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먼드 & 레이’ – Raymond & Ray, 두 형제의 훌륭한 무덤을 파놓고 손님으로 채워 버린다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 2022년. 이완 맥그리거와 이선 호크가 떠받치는 건조한 블랙코미디.
Martha O'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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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 레이〉는 로드리고 가르시아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코미디 드라마다. 이완 맥그리거가 레이먼드를, 이선 호크가 레이를 연기한다. 2022년 9월 12일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고, 10월 14일 일부 극장에서 개봉한 뒤 일주일 만인 10월 21일 애플 TV+로 공개됐다. 러닝타임은 106분. 죽은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부탁 하나가 사이가 소원했던 이복형제를 한자리에 불러 모으고, 영화는 그 부탁이 끌어내는 시간을 따라간다.

출발점은 꽤 단출하다. 비가 내리는 늦은 밤, 레이먼드가 외딴 오두막까지 차를 몰고 가 이복형제 레이에게 아버지 벤 해리스의 부고를 전한다. 레이먼드는 따분한 사무직에 매여 있고 이혼 절차를 밟는 중이다. 레이는 헤로인 중독에서 회복하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억지로 가르치다시피 한 트럼펫을 아버지에게 맞서는 뜻으로 내려놓은 뒤로는 연주도 하지 않는다. 레이는 처음에 가기를 꺼리지만, 레이먼드가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잃었다고 털어놓자 결국 길을 나선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학대 때문에 거의 5년째 얼굴을 보지 않던 사이다. 면허를 잃었다는 고백이 레이를 움직이고, 그 덕에 두 사람이 한 차에 오른다는 설정은 영리하다. 서로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을 오랜 시간 좁은 공간에 가두는, 로드무비의 오래된 방식이다. 다만 5년의 공백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어색함을 남겼는지는 차 안 장면에서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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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운전 끝에 장례식장에 도착한 형제는 먼저 황당한 요구와 마주한다. 아버지는 알몸으로 묻히길 원했고, 아들들이 직접 손으로 무덤을 파 주기를 바랐다. 죽어서까지 자식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남자라는 사실이 이 요구 하나로 드러난다. 시놉시스만 읽으면 블랙 코미디의 뼈대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영화가 웃음을 끌어내는 대목도 대개 이 기묘한 요구와 형제의 어색한 반응 사이에서 나온다.

형제는 아버지가 살던 집으로 가 간호사 루시아를 만난다. 루시아는 아버지의 연인이기도 했다. 그가 건네는 상자 두 개가 영화 초반의 가장 좋은 장면을 만든다. 레이먼드의 상자에는 인형과 아이스스케이트, 콘돔이 들어 있다.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풀리지 않는 물건들이고, 영화도 서둘러 설명하지 않는다. 레이의 상자에는 트럼펫이 있다. 십대 때 아버지가 부숴 버렸다고 믿었던 바로 그 악기다. 루시아는 아버지가 몇 주 전에 그것을 고쳐 놓았다고 전한다. 평생 미워해 온 사람이 마지막에 남긴 알 수 없는 호의 앞에서 레이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선 호크는 이 순간에서 분노가 풀리지도, 고마움으로 바뀌지도 않은 채 뒤엉킨 얼굴을 절제해서 보여 준다.

아버지 해리스는 영화 내내 자리에 없는 인물이다. 그는 남이 전하는 말, 상자 두 개, 사진 한 장, 편지 한 통으로만 모습을 드러낸다. 관객은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더는 따져 물을 수 없는 사람을 조각조각 맞춰야 한다. 억지로 트럼펫을 가르친 사람이 죽기 전에 그 악기를 고쳐 놓았고, 연인을 곁에 두면서 바깥에는 여러 아들을 남겼다. 영화는 이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을 해명하려 들지 않고 그대로 보여 준다. 나는 이 선택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사람의 속내를 알려 주겠다고 나서는 순간, 이 이야기는 거짓말이 되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루시아는 아버지의 셔츠 주머니에 자신의 누드 사진을 넣어 두고 떠나고, 레이먼드는 그 사진을 슬쩍 챙긴다. 레이는 아버지의 마지막 며칠을 병원에서 도운 키에라를 만난다. 키에라는 아버지가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늘 같은 연주곡을 들었다고 알려 준다. 레이는 그를 장례식에 초대한다. 무덤을 파는 동안 레이는 웨스트 목사와 아버지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루시아가 아들 사이먼을 데리고 나타나 그 역시 형제라고 밝힌다. 이어 쌍둥이 형제까지 찾아와 자신들도 해리스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번갈아 삽을 잡는다.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곳에 아들을 남겨 두었는지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만 이 연달은 폭로를 영화가 충분히 다루지는 못한다. 새 얼굴이 등장할 때마다 이야기의 초점이 흩어지고, 사이먼이나 쌍둥이는 신분 말고는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웨스트 목사와 나누는 신앙 이야기도 인물에 깊이를 더할 만한 대화였는데 스쳐 지나가고 만다.

