쟁 전 세계를 상징하는, 절대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을 연출했다.
아마도 그녀의 가장 급진적인 변신은 루카 구아다니노의 2018년 리메이크작 <서스페리아>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녀는 미스터리한 무용 감독 마담 블랑뿐만 아니라, 극비리에 노년의 남성 정신과 의사 요제프 클렘페러 박사 역할까지 연기하는, 겹겹의 수행적 위업을 달성했다. (이 역할은 초기에 ‘루츠 에버스도르프’라는 가상의 배우가 맡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녀의 몰입은 절대적이었다. 분장 감독 마크 콜리어는 그녀가 남성 캐릭터를 완전히 느끼고 체화하기 위해 의상 아래에 “무게감 있는 남성 성기 모형”을 착용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평단의 호불호가 갈렸지만, 스윈튼의 이중 연기는 정체성의 경계를 허무는 그녀의 두려움 없는 헌신을 숨 막히게 보여주었다.
심리적 핵심: <케빈에 대하여>
스윈튼의 변신은 육체적인 것만에 그치지 않는다. 린 램지 감독의 가슴 아픈 심리 드라마 <케빈에 대하여>(2011)에서, 그녀는 학교에서 학살을 저지른 십대 아들의 어머니 에바 카차도리안 역을 맡아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호평받는 연기 중 하나를 선보였다. 영화는 전적으로 에바의 조각나고 슬픔에 잠긴 관점에서 서술되며, 스윈튼의 연기는 모성애의 양가성, 죄책감, 그리고 지속적이지만 설명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대담한 탐구다. 이는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며 엄청난 감정적 무게를 짊어져야 했던, 고통스러운 심리적 초상화였다. 이 역할로 그녀는 BAFTA와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올랐으며, 비할 데 없는 용기와 감정적 깊이를 지닌 배우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협업자들의 별자리
저먼을 넘어서
데릭 저먼의 죽음 이후, 틸다 스윈튼은 대체자를 찾는 대신 새로운 ‘창조적 가족’의 별자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충성심과 반복적인 협업에 기반한 그녀의 커리어 모델은 그녀가 형성기에 배운 정신의 직접적인 연장선이다. 그녀의 주요 협업자들은 각각 그녀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의 다른 면을 탐구할 수 있게 해주며,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단순한 역할의 연속이 아닌, 각기 다른 예술적 정신과의 선별된 대화로 만든다.
웨스 앤더슨 (스타일리스트)
웨스 앤더슨과의 다섯 편의 영화(<문라이즈 킹덤>(2012),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개들의 섬>(2018), <프렌치 디스패치>(2021),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는 그녀의 정확성과 신랄한 재치를 활용한다. 그의 세심하게 구성된 연극 같은 세계에서 그녀의 역할은 종종 작지만 항상 강렬한 카메오다. <문라이즈 킹덤>의 냉정한 ‘사회 복지사’, <프렌치 디스패치>의 미술 평론가 J.K.L. 베렌슨,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과학자 히켄루퍼 박사 등, 그녀는 앤더슨 특유의 절제되고 양식화된 연기 형태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날카로운 감성을 불어넣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각주의자)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와의 길고 깊은 개인적 파트너십은 그녀의 관능미와 심오한 감정적 깊이를 활성화한다. 그들의 관계는 그의 1999년 데뷔작 <프로타고니스츠>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10년 넘게 함께 개발한 풍성한 가족 드라마 <아이 앰 러브>(2009), 에로틱 스릴러 <비거 스플래시>(2015), 호러 대작 <서스페리아>(2018)를 제작했다. 그들의 공동 작업은 감각의 향연이며, 패션과 미학이 중심 서사 역할을 하는 시각적으로 황홀한 배경 위에서 욕망, 열정, 정체성의 주제를 탐구한다.
짐 자무시 (밤의 시인)
미국의 독립 영화감독 짐 자무시와 함께, 스윈튼은 그녀의 철학적이고 비범한 자질을 탐구한다. <브로큰 플라워>(2005), <리미츠 오브 컨트롤>(2009), <데드 돈 다이>(2019),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뱀파이어 로맨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까지 네 편의 영화를 통해, 그들은 차갑고, 야행성이며, 시적인 감성으로 정의되는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 고대의 현명한 뱀파이어 이브(Eve) 역을 맡은 스윈튼은, 뛰어난 예술가-시인-과학자들로 가득한 자무시의 우울하고 음악이 가득한 세계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과 지성을 구현한다.
페르소나 뒤의 인간
하이랜드에서의 삶
스크린 위에서의 비현실적인 존재감과는 달리, 틸다 스윈튼의 삶은 의도적으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그녀는 영화 산업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역의 네언(Nairn)이라는 마을에 거주한다. 이 선택은 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바로 그 기반이다. 이는 그녀가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창의적 자유와 협업 정신을 보호할 수 있게 해준다.
