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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바일스, 도쿄에서 멈춘 뒤 파리에서 다시 날아오른 체조 선수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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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바일스
시몬 바일스
Photo: Ocoudis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97년 3월 14일
Columbus
직업기계체조 선수
수상대통령 자유 훈장 · AP 연사 올해의 선수 · Time 100

시몬 바일스에게 선수 생활 대부분의 과제는 계산법에 있었다. 채점 규정에 아직 점수가 매겨지지 않은 기술을 계속 시도했고, 심판들은 누구도 해내지 못한 동작에 얼마의 가치를 줘야 할지 판단해야 했다. 현재 체조 채점 규정에는 바일스의 이름을 딴 기술이 다섯 가지 있다. 도마에서 두 가지, 평균대에서 한 가지, 마루에서 두 가지다. 그런데 세상이 바일스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바꾼 순간은 기술이 아니었다. 도쿄에서 공중 동작이 어긋난 도마 연기였다. 바일스는 단상에서 내려와 코치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올림픽 단체전 결선 출전을 스스로 포기했다.

일부 평론가는 이를 포기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순간은 선수 경력의 전환점이 됐다. 3년 뒤 올림픽에 돌아온 바일스는 금메달 세 개를 더 목에 걸고 돌아왔고, 체조 역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선수가 됐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두 번의 여름을 앞둔 지금, 바일스는 그때와 비슷한 선택을 천천히 저울질하고 있다. 한 번 더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이미 이룬 성취로 마무리하는 편이 더 나은 결말일지 말이다.

바일스는 1997년 3월 14일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났다. 친모 섀넌은 자녀들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고, 2003년 시몬과 여동생 애드리아는 외할아버지 론 바일스와 그의 아내 넬리에게 입양됐다. 부부는 휴스턴 북쪽 교외인 스프링에서 두 자매를 키웠고, 시몬은 늘 그들을 엄마와 아빠라고 불렀다. 벨리즈에서 태어난 넬리를 통해 바일스는 벨리즈 시민권도 갖고 있다.

바일스는 여덟 살 때 에이미 부먼과 훈련을 시작했고, 부먼은 리우 올림픽까지 줄곧 곁을 지켰다. 성장세는 빨랐다. 시니어 첫해인 2013년, 바일스는 앤트워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에서 우승했다. 2014년과 2015년에도 정상에 올랐고, 2015년에는 프로로 전향하며 UCLA 체조팀 자리를 포기했다. 이후 가족은 스프링에 자체 훈련 시설인 월드 챔피언스 센터를 세웠고, 바일스는 지금도 그곳에서 훈련한다.

바일스를 다른 선수들과 갈라놓은 것은 압도적인 높이와 난도였다. 마루에서는 반 바퀴 비틀어 마무리하는 더블 레이아웃을 더했고, 이어 여성 선수 누구도 시합에서 선보인 적 없는 트리플 트위스팅 더블 턱 살토를 해냈다. 평균대에서는 더블 트위스팅 더블 턱 내리기를 선보였다. 도마에서는 마침내 유르첸코 더블 파이크를 완성했다. 시도 자체가 워낙 드물어 경쟁자들조차 사실상 바일스만의 기술로 여기는 동작이다. 이 기술들은 하나씩 바일스의 성을 딴 이름으로 규정집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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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바일스는 단체전과 개인종합, 도마, 마루에서 금메달을 따고 평균대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명성이 빠르게, 요란하게 따라붙었다. 미셸 버퍼드와 함께 쓴 회고록 Courage to Soar를 출간했고, 나중에 이 책을 바탕으로 TV 영화도 제작됐다. 2017년에는 Dancing with the Stars에서 4위를 차지한 뒤 체육관으로 돌아갔다.

당시 대중에게 알려진 이야기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빼놓고 있었다. 2018년 1월, 바일스는 전 미국체조 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에게 성폭력을 당한 수백 명의 선수 가운데 자신도 한 명이라고 밝혔다. 또 체조연맹이 이를 은폐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주장했다. 이 폭로를 하면서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계속 경기에 나섰다. 그런 상황을 감당해야 했던 선수는 거의 없었다. 2021년 9월에는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나사르와 그를 가능하게 한 “시스템 전체”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년 전, 바일스는 다른 나사르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아서 애시 용기상을 받았다.