매장이 끝난 뒤에야 영화는 크게 흔들린다. 웨스트 목사가 레이먼드에게 한마디 해 달라고 청하자, 레이먼드는 감당하지 못하고 차로 달려가 총을 꺼내 온다. 총구는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이어 땅에 묻힌 아버지의 관을 향해 발사된다. 루시아가 그를 달랜다. 이 장면에서 이완 맥그리거는 평생 눌러 온 감정이 터지는 순간을 과장 없이 연기하고, 그동안 농담처럼 굴러가던 영화가 처음으로 웃음기를 거둔다. 곧이어 레이가 트럼펫을 꺼내 연주곡을 분다. 말로는 하지 못한 일을 소리로 대신하는 순간이고, 장례식의 가장 설득력 있는 마무리다. 웨스트 목사는 끝으로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한 통씩 건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장례를 마친 레이먼드는 루시아의 집으로 가고, 두 사람은 입을 맞춘다. 루시아가 레이먼드가 가진 자신의 사진을 발견하고 문으로 걸어가지만, 문을 잠그고 돌아와 둘은 잠자리를 갖는다. 같은 시각 레이는 바에서 키에라와 가까워진다. 관에 총을 쏜 사람이 장례 직후 침대에 있다. 영화는 이 전환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겨 버려서, 방금 전의 충격이 어디로 갔는지 의아해진다. 코미디와 드라마를 한 호흡에 담으려는 시도 자체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두 톤이 서로를 받쳐 주지 못하고 번갈아 나왔다 들어간다. 웃음이 터지는 지점도 대사보다 상황에서 나온다. 알몸 매장, 아들들이 직접 파는 무덤, 서로 모르던 형제들이 차례로 삽을 넘기는 풍경. 더 밀어붙일 수 있었던 순간들인데, 영화는 그 힘을 믿지 못하는 듯 서둘러 진지한 톤으로 돌아간다.

가디언은 이 영화를 두고 맥그리거와 호크가 아깝게 쓰인 빈약한 코미디 드라마라고 혹평했다. 나는 거기까지 동의하지는 않는다. 맥그리거의 레이먼드는 움츠러들고 참는 사람이고, 호크의 레이는 상처를 안고도 어딘가 느긋한 사람이다. 이 대비가 영화를 지탱하고, 둘이 한 차에 앉아 있는 장면만으로도 보는 맛이 있다. 하지만 영화의 뼈대는 낯익다. 폭력적인 아버지, 사후에 도착한 화해의 제스처, 무덤 앞에서 터지는 감정은 가족 드라마에서 수없이 본 순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설정은 기묘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은 짐작한 그대로다.

조연들의 쓰임새도 아쉽다. 마리벨 베르두(Maribel Verdú)의 루시아는 아버지의 연인이자 레이먼드와 가까워지는 인물이라는 역할이 분명한데도, 정작 그가 아버지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거의 궁금증으로만 남는다. 소피 오코네도(Sophie Okonedo)의 키에라 역시 레이에게 위로가 되는 인물로 기능하지만 독립된 사람으로서의 윤곽은 흐리다. 웨스트 목사를 연기한 폰디 커티스홀(Vondie Curtis-Hall)도 사건을 진행시키는 장치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배우들이 제 몫을 해내는데도 인물에게 주어진 이야기가 얇아서, 연기의 무게를 각본이 받쳐 주지 못한다.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은 간단하다. 아버지는 죽었는데 그가 남긴 상처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레이먼드 & 레이〉는 답을 서둘러 내놓지 않고, 대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다루게 한다. 한 사람은 총을 쏘고, 한 사람은 트럼펫을 분다. 둘 다 상처를 없애지는 못하고, 그저 제각기 아버지에게 자기 식으로 대꾸할 뿐이다. 그 앞뒤를 채우는 에피소드들은 이 물음을 깊게 파고들기보다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유머는 어느 대목에서는 통하고 어느 대목에서는 겉돈다. 그래도 서로를 거의 모르던 형제들이 한 무덤을 두고 차례로 삽을 넘기는 장면에는, 이 영화가 하려던 이야기가 가장 소박하게 담겨 있다.

출연진

사진: The Movie Database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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