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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 비행기 대신 요트로 대서양을 두 번 건넌 기후 활동가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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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
그레타 툰베리
Photo: Shane Balkowitsch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2003년 1월 3일
Stockholm, Sweden
직업기후 활동가
대표작브레이킹 바운더리: 지구의 과학, 그레타 툰베리
수상타임 올해의 인물 · Right Livelihood · Amnesty International Ambassador of Conscience · Rachel Carson Prize · Fritt Ord · International Children's Peace Prize · Geddes Environment Medal · Gulbenkian Prize for Humanity

그레타 툰베리가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연설이 아니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일이었다. 뉴욕 유엔에서 연설해 달라는 초청을 받은 그는 비행기를 거부하고, 샤워 시설도 화장실도 없이 양동이에 용변을 봐야 하는 경주용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탄소 배출 문제에 관한 한 가지 주장을 전하기 위해 바다에서 15일을 보낸 것이다. 다음 참석지인 기후 정상회의가 갑작스럽게 칠레에서 스페인으로 바뀌었을 때도 그는 항공권을 사지 않았다. 대신 함께 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글을 올렸고, 쌍동선에서 생활하던 호주인 선원 두 명이 그를 태우고 다시 바다를 건넜다.

이런 고집이야말로 툰베리의 활동 방식 그 자체다. 그는 편리한 선택지를 거부하며 대중 앞에서 살아왔다. 비행기를 타는 일, 사진 찍기 좋은 행사, 시상식이 딸린 상, 성명서에 그럴듯하게 담기는 타협을 모두 마다했다. 그 덕에 그는 동세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활동가이자 가장 논쟁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됐지만, 그 긴장을 해소하는 데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정확한 말을 하는 데 따르는 부작용으로 미움받는 일을 여긴다.

스톡홀름의 말없는 아이

그레타 틴틴 엘레오노라 에른만 툰베리(Greta Tintin Eleonora Ernman Thunberg)는 스톡홀름에서 자랐다. 오페라 가수 말레나 에른만과 배우 스반테 툰베리의 장녀다. 친할아버지 올로프 툰베리는 배우이자 감독이었고, 가운데 이름은 에르제의 소년 기자 캐릭터에서 따왔다. 그는 여덟 살 때 학교에서 처음 기후변화에 관해 들었다. 문제를 알고도 어른들이 왜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의문은 추상적인 데 머물지 않았다. 열한 살 무렵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게 됐고, 먹는 양도 크게 줄어 두 달 만에 10킬로그램이 빠졌다.

이후 아스퍼거 증후군, 강박장애, 선택적 함구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선택적 함구증을 두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말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툰베리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자폐를 장애로 취급하기를 줄곧 거부해왔다. 자폐를 초능력이라고 부르며, 외면하지 못하고 아는 것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향이야말로 자신을 활동가의 길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다른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어머니는 2015년 스웨덴에서 그의 진단 사실을 공개했다.

세상이 그를 알기 전부터 툰베리는 집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약 2년 동안 그래프와 자료를 들이밀며 부모에게 가족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라고 설득했다. 부모는 채식주의자가 됐고 비행기 이용도 중단했다. 그 결정으로 에른만의 국제 오페라 활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가족은 네 사람 모두의 이름으로 2018년 출간한 Scener ur hjärtat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줬고, 책은 나중에 내용을 보강해 영어판 Our House Is on Fire: Scenes of a Family and a Planet in Crisis로도 출간됐다.

릭스다그 앞에 세운 팻말

2018년 5월 그는 신문 Svenska Dagbladet이 주최한 기후 에세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위기의 규모를 알고 나니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썼다. 이 글을 계기로 작은 지역 단체인 Fossil Free Dalsland과 연결됐다. 그곳의 한 회원이 파크랜드 총기 참사 이후 거리로 나선 미국 학생들에게서 착안해 등교 거부 시위를 제안했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시작했다.

