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물을 만드는 사람》은 고아원의 섬세한 사랑으로 시작해 과한 비극에 무너진다

알레산드로 제노베시 감독(2024)이 에린 둠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카테리나 페리올리, 시모네 발다세로니 출연.
Martha O'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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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장미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영화는 꽤 오래 답을 쥐고 있다. 리겔은 자기가 아니라고 잡아뗀다. 눈물을 만드는 사람은 에린 둠의 동명 소설을 알레산드로 제노베시 감독이 영화로 옮긴 이탈리아 청춘 로맨스로, 2024년 4월 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상영 시간은 1시간 43분이다. 고아원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니카와 리겔이 함께 입양되고, 예상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는 것이 이야기의 뼈대다.

초반의 설정은 괜찮다. 여덟 살에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은 니카는 서니크릭 고아원에 맡겨져 아델린이라는 친구를 사귄다. 몇 년 뒤 십 대가 된 니카는 안나와 노먼 밀리건 부부에게 입양되고, 부부는 원장 마거릿이 아끼던 소년 리겔도 함께 데려간다. 새 집에서 리겔은 니카를 차갑게 대한다. 회상 장면은 마거릿이 아이들을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학대했고 리겔만 그 대상에서 빠져 있었음을 알려 준다. 같은 곳에서 자랐는데 두 사람의 상처는 왜 다른가. 학생들이 익명으로 장미를 주고받는 가든 데이에 니카가 검은 장미를 받는 대목까지, 전반부는 이 질문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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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회상 속 한 장면이다. 마거릿이 니카를 벌하려 할 때 리겔이 자기 손을 베어 원장의 시선을 돌린다. 설명하는 대사 없이 행동만으로 그의 서툰 다정함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가장 절제된 순간이기도 하다. 라이오넬이 니카에게 데이트를 청하자 리겔이 주먹다짐을 벌이고, 니카에게 나무람을 들은 직후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도 비슷하다. 니카가 그를 돌보는 동안 두 사람 사이의 적의가 처음으로 흔들린다. 안드레아 파리의 음악에는 ‘니카의 테마’와 ‘리겔의 테마’라는 곡이 있어서 두 사람의 장면을 조용히 받쳐 준다.

문제는 후반부다. 라이오넬은 두 사람이 서로 마음에 두고 있음을 눈치채고, 사람들이 그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니카에게 말한다. 리겔은 자기는 너무 망가졌다며 니카를 밀어내고, 밀리건 가의 입양마저 거부한 채 집을 나간다. 무도회에서는 라이오넬이 교실에서 니카를 덮치려 하고 리겔이 막아선다. 이후 라이오넬은 차로 두 사람을 치려 들고, 둘은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려 달아난다. 사건은 연달아 터지지만 라이오넬이 이렇게까지 폭력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앞에서 거의 쌓이지 않았다. 전반부의 눅눅한 분위기에 익숙해진 눈에는 갑자기 다른 영화로 건너뛴 것처럼 보인다.

병원에서 깨어난 니카는 리겔이 자기 몸으로 낙하를 받아내 혼수상태에 빠졌고, 입양을 거부한 그가 마거릿의 보호 아래 놓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거릿이 리겔을 영영 못 만나게 하겠다고 하자, 니카는 그때까지 거절하던 증언을 하기로 한다. 이 마음의 변화가 내게는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증언을 피한 것은 과거를 마주할 수 없어서였는데, 그 두려움을 어떻게 넘었는지는 그려지지 않은 채 니카는 갑자기 당당해진다. 리겔이 혼수에서 깨어나고 두 사람이 결혼해 딸을 둔 미래가 나오는 결말도 학대와 발작을 다뤄 온 앞부분의 무게와 잘 맞지 않는다.

배우들 가운데 리겔을 맡은 시모네 발다세로니는 발작 장면에서 몸 전체로 절박함을 전한다. 니카 역의 카테리나 페리올리는 분노에서 눈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감정의 전환이 다소 급하게 보인다. 마거릿을 연기한 사브리나 파라비치니는 회상 장면에서 확실한 위압감을 준다. 다만 후반으로 갈수록 마거릿이 단순한 악역으로 기울어 연기가 파고들 여지가 좁아진다.

대사의 거친 면도 초반부터 눈에 띈다. 인물들이 감정을 그대로 말로 내뱉는 바람에 침묵과 시선이 힘을 잃는다. 아델린, 빌리, 미키 같은 친구들도 얇게 그려진 채 지나간다. 원작 소설을 103분에 담는 어려움이 두 사람의 관계가 진행되는 속도에 드러나는 듯하다.

검은 장미라는 작은 수수께끼로 시작한 영화는 증언과 결혼이라는 큰 사건으로 끝난다. 그 사이의 이음새가 거친 탓에 보고 난 뒤 남는 것은 결말의 행복이 아니라 고아원에서 제 손을 벤 리겔의 모습이었다.

출연진

사진: The Movie Database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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