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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은퇴하고도 코트를 떠나지 못하는 배구 여제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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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김연경
Photo: 매맞는고참 /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88년 2월 26일
Ansan, Gyeonggi Province, South Korea
직업전 배구 선수, 방송인
개인 수상올림픽 MVP 및 최다득점자 · CEV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MVP · V-리그 챔피언 · V-리그 파이널 MVP · V-리그 정규리그 MVP (7회) · 아시안게임 금메달 · 2021년 세계 최고의 배구선수 · MBC 엔터테인먼트 어워드 신인상 (2025)

김연경은 배구에 여러 번 작별을 고했다. 이제 ‘은퇴’라는 말은 그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일 정도다.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뒤 국가대표팀을 떠났고, 이스탄불에서는 꽃다발과 기념패, 액자에 담긴 유니폼을 받으며 작별했다. 인천의 홈 경기장에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던 챔피언 트로피와 챔피언결정전 MVP 상을 손에 들고 코트를 내려왔다. 매번 마지막이라 여겼던 순간마다, 그를 기다리는 선수들이 있는 새로운 무대가 나타났다.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는 자리였다. 가장 최근 무대는 MBC 신인감독 김연경의 팀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팀을 만들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던 방송사가 이 팀을 탄생시켰다.

배구계에서 더 어려운 질문은 늘 김연경 없이 한국 배구가 어떻게 될 것인가였다.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상대 팀 감독들은 한국을 상대할 때 ‘김연경을 막아라’라는 지시 하나에 집중했고, 그래도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런던 올림픽에서 김연경이 거의 혼자 힘으로 세르비아를 무너뜨린 뒤, 조란 테르지치 감독은 “김연경을 막는 데만 집중했고 다른 부분은 덜 신경 썼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1988년 2월 26일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배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큰언니가 배구를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키가 170센티미터도 되지 않아 축구로 종목을 바꿀까 고민했다. 한일여고에 진학한 뒤 키가 20센티미터 넘게 자랐고, 세터와 리베로를 거쳐 레프트 공격수가 됐다. 이 과정은 김연경의 경기에서 유독 눈에 띄는 면모를 설명해 준다. 공격수이면서도 리시브와 수비부터 익힌 선수라는 점이다.

흥국생명은 2005년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연경을 전체 1순위로 지명했다. 데뷔 시즌부터 신인상과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리그가 줄 수 있는 개인상을 모두 휩쓸었다. 흥국생명은 그해 우승했고, 2006-07시즌과 2008-09시즌에도 정상에 올랐다. 그 사이 김연경은 4년 동안 무릎 수술을 네 차례 받았다. 이후에도 이어진 습관의 시작이었다. 의사들이 먼저 치료해야 한다고 권한 부상을 안고 뛰는 일이었다.

2009년 김연경은 V리그를 떠나 해외 프로 구단에 입단한 첫 한국인 여자 선수가 됐다. 일본 JT 마블러스에 합류했고, 2010-11시즌 V.프리미어리그에서 MVP에 오르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1년에는 페네르바흐체와 계약했다. 유럽에서 보낸 첫 시즌, 이스탄불 구단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CEV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김연경은 대회 MVP에 선정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됐다. 그해 여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은 4위에 그쳤지만, 김연경은 올림픽 대회 MVP와 득점왕에 뽑혔다. 207점으로 세운 기록이었다. 이후 터키 리그에서 두 차례 우승했고, 상하이와 엑자시바시 비트라에서도 뛰었다.