2018년 8월 20일, 스웨덴에서 관측 사상 가장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9학년 첫 학기가 시작되자 그는 릭스다그 앞 자갈길에 앉았다. 손으로 직접 만든 팻말에는 ‘Skolstrejk för klimatet’, 즉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9월 9일 총선 때까지 매일 등교를 거부했고, 이후에는 금요일마다 시위를 이어갔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이 불씨를 키웠다. 12월에는 최소 270개 도시에서 학생 2만 명 이상이 파업에 동참했고, 매주 반복되는 시위에는 ‘Fridays for Future’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뒤로 좀처럼 보기 힘든 속도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카토비체에서 열린 COP24 기후회의에서 그는 대표들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에는 여러분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했다. 2019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그의 상징적인 말이 된 “우리 집에 불이 났다”를 외쳤다. 영국·유럽·프랑스 의회에서 연설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만났다. 미국 하원 기후위기 특별위원회가 증언을 요청하자 그는 여덟 문장만 읽고, 증거 자료로 온난화 1.5도에 관한 IPCC 보고서를 제출했다. 과학이 직접 말해야 한다는 그의 입장을 압축해서 보여준 행동이었다.

“어떻게 감히”

2019년 8월 플리머스에서 뉴욕까지 Malizia II를 타고 건넌 항해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마무리됐다.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분노와 눈물을 담아 쏟아낸 연설은 몇 시간 만에 전 세계로 퍼졌다. 같은 날 툰베리와 다른 청소년 15명은 온실가스 배출을 이유로 5개국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제소했다. 그 주인 9월 20일과 27일 열린 세계 기후 파업에는 주최 측 집계로 400만 명 넘게 참여했다. 툰베리는 몬트리올 행진을 이끌었고 명예시민으로 선정됐다. 12월에는 타임지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역대 최연소이자 21세기에 태어난 첫 수상자였다.

정치만큼이나 문화계도 빠르게 그를 받아들였다. 동명의 밴드가 발표한 첫 트랙 The 1975의 마지막에는 툰베리의 목소리가 담겼다. 그는 시민 불복종에 나설 때라고 청자들에게 말했고, 그의 요청에 따라 수익금은 Extinction Rebellion에 전달됐다. Pearl Jam의 Retrograde 뮤직비디오에서는 점쟁이로 등장했고, 데이비드 애튼버러와 인터뷰한 BBC의 Today 프로그램에서는 객원 편집을 맡았다. 화가 엘리자베스 페이턴은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과학자들은 긴 더듬이가 그의 땋은 머리를 닮았다는 이유로 케냐에서 발견된 딱정벌레에 Nelloptodes gretae라는 이름을 붙였다. 거미의 한 속과 파나마 개구리에도 그의 이름이 뒤따랐다.

영화감독 네이선 그로스먼은 릭스다그 앞에서 혼자 시위하던 첫날부터 툰베리를 촬영했다. 카메라와 음향을 모두 직접 맡았다. 그 결과물인 I Am Greta는 2020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연설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 지친 기색과 일상, 묵묵히 실무를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겼다. BBC는 뒤이어 시리즈 Greta Thunberg: A Year to Change the World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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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의 대신 책

2021년 무렵 툰베리는 정상회의 순회에 인내심을 잃었다.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서 각국 지도자들의 약속을 “블라블라블라”이자 그린워싱이라고 일축했고, 이후 여러 회의에 불참했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책이었다. 2022년 Penguin의 Allen Lane 임프린트에서 출간된 The Climate Book에는 해양학자와 경제학자부터 원주민 지도자까지 100명이 넘는 기고자의 글이 실렸고, 그 사이사이에 툰베리 자신의 에세이가 배치됐다. 그는 저작권과 인세 전액을 자신의 재단에 넘겼다. 앞서 출간한 연설문 모음집 No One Is Too Small to Make a Difference의 수익금 역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돈은 그가 얼마나 일관적인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곤 했다. 툰베리는 북유럽 국가들이 배출량을 충분히 빠르게 줄이지 않고 있다며 2019년 Nordic Council Environment Prize를 거절했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시상식에는 좀처럼 참석하지 않는다. 2020년 Gulbenkian Prize for Humanity를 받았을 때는 상금 100만 유로 전액을 기후 프로젝트와 글로벌 사우스에서 가장 큰 피해를 겪는 사람들에게 기부했다. Right Livelihood Award와 Amnesty International의 Ambassador of Conscience 수상 경력, 거듭된 노벨평화상 후보 지명도 있지만 그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찬사가 멈추는 지점

툰베리를 향한 비판의 양상은 세월이 흐르며 달라졌다. 초기에는 얕잡아 보는 시선이 많았다. 어린아이일 뿐이고,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으며, 경제를 모른다는 식이었다. 더 추악한 공격도 있었다. 앨버타의 한 석유 서비스 업체는 ‘Greta’라고 이름 붙인 소녀를 성폭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스티커를 배포했다가 나중에 사과했다. 한편 마거릿 애트우드는 그를 환경의 잔 다르크라고 불렀다. 연구자들은 2019년 툰베리의 활동 이후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와 비행기 이용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뚜렷하게 커진 현상에 ‘그레타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스웨덴 국내선 이용은 4퍼센트 감소했다.

