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의료화, DSM 진단명은 30년 넘게 그대로인데 진단은 늘었다

Molly Se-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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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화란 슬픔, 산만함, 수줍음, 노화처럼 삶의 평범한 부분이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치료 대상이 되는 과정이다. 반세기 동안 이 단어는 주로 고발의 언어로 쓰였다. 그 역사는 대개 정신의학 진단 편람 DSM이 얇은 소책자에서 전화번호부만 한 책으로 불어난 이야기로 전해진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너무 일찍 끝난다. 편람의 질환 목록은 오래전에 늘기를 멈췄다. 계속 불어난 것은 기준선과 정의의 폭, 그리고 사람들이 진단명에 손을 뻗는 속도였다. 정상을 둘러싼 싸움은 목차에서 기준 수치로 무대를 옮겼고, 누가 환자인지는 이제 거기서 정해진다.

진단 편람을 한 번도 펴 보지 않은 독자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진단은 묘사로 끝나지 않는다. 누가 치료를 받고 누가 학교 지원이나 보험 보장을 받는지 결정하며, 사람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방식까지 바꾼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구조다. 수치가 선을 넘는 순간 이름이 붙는다. 선을 잘못 그으면 양쪽 모두 대가를 치른다. 너무 좁으면 고통이 방치되고, 너무 넓으면 평범한 괴로움이 평생 관리할 질환이 된다.

‘의료화’는 사회학의 말이었다

이 용어는 의학보다 사회학이 먼저 썼다. 1972년 의료사회학자 어빙 졸라는 의료화를 “의학과 ‘건강’·‘질병’이라는 꼬리표를 인간 존재의 점점 더 넓은 영역과 관련된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학을 사회 통제의 제도, 곧 무엇이 일탈인지 정하는 기관으로 봤다.

이 개념의 대표 학자가 된 사회학자 피터 콘래드는 지금도 쓰이는 정의를 내놨다. “비의료적 문제가 대개 질병과 장애라는 형태로 의료적 문제로 정의되고 다뤄지는 과정”이다. 그가 1973년 발표한 초기 사례 연구의 대상은 아동의 과잉운동증이었다. 훗날 ADHD로 이름이 바뀐 상태다.

논쟁의 정점은 1975년 사상가 이반 일리치의 『Medical Nemesis』였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의료 체제가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 됐다.”

일리치는 이 피해를 의원병이라 불렀고, 임상에 그치지 않는 문화적 피해라고 주장했다. 고통과 노화, 죽음을 전문가에게 넘긴 사회는 그것을 견디는 자기만의 방식을 잃는다는 것이다.

DSM은 불어났고, 1980년대 말 멈췄다

익숙한 이야기 속 숫자는 편람 자체에서 나온다. 학술지 Behavioral Sciences에 실린 알리나 수리스, 라이언 홀리데이, 캐럴 노스의 정신질환 분류사 연구에 따르면, 1952년 초판 DSM은 130쪽에 진단명 106개를 담았다. 정신의학을 증상 목록 중심으로 재편한 1980년 3판에서는 265개로 뛰었다.

이후 곡선은 평평해졌다. 1987년 3판 개정판 292개, 1994년 DSM-IV 297개, 2013년 DSM-5 298개다. DSM-5는 992쪽에 달했지만 진단명 수는 거의 그대로였다.

증가가 한 방향으로만 간 것도 아니다. 가장 뚜렷한 사례는 반대 방향이다. 동성애는 1973년부터 2판 인쇄본에서 빠져 ‘성적 지향 장애’로 대체됐고, 1987년까지 완전히 삭제됐다.

이것은 탈의료화이고, 같은 역사의 일부다. 편람은 늘 생물학만큼 사회의 판단을 기록해 왔다.

판을 거듭할 때마다 일상을 한 조각씩 삼키는 편람이라는 대중의 그림은 약 30년 낡았다. 1980년대 말 이후 진단명 수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진단율은 그래도 올랐다. 팽창이 다른 길을 찾은 것이다.

정상에서 진단으로 가는 세 갈래 길

첫째 길은 기준선이다. 질환은 목록에 그대로 있고, 그 질환을 정의하는 선이 움직인다. 가장 선명한 예는 심장학이다. 혈압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심장학회와 미국심장협회가 고혈압 기준을 130/80mmHg로 낮추자, 폴 먼트너 연구팀은 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에서 고혈압에 해당하는 미국 성인 비율이 기존 정의의 약 32%에서 약 46%로 오른다고 계산했다. 새 병을 만든 사람은 없다. 수백만 명이 자기 쪽으로 다가온 선을 넘었을 뿐이다.