런던은 선수 생활에서 가장 험난한 싸움의 시작이기도 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한국 리그에서 뛴 기간이 네 시즌뿐이어서 자유계약선수가 되기까지 두 시즌이 남았다며 여전히 구단 소속 선수라고 주장했다. 김연경은 해외 임대 기간도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며 계약이 이미 만료됐다고 맞섰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구단의 손을 들어줬고, 김연경을 팀을 이탈한 선수로 공개적으로 명시했다. 흥국생명은 공식 기관들에 김연경이 인기를 남용했다는 내용의 문서까지 보냈다. 김연경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겠다고 맞섰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판정을 내렸고, 2014년 초 마지막 결정이 나오면서 흥국생명은 김연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이 이야기는 대개 스타 선수가 고집 센 구단을 이겨낸 사례로 전해지며, 대체로 틀린 해석은 아니다. 다만 한국 여자 배구가 한 사람을 중심으로 얼마나 완전히 짜여 있었는지, 그 선수가 떠나는 날을 대비한 계획이 전혀 없었는지도 보여줬다. 국가대표팀에 그날은 도쿄 올림픽 이후 찾아왔다. 한국은 8강전에서 세계 랭킹 4위 터키를 5세트 접전 끝에 꺾었지만, 이어 브라질과 세르비아에 패해 다시 4위로 대회를 마쳤다. 며칠 뒤 김연경은 국가대표 은퇴를 공식화했다. 한국은 2022년과 2023년 발리볼 네이션스리그에서 24경기를 치러 모두 졌다.

김연경은 그보다 앞선 2020년에 이미 한국으로 돌아와 국가대표 동료들과 함께 올림픽을 준비하고 싶다고 밝혔다. 복귀 첫 시즌은 흥국생명에서 함께 뛰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 폭력 의혹으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으면서 어수선해졌고, 핑크스파이더스는 챔피언결정전에서 GS칼텍스에 패했다. 상하이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낸 뒤 2022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핑크스파이더스는 2022-23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먼저 두 경기를 따냈지만, 이후 세 경기를 내리 내줬다. 이듬해에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챔피언결정전에서 핑크스파이더스를 꺾었다. 김연경은 5년 동안 정규리그 MVP를 네 차례 받았다. 그 가운데 세 번은 우승 트로피가 놓여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2025년 2월, 김연경은 그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흥국생명은 정규리그 1위로 마쳤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정관장 레드스파크스를 상대로 먼저 두 경기를 따냈다. 하지만 2023년처럼 다음 두 경기를 내리 졌다. 2025년 4월 8일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5차전에서 김연경은 34점을 올렸다. 핑크스파이더스는 5세트 접전 끝에 승리했고, 김연경은 챔피언결정전 MVP에 선정됐다. 첫 우승으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뒤 거둔 V리그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이었다. 작별 인사는 몇 달 동안 이어졌고, 다음 시즌 개막전이 열린 10월 흥국생명이 김연경의 등번호 10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면서 마무리됐다.

김연경은 이미 방송 활동을 위한 발판도 마련해 두고 있었다. 2019년 시작한 유튜브 채널로 구독자 100만 명을 넘긴 첫 배구 선수가 됐다. 2025년 9월 MBC는 신인감독 김연경을 선보였다. 김연경은 방출된 프로 선수들과 한 번 더 기회를 찾는 선수들을 모아 필승 원더독스를 만들었다. 그해 12월 MBC 방송연예대상에서는 여자 신인상과 선수 인쿠시와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받았고, 올해의 예능인상도 공동 수상했다. 원더독스 선수 이나연, 표승주, 구솔은 이후 프로 구단과 계약했다. 김연경은 넷플릭스 대환장 기안장 시즌 2에도 합류했다. 기안84가 병에 걸리자 눈 내리는 산속 숙소의 주방을 맡게 됐다.

2026년 10월 11일 시작한 신인감독 김연경 시즌 2는 판돈을 키웠다. 원더독스를 여자 프로 8구단으로 출범시키거나 팀을 해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MBC는 배구 운영 사무국을 열고 한국배구연맹과 협의에 나섰지만, 아직 구단주로 나선 곳은 없다. 10월 25일 방송된 회차에서 일본 고교 최강팀인 슈지쓰 고등학교를 상대로 5세트 승리를 거둔 뒤, 김연경은 제작진에게 시즌 3 출연을 거절하고 다시는 감독을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각본 없이 치르는 그런 경기가 사람들이 스포츠를 보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김연경의 다음 무대는 오사카다. 11월 20일과 21일 열리는 MAMA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나선다. 원더독스가 구단주를 찾을 수 있을지는 남은 시즌이 답해야 할 질문이다. 다시는 감독을 맡지 않겠다는 약속은, 그가 몸담은 팀들이 이미 익혀온 방식대로 그의 은퇴 선언을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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