그녀의 사생활 역시 관습을 거부해왔다.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예술가이자 극작가인 존 번과 오랜 관계를 유지하며 1997년 쌍둥이 아너 스윈튼 번과 자비에 스윈튼 번을 낳았다. 2004년부터는 독일-뉴질랜드 출신의 시각 예술가 산드로 코프가 그녀의 파트너다. 그녀는 자신들의 관계를 행복하고 비관습적인 ‘친구 가족’이라고 묘사했다. 그녀의 딸 아너 스윈튼 번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조애나 호그 감독의 호평받는 영화 <더 수베니어>와 <더 수베니어 파트 2>에서 어머니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이러한 삶의 선택들은 그녀가 한때 고백했던 어린 시절의 야망을 반영한다. 그녀의 꿈은 명성이 아니라, 그저 “바닷가 집 한 채, 텃밭, 아이들, 개 몇 마리와 많은 친구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작업할 기회”였다.
스크린 너머의 예술
스윈튼의 예술 활동은 영화를 훨씬 넘어선다. 그녀의 퍼포먼스 작품 <The Maybe>는 런던 데뷔 이후 로마의 바라코 박물관(1996)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2013)에서 예고 없이 다시 등장하는 순회 이벤트가 되었다. 그녀는 또한 2019년 애퍼처 재단(Aperture Foundation)에서 <올란도>에서 영감을 받은 사진전을 기획하는 등 큐레이터 작업에도 참여했다. 프랑스 패션 사학자 올리비에 사야르와의 협업은 의복을 통해 기억과 역사를 탐구하는 일련의 호평받는 퍼포먼스 작품들로 이어졌다. 이러한 활동들은 취미가 아니라, 예술과 삶의 경계가 의도적으로 모호해지는 총체적인 예술 프로젝트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퀴어적 감수성
2021년, 스윈튼은 자신이 ‘퀴어(queer)’라고 밝혔으며, 자신에게 이 용어는 성적 지향보다는 감수성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정체성은 그녀가 평생 해온 작업을 적절하게 요약한다. 이런 의미에서 ‘퀴어’라는 것은 엄격한 범주 밖에서 존재하고,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며, 유동성을 존재의 상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안드로진한 미학, 젠더를 넘나드는 역할에서부터 협업 방식, 전통적인 스타 시스템에 대한 저항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커리어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 감수성이다.
‘진행 중인’ 대화: 살아있는 실천으로서의 예술
스윈튼의 협업과 지속적인 창조에 대한 철학은 2025년 9월부터 2026년 2월까지 암스테르담 아이 필름 뮤지엄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 ‘Tilda Swinton – Ongoing’에서 가장 완벽하게 표현될 예정이다. 회고전이 아닌, 그녀의 아이디어와 우정의 “살아있는 별자리”로 묘사되는 이 전시는 공동 저자로서의 그녀의 능동적인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스윈튼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루카 구아다니노, 조애나 호그, 데릭 저먼, 짐 자무시, 올리비에 사야르, 팀 워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등 그녀의 가장 가까운 예술적 파트너 8명을 초대하여 신작을 제작하고 기존 작품을 선보이도록 했다. 이 작품들은 기억, 자연, 우정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조애나 호그와 함께 1980년대 런던 아파트를 멀티미디어로 재구성한 작품, 루카 구아다니노의 신작 단편 영화와 조각품,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그녀의 본가에서 촬영한 팀 워커의 사진 시리즈 등이 있다. 올리비에 사야르와의 수일간의 퍼포먼스를 통해, 스윈튼은 그녀의 개인 소장품, 영화 의상, 가보에 생명을 불어넣을 예정이다. 이 전시는 예술이 정적인 산물이 아니라, 신뢰하는 친구들 사이의 살아 숨 쉬는 대화라는 그녀의 믿음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영원히 ‘진행 중’
틸다 스윈튼은 역설로 정의되는 예술가다. 반항을 택한 귀족, 블록버스터 스타가 된 아방가르드 뮤즈, 극도로 사적인 삶을 사는 공적 아이콘. 그녀의 커리어는 예술적 무결성을 한 치도 희생하지 않고도 영화 산업의 정점에 설 수 있음을 증명하는, 타협 없는 비전의 강력한 증거다.
그녀는 단 하나의 야망이 아닌, 깊고 지속적인 창의적 관계의 별자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평생의 작업을 구축했다. ‘Ongoing’ 전시와 1988년작 <Man to Man>의 역할을 다시 맡기 위해 2026년 런던 무대로 복귀하는 등, 그녀의 커리어에는 마지막 막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오직 탐험, 대화, 그리고 재창조의 지속적인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틸다 스윈튼의 유산은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 ‘게임’을 수행한 혁명적인 방식에 있다. 그녀는 단지 영화 산업 내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퍼포머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켰으며, 그녀 세대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