둘째 길은 정의의 확장이다. 정신의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례는 슬픔이다. DSM-5는 최근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주요우울장애 진단을 내리지 못하게 하던 이른바 ‘사별 배제’ 조항을 없앴다.

DSM-IV 작업단을 이끈 정신과 의사 앨런 프랜시스는 이를 새 판의 최악의 변경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는 DSM-5와 제약업계, 그리고 부제가 말하는 “평범한 삶의 의료화”를 내부자의 눈으로 공격한 『Saving Normal』에서 슬픔을 핵심 사례로 삼았다.

2022년 본문 개정판 DSM-5-TR은 지속성 비탄장애를 추가했다. 대중의 반발에 대응한 안전장치도 함께 들어갔다. 성인은 사망 후 최소 12개월이 지나야 이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셋째 길은 인식이다. 심리학자 루시 포크스와 잭 앤드루스는 2023년 학술지 New Ideas in Psychology에서 ‘유병률 인플레이션 가설’을 제시했다. 인식 개선 캠페인이 보고율을 두 방향으로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나는 그동안 놓친 실제 문제를 알아차리게 돕는 방향이다. 다른 하나는 일부 사람이 평범한 괴로움을 질병으로 읽게 만드는 방향이고, 그 뒤에는 꼬리표가 자신이 이름 붙인 경험을 빚어낼 수 있다. 두 저자는 이 논문을 증명이 아니라 검증하자는 제안으로 내놨다.

세 갈래 길 아래에는 상업의 흐름이 있다. 언론인 레이 모이니핸과 연구자 앨런 카셀스는 2005년 『Selling Sickness』에서 치료 시장을 넓히는 쪽으로 정의가 확장된 흔한 질환 10가지를 분석했다. 두 사람은 이런 관행을 가리키는 ‘질병 장사’라는 말을 널리 퍼뜨렸다.

진단 증가를 옹호하는 논리

반대편의 가장 강한 주장도 따로 들어야 한다. 제약업계만이 아니라 진지한 임상의들이 이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논리는 이렇다. 진단율 상승은 대부분 원래 있었지만 이름이 없던 상태를 반영한다. 여성의 자폐, 성인의 ADHD, 남성의 우울증은 기준이 좁은 고정관념 위에 세워진 탓에 수십 년간 놓쳤다.

진단명은 학교와 직장, 의료 체계에서 지원을 받는 유일한 문인 경우가 많다. 이를 의료화라 부르면 그들의 고통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편람이 너무 관대한 게 아니라 너무 신중하다고 보는 정신과 의사도 있다.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정신과 의사 아와이스 아프타브는 2026년 3월 Psychiatric Times 기고에서 DSM 기준을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정신병리의 광범위한 영역에 아예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과잉진단론의 약한 고리를 겨냥한 비판도 있다. 일반의 엘케 하우스만은 BJGP Life에서 신경과 의사 수잰 오설리번의 책 『The Age of Diagnosis』를 비판했다. 롱코비드를 대체로 심인성으로 다뤘고, 하우스만이 보기에 입맛에 맞는 연구만 골랐다는 것이다.

같은 책을 Women in Neuroscience UK에서 서평한 키아라 리는 “오설리번은 논쟁적이고 널리 토론되는 주제임에도 자폐 과잉진단을 사실로 제시한다”고 썼다.

두 진영 모두 절반은 옳다

MCM의 판단은 이렇다. 두 진영은 같은 기계를 서로 다른 끝에서 묘사한다. 과소진단과 과잉진단은 동시에 늘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폐를 놓친 소녀와, 장례식 몇 주 만에 항우울제를 받은 아내 잃은 남성은 경쟁하는 일화가 아니다. 목적을 밝히지 않고 기준선을 정하는 진단 체계가 만들어 내는 결과다.

아프타브 비판의 쓸모 있는 부분이 여기 있고, 그 칼날은 양쪽을 벤다. 그는 “DSM의 기준선은 무언가를 뚜렷하게 최적화하는 것 같지 않다”고 썼다. “일부 기준선은 설계 단계부터 반쯤 자의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문장도 덧붙였다.