한편 경기에서는 기록이 계속 쏟아졌다. 2019년 슈투트가르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바일스는 비탈리 셰르보의 메달 기록을 넘어 세계선수권 역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체조 선수가 됐다. 이후 팬데믹으로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됐다. 2021년 7월 단체전 결선에서 바일스는 공중에서 몸을 비트는 동안 자신의 위치 감각을 잃었다. 체조 선수들이 ‘트위스티스’라고 부르는 현상이었다. 동작에 실수할 여지가 거의 없는 선수에게 이는 신체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고, 바일스는 실제 위험으로 받아들였다. 단체전 결선과 개인전 결선 네 종목에서 기권한 뒤 미국이 단체전 은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봤다. 일주일 뒤에는 비틀기 동작을 완전히 뺀 내리기로 평균대 동메달을 따냈다.

도쿄에서의 일을 쉽게 해석하면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기권했고, 그 선택은 옳았다는 것이다. 조금 더 어렵지만 흥미로운 해석은 바일스가 어린 시절부터 따라온 엘리트 스포츠의 규칙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선수는 경기를 하고, 설명은 나중에 한다는 규칙 말이다. 2024년 두 부분으로 나뉘어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Simone Biles Rising은 바로 그 균열을 중심에 둔다. 작품은 치료와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몸을 다시 믿을 수 있을지라는 현실적인 질문을 보여준다. 화려한 승리의 기록이라기보다, 불확실했던 복귀 과정을 담은 사례 기록에 가깝다. 2022년에 받은 미국 자유훈장도 그 질문이 여전히 열려 있던 때 수여됐다.

답은 2023년에 나왔다. 그해 봄 미식축구리그(NFL) 세이프티 조너선 오언스와 결혼한 바일스는 여름에 대회에 복귀했다. 10월에는 첫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던 앤트워프에서 다시 정상에 오르며 통산 여섯 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유르첸코 더블 파이크는 바일스의 이름을 딴 두 번째 도마 기술이 됐다. 바일스의 세계선수권 메달은 이제 총 30개이며, 그중 금메달은 23개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논란은 끝났다. 바일스는 미국 대표팀을 단체전 금메달로 이끌었고, 첫 올림픽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한 지 8년 만에 다시 개인종합 정상에 올랐으며 도마에서도 우승했다. 마루에서는 브라질의 레베카 안드라지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바일스와 팀 동료 조던 차일스가 시상대에서 안드라지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는 장면은 바일스의 웬만한 연기보다 더 멀리 퍼져나갔다. 올림픽 메달은 총 11개, 금메달은 7개가 됐다. 미국 체조 선수 가운데 최다 기록이며, 여성 선수 중 라리사 라티니나에 이어 베라 차슬라프스카와 공동 2위다. 바일스는 이후 골드 오버 아메리카 투어를 진행했고, 2025년에는 라우레우스 세계 스포츠 어워드에서 올해의 스포츠우먼상을 네 번째로 받았다. 1년 전에는 라우레우스 올해의 컴백상을 수상했다.

바일스는 그 이후로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2026년 2월 라우레우스는 스포츠 포 굿 활동의 홍보대사로 바일스를 선정했다. 그해 봄 마드리드에서 열린 라우레우스 시상식에서 바일스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반반”이라고 말했다. 신체적으로는 코치인 로랑 랑디와 세실 랑디가 몸을 만들어줄 수 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정신적인 준비라고 했다.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피겨 스케이터 일리야 말리닌이 고전하자, 자신도 그런 압박을 겪어봤기 때문에 “보호 모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3월에는 오언스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와 1년 계약을 맺자 그와 함께 인디애나폴리스로 이사했다. 지루성 피부염과 습진 진단을 받은 뒤에는 염증성 피부 질환을 알리는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출전 여부는 막연한 질문이 아니다. 9월 말 인터뷰에서 바일스는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매력을 뿌리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홈 올림픽인데, 어떻게 안 나갈 수 있겠어요?” 파리 올림픽 팀 동료인 수니 리, 조던 차일스, 제이드 캐리 등은 이미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반대편에는 나이와 가족이라는 현실이 있다. 개회식 때 바일스는 31세가 된다. 오언스와 바일스는 언젠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바일스는 강도 높은 훈련이 생식 건강에 미칠 영향이 “지금 제 나이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최근 애드리아와 체육관에서 함께 훈련하던 중, 생각보다 수월하게 더블 레이아웃을 다시 해낸 일은 오히려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 선택이 이례적인 이유는 누구도 바일스에게 결정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은 세워졌고, 기술에는 이름이 붙었으며, 복귀 과정은 영상으로 남았다. 바일스는 아직 결정할 필요가 없고, 돌아간다면 향수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적절한 순간에 멈춘 일이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선수에게 로스앤젤레스 출전 여부는 그 선택을 거꾸로 되짚는 시험이 될 것이다. 마지막 한 번의 도전을 시작할 만큼 간절히 원하는지 스스로 묻는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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