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언 머피, 독립에서 오스카까지: ‘정적의 강도’를 만든 배우

‘28일 후’부터 ‘오펜하이머’, 그리고 오늘 공개된 넷플릭스 신작 ‘Steve(스티브)’까지—무심한 시선과 절제된 호흡으로 시대를 사로잡다

Molly Se-kyung
몰리 세경
몰리 세경은 소설가이자 영화 및 텔레비전 평론가입니다. 스타일 섹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Cillian Murphy in Oppenheimer (2023)

시작과 무대

킬리언 머피는 음악을 하던 청년에서, 무대를 거쳐 스크린으로 넘어온 뒤 ‘조용하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을 고유의 언어로 완성했다. 초창기 연극 현장에서 단련한 호흡과 리듬, 미세한 몸짓의 제어는 이후 영화·TV 전반에 걸쳐 그의 연기를 규정하는 핵심 기초가 되었다.

첫 도약: ‘28일 후’가 연 문

2002년, 대니 보일의 포스트아포칼립스 스릴러 **‘28일 후’**는 머피의 국제적 인지도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그는 취약함과 생존 의지를 한 프레임 안에서 교차시키며, ‘대사보다 표정과 시선으로 서사를 밀어붙이는 배우’라는 인상을 각인시켰다. 이후 단숨에 스튜디오 블록버스터와 작가주의 영화 사이를 왕복하는, 드문 궤적을 달리기 시작한다.

스펙트럼의 확장: 빌런, 서정, 역사

중반기 머피의 행보는 극단의 스펙트럼을 증명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에서 조너선 크레인/스케어크로로 소름 돋는 냉기를 구현했고(‘배트맨 비긴즈’—‘다크 나이트’—‘다크 나이트 라이즈’), 웨스 크레이븐의 항공 스릴러는 국내 개봉 제목 **‘나이트 플라이트’(원제: ‘Red Eye’)**로 알려졌다. 닐 조던의 **‘플루토에서 아침을’**에서는 섬세한 휴머니즘을,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는 정치적·도덕적 균열을 정직하게 통과했다. 한마디로, 머피는 ‘양식’이 아니라 ‘인물’에 서명하는 배우다.

믿고 부르는 협업: 보일과 놀란

머피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축은 신뢰할 수 있는 연출자들과의 장기 협업이다. 대니 보일의 **‘선샤인(2007)’**에서 존재론적 SF의 긴장을 성긴 숨결로 붙들더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덩케르크’**에서는 큰 스케일 속에서도 ‘내부의 떨림’을 잃지 않는 연기 메커니즘을 선명히 했다. 덕분에 그는 메이저 상업영화와 고집스런 예술영화의 교집합을 넓혀온 보기 드문 스타가 되었다.

TV의 정점: ‘피키 블라인더스’

2013년 시작된 **‘피키 블라인더스’**에서 머피는 토미 셸비로 6시즌을 관통했다. 권력과 트라우마, 야망이 얽힌 인물을 ‘과잉’ 없이 누적시키는 방식으로, TV 포맷이 축적할 수 있는 감정의 층위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 캐릭터는 전 세계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완성의 봉인: ‘오펜하이머’와 오스카

놀란의 **‘오펜하이머’**는 머피 커리어의 정점이다. 그는 천재성과 윤리, 정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과장 없이 설계하며 ‘최소의 제스처로 최대의 서사’를 증명했다.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절제의 미학’이 상업영화의 중심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최신작 공개: 넷플릭스 영화 ‘Steve(스티브)’

머피의 신작 장편 ‘Steve(스티브)’가 오늘, 2025년 10월 3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팀 미엘란츠 연출, 맥스 포터의 소설 『Shy』 재해석을 바탕으로, 1990년대 ‘마지막 기회’ 대안학교의 하루를 응축한다. 학교 폐쇄 압박과 촬영팀의 개입, 제도권의 불신, 그리고 교장 스티브 자신의 균열이 같은 날 거세게 요동친다. 함께한 배우로는 트레이시 울먼, 제이 리어거, 심비 아지카워, 에밀리 왓슨 등이 이름을 올렸다. 화려한 장치보다 ‘인물과 리듬’에 올인한 작품으로, 오스카 이후 머피가 왜 다시 ‘심리의 미세 진동’으로 돌아오는지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머피식 연기의 해부

머피의 강점은 ‘덜어내기’다. 음성의 미세한 떨림, 눈동자의 각도, 호흡의 길이로 장면을 지배한다. 말을 아끼되 생각은 넘치게 하고, 감정은 숨기되 흔적은 남긴다. 카메라는 이 ‘정적의 강도’를 포착하며 관객을 인물의 내면으로 끌어당긴다.

스케일의 균형: 인디 ↔ 블록버스터

머피는 소규모 드라마와 초대형 프로젝트를 오가면서도 일관된 기준—캐릭터의 도덕적·정서적 위험—을 지킨다. 인디는 실험의 근육을 키우고, 블록버스터는 기술적 규율을 다진다. 결국 그의 ‘스타성’은 볼륨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제작과 동반자들

최근 그는 제작자로도 움직이며 신뢰하는 작가·감독들과의 연쇄 협업을 촘촘히 이어간다. 거대한 제국을 세우기보다, 모호성과 여백을 지지하는 이야기들을 선별·지지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그 결과, 배우와 제작의 결이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영향과 유산

짐(‘28일 후’), 토미 셸비(‘피키 블라인더스’), 로버트 피셔(‘인셉션’), 이름 없는 병사(‘덩케르크’), J. 로버트 오펜하이머(‘오펜하이머’), 그리고 스티브—이들은 ‘더 큰 시스템’과 맞서는 개인들의 서로 다른 문법이다. 공통분모는 책임과 야망, 돌봄과 권위, 지성과 양심의 긴장이다. 머피는 ‘대중적이면서도 까다로운’ 길이 가능함을, 자신만의 속도로 증명해 왔다.

다음 행보

머피는 여전히 침묵의 공간을 남겨두는 시나리오를 향한다. 역사극이든 동시대 리얼리즘이든, 혹은 하이 콘셉트 실험이든—그의 연기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에 무게를 싣는다. ‘Steve(스티브)’ 이후에도 그 선택의 일관성은 계속될 것이다.

편집 메모: ‘Steve(스티브)’는 2025년 10월 3일 넷플릭스 공개.

Cillian Murphy
Cillian Murphy in In Time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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