무엇을 이루려고 고른 적이 없는 선은 어느 쪽 비판에도 방어할 수 없다. 사람을 빠뜨린다는 비판에도, 너무 많이 끌어들인다는 비판에도.

영국 신경과 의사 오설리번은 문제의 나머지 절반을 날카롭게 짚는다. 그의 책은 어떤 치료도 도움이 안 될 만큼 일찍 병을 찾아내는 ‘과잉 발견’과 ‘질병 정의의 확장’을 구분한다. 그리고 최근 ADHD와 자폐 진단 증가의 상당 부분을 후자 탓으로 돌린다.

과학 매체 Undark에서 이 책을 서평한 언론인 롤라 부처는 핵심 고발을 이렇게 요약했다. 환자들이 “기술적으로는 맞지만 반드시 본인에게 이롭지는 않은 진단”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용된 수치는 크다. 미국 아동의 ADHD 진단은 20년 동안 6% 미만에서 10% 가까이로 올랐다. 미국 자폐 추정치는 2000년 150명 중 1명에서 2022년 31명 중 1명이 됐다. 어느 숫자도 그것만으로는 새 사례가 발견인지 부풀림인지 가르지 못한다. 지금의 체계는 애초에 그 질문에 답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다음 DSM은 경계선 자체를 흐리려 한다

논쟁에는 이제 실물 기준점이 생겼다. 2026년 1월 미국정신의학회(APA)는 편람의 미래 로드맵을 발표했다. 초안은 펜실베이니아대 정신의학과 학과장 마리아 오켄도가 이끄는 전략위원회가 만들었다.

로드맵은 책 이름을 ‘진단·과학 편람’으로 바꾸고 평가를 네 부분으로 짜자고 제안한다. 사회경제적 여건 같은 맥락 요인, 유전학부터 착용형 기기까지 아우르는 생물학적 지표, 특이도와 중증도가 제각각인 진단, 여러 질환을 가로지르는 초진단적 특징이다. 목표는 “DSM이 임상의에게 유용하게 남도록 하면서 과학적 엄밀성, 문화적 포용성, 적응성을 높이는 것”이다.

고통을 차원으로 재면 의료화 논쟁의 조건이 바뀐다. 증상이 있다·없다의 칸이 아니라 연속선 위에 놓이면, 정상과 장애 사이에 다툴 단일한 경계는 사라진다. 남는 것은 척도, 그리고 어디서 치료를 시작할지에 대한 결정뿐이다.

범주 전쟁은 끝날 수 있다. 동시에 기준선은 지금보다 더 보이지 않게 될 수 있다. 목록이 멈춘 뒤 팽창 대부분이 일어난 곳이 바로 그 기준선이다.

기록으로 확인된 것, 아직 결론 나지 않은 것

기록된 부분은 단단하다. DSM 진단명은 초판에서 3판 사이 두 배 반으로 늘었고, 1980년대 말 이후 거의 변하지 않았다. 동성애는 삭제됐다. 사별 배제는 DSM-5에서 빠졌고, 지속성 비탄장애는 DSM-5-TR에 들어왔다.

2017년 미국 혈압 지침은 서류상 미국 성인 약 7명 중 1명을 고혈압 범주로 옮겼다. APA는 지금 부분적으로 차원에 기반한 편람을 설계하고 있다.

다툼이 남은 부분도 그만큼 분명하다. 자폐, ADHD, 불안, 우울의 진단율 상승이 주로 발견인지 부풀림인지는 정리되지 않았다. 인식 개선 캠페인이 도움이 되는지 문제를 키우는지는, 포크스와 앤드루스 스스로의 표현대로 검증할 가설로 남아 있다. 차원 편람이 기준선을 더 정직하게 만들지 더 안 보이게 만들지는 APA가 아직 내리지 않은 선택에 달렸다.

MCM의 결론은 이렇다. 의학이 평범한 삶을 식민지로 만들었느냐는 이제 쓸모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 고발은 두 배로 불어나던 편람에는 맞았지만, 멈춰 선 편람에는 잘 맞지 않는다. 물어야 할 것은 각 기준선을 누가 정하는지, 그 선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그 선에 걸린 사람들이 실제로 나아졌는지 누가 확인하는지다. 다음 편람이 이 답을 문서로 내놓기 전까지, 정상은 계속 깨알 같은 조항 속에서 정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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