그가 관심의 범위를 넓히자 비판은 한층 날카로워졌다. 2023년 10월부터 금요 시위에 친팔레스타인 팻말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고,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을 즉각 규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 그는 다음 날 공격에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교육부는 교육과정에서 그를 롤모델로 언급한 부분을 삭제했다. 독일의 과거 동료들도 거리를 뒀다. 툰베리는 인권 없이는 기후 정의도 없으며, 정의를 위한 운동이라면 어떤 고통에 주목할지 골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비판자들은 한때 정치적 입장을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모았던 의제를 흐렸다고 반박한다. 양측이 동의하는 점은 하나다. 툰베리는 지지층을 붙잡으려고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체포, 벌금, 추방

툰베리는 2023년 6월 마지막 등교 거부 시위와 함께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스웨덴 졸업식 복장인 흰 드레스와 모자를 착용했다. 이후 스톡홀름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무렵 그의 활동은 보도에서 시민 불복종의 최전선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독일 경찰은 뤼체라트 인근 가르츠바일러 갈탄 광산 가장자리에서 그를 잠시 구금했다. 말뫼 법원은 항구에서 유조선의 진입을 막은 혐의로 두 차례 벌금을 부과했지만, 첫 판결이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그는 같은 도로로 돌아왔다. 석유업계 포럼 밖 시위와 관련한 런던 재판은 2024년 초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판사의 판단으로 무산됐다.

2025년 툰베리는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 선단 두 곳에 합류했다. 6월 이스라엘군은 공해상에서 Madleen호에 승선했고, 툰베리는 하루 안에 추방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그를 이상하고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 부르자, 그는 세상에는 화가 난 젊은 여성이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10월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출항한 훨씬 큰 규모의 Global Sumud Flotilla가 저지당했고, 그는 다시 구금돼 추방됐다. 툰베리와 다른 참가자들은 구금 중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했다. 11월에는 COP30 폐막에 맞춰 Extinction Rebellion이 베네치아 대운하를 녹색으로 물들이는 일을 도왔고, 48시간 동안 도시 출입이 금지됐다. 12월에는 런던 시 경찰이 수감된 Palestine Action 활동가들을 지지하는 팻말을 들고 있던 그를 체포했다.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다.

스웨덴으로, 그리고 다시 법정으로

바다와 철도를 이용해 곳곳을 누볐지만, 2026년 툰베리는 처음 싸움을 시작한 현장으로 다시 향했다. 3월에는 코펜하겐 인민기후행진에서 덴마크 의회 앞 연설에 나섰고, 7월에는 무기 제조업체 라인메탈을 봉쇄하는 시위 도중 베를린 경찰에 구금됐다. 스웨덴 총선을 3주 앞둔 8월 24일에는 바사파르켄에서 의회 건물 앞 구스타프 아돌프 광장까지 행진한 시위대 약 1만 명에게 연설했다. 한때 혼자 앉아 있던 바로 그 의회 앞이었다.

그리고 9월, 그는 다시 법정으로 향했다. 2022년 툰베리는 청년 600여 명과 함께 스웨덴 정부의 기후 정책이 미흡하다며 제기한 집단소송 ‘오로라 사건’에 참여했다. 대법원은 2025년 2월 정부에 행동을 명령할 권한이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지만, 청구 내용을 달리하면 승소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2026년 9월 22일 툰베리는 오로라가 두 번째 소송을 제기했다고 발표했다. 스웨덴이 아동과 청소년을 기후 피해로부터 보호할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으며, 수입 바이오매스 연소처럼 현재 집계에서 빠진 배출량도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캠페인은 크라우드펀딩으로 18만 파운드가 넘는 금액을 모았다.

느리고, 절차에 충실하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멀리서 훈계한다는 비판을 결코 피할 수 없는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 사는 나라의 정부를 겨냥한다는 점에서도 툰베리다운 행보다. 열한 살에 말을 멈췄던 소녀는 이제 말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만, 자갈길 위 팻말을 들었을 때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문제를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번에는 법정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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