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테늄을 찾아서: AI는 어떻게 희귀 금속을 ‘새로운 금’으로 만들었나

Ruthenium
Peter Finch

루테늄(Ru)은 백금족에 속하는 은백색 금속이다. 오랫동안 산업적 쓰임은 제한적이고 시장은 작아 대중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었다. 그런 익명성은 끝났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클라우드와 AI 인프라를 키우는 사이, 루테늄은 무명에 가까운 부산물에서 전략 자원으로 격상됐고, 가격은 치솟았으며 수요처는 물량 확보 경쟁에 들어갔다.

왜 하필 이 금속인가, 왜 지금인가
데이터센터에서 쓰이는 최신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는 루테늄 초박막(나노미터의 일부)이 코팅돼 플래터 당 비트 밀도를 끌어올리고 자기 성능을 안정화한다. 요약하면, 디스크 한 장에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낮은 TB(테라바이트)당 비용으로 담게 해준다. 생성형 AI가 학습 데이터와 추론 워크로드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면서 이 ‘TB당 비용’ 공식이 결정적이 됐다. 고용량 ‘AI 대응’ HDD 출하는 늘고 있고, 이에 따라 루테늄 소비도 동반 상승 중이다.

AI의 영향은 저장장치에만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연구개발 현장에선 전통적 구리가 미세화·신뢰성 한계에 부딪히는 상호배선(인터커넥트) 영역에서 루테늄을 차세대 후보 물질로 시험 중이다. 첨단 공정의 극히 일부만 이쪽으로 이동해도, 이 작은 시장에 가해지는 기술적 수요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

헤드라인을 앞질러 뛴 시장
지난 1년 사이 루테늄 가격은 사실상 배 가까이 뛰어올라 10여 년 만의 고점을 다시 찍었고, 더 잘 알려진 귀금속들의 수익률을 앞질렀다. 원자재 기준으로 보면 시장 자체가 극도로 작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연간 수십 톤, 거래 규모도 수억 달러 수준으로 구리·니켈·금의 ‘수십억 달러’급과는 거리가 멀다. 가격 형성은 불투명하다. 대형 선물거래소가 없고, 정련·가공업체와 수요처 간의 직거래가 대부분이어서 유동성이 낮다. 그만큼 수요의 작은 변화도 가격 변동을 증폭시킨다.

구조적으로 좁은 공급망
루테늄 전용 광산은 없다. 거의 전량이 백금족(Platinum Group Metals) 채굴의 부산물로 나온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1차 생산의 절대다수를 맡고 있다. 플래티넘 업체들이 투자를 줄이거나 전력난·노사 분쟁을 겪으면 루테늄 물량도 함께 흔들린다. 사용 후 촉매나 전자폐기물에서의 재활용이 보탬이 되긴 하지만, 데이터 인프라에서 발생하는 신규 수요에 비하면 유량은 미미하다.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구조적 비탄력 공급 vs. 갑작스럽고 지속적인 수요’라는 전형적 병목을 지적하며, 부산물 회수의 큰 폭 개선이나 플래티넘 사이클의 장기 호조가 없다면 시장이 만성적 적자(공급부족) 상태로 기울 가능성을 거론한다. 공급 불안 심리가 선제적 재고 축적을 부르며 스팟 시장을 더 조이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전문가 시각 — 핵심 포인트 3가지
HDD의 비용 우위: 플래시(SSD) 대비 비용 경쟁력이 유지되는 한, 데이터센터의 ‘니어라인(nearline)’ 계층에서 HDD가 중심을 지키고 루테늄 수요는 구조적으로 뒷받침된다.
소재 효율화: 더 얇은 코팅과 엄격한 공정 제어로 기기당 투입량(그램 수)은 줄겠지만, 신규 설비 투자·배치의 규모 효과를 완전히 상쇄하긴 어렵다.
R&D 옵션: 반도체와 에너지 저장(인터커넥트·촉매·슈퍼커패시터 등) 영역의 적용은 ‘와일드카드’다. 상용화는 점진적이겠지만 누적 효과는 작지 않다.

뜻밖의 경쟁 구도: AI vs. 청정에너지
루테늄의 전기화학적 특성은 고성능 촉매와 차세대 에너지 저장장치(리튬–산소 전지, 고급 슈퍼커패시터 등)에서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들 프로젝트는 이제 AI가 형성한 가격 환경과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자본이 데이터 저장을 위해 루테늄을 사들이면, 루테늄에 의존하는 기후기술 쪽은 원가 구조가 더 빡빡해진다. 가격이 완화되거나 성숙한 대체 소재가 나오기 전까지 일부 에너지 저장 솔루션은 지연되거나, 더 풍부한 재료 중심으로 재설계될 수밖에 없다.

지정학과 쏠림 리스크
공급이 특정 국가에 고도로 집중돼 있고 정련은 소수 기업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루테늄은 핵심 광물 논의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빠른 해결책은 없다. 생산을 늘리려면 백금족 밸류체인 전반의 투자 사이클이 필요하지, ‘스위치 한번’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혁신을 질식시키지 않으면서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재활용 고도화, 공정·설계 상의 절감, 대체재 개발이라는 세 축이 핵심이 될 것이다.

앞으로 주목할 신호들
데이터센터 설비투자(Capex)와 스토리지 믹스: 하이퍼스케일러의 지출이 견조하고 HDD가 니어라인 계층을 유지하면 루테늄 수요는 상방을 지지받는다.
백금족 생산 가이던스: 남아공의 지속적 증산/차질은 루테늄의 가용성에 즉각 반영된다.
소재 돌파구: 루테늄 투입량을 줄이는 공정·소재 혁신이나, HDD 코팅·칩 인터커넥트·촉매 분야의 실용적 대안은 수요 곡선을 휘게 만들 수 있다.
재활용의 스케일업: 촉매·전자폐기물에서의 회수율을 높이면 공급 측에 보다 안정적인 ‘두 번째 다리’를 놓아 변동성을 낮출 수 있다.

결론
루테늄은 단 하나의 기술 파도가 어떻게 ‘틈새 소재’의 가격 지형을 순식간에 바꿔놓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AI 인프라가 계속 확대되는 한, 비용 효율적 데이터 저장에서의 역할은 이 금속에 지속적인 추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공급이 따라잡거나, 공학이 ‘적은 양으로 더 많은 성능’을 구현하기 전까지 루테늄 시장은 작은 변화도 큰 파장을 낳는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극도로 타이트한 지형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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