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출산율 반등은 진짜가 아니다. 다음 코호트가 그것을 증명할 것이다

15개월 연속 출생아 수가 늘었다는 통계청 발표가 이어진다. 정부는 이를 정책 효과의 증거로 본다. 인구학자들은 더 차분하게 말한다. 이 반등은 문화의 변화가 아니라 코호트의 산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Molly Se-kyung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한국에서 19만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전년 동기 대비 6.9% 증가. 2007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통계청 자료가 이를 보여주고, 정부 부처는 결혼 장려금, 주거 지원, 육아휴직 확대가 마침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발표한다. 5월 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주형환 전 차관은 한국의 정책 모델이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인터뷰의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 반등은 곧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이 칼럼의 입장은 단순하다. 주형환의 마지막 문장이 옳다. 지금 우리가 보는 숫자는 2026년이 한국 인구사의 전환점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여성들 — 1996년 출생률 절벽 이전의 마지막 큰 코호트 — 가 30대 중후반에 들어서 미뤄왔던 출산을 한꺼번에 하고 있다는 뜻이다. 2027년부터 그들이 가임 연령에서 빠져나가면 그 자리는 이미 작아진 1996년 이후 출생 세대가 채운다. 그들이 더 자주 출산해도 절대 수는 다시 떨어진다. 합계출산율이 0.7대에 머무르는 한, 반등은 통계의 그림자다.

이 구분이 왜 자녀 계획이 없는 독자에게 중요한가? 한국의 인구 곡선은 더 이상 인구 정책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 30년의 노동시장, 부동산, 의료, 군대, 연금, 그리고 — 가장 조용히 —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변수다. 우리가 지금 일어나는 일을 잘못 읽으면 다음 5년의 정책을 잘못 짠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잘못된 정책은 다른 영역과 달리 되돌릴 수 없다.

숫자를 천천히 보자. 합계출산율, 즉 한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는 2023년 0.72까지 떨어졌고 2024년에 잠시 0.75로 올랐다. 이것이 “반등”의 본체다. 0.03의 회복. 인구 유지선이 2.1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우리가 환호하는 변화는 절벽에서 절벽으로의 이동이지 절벽에서 평지로의 이동이 아니다. 출생아 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출산율이 아니라 가임 여성의 수가 만든 결과다. 한국의 1990–1995년 출생 코호트는 1996년 이후 코호트보다 약 30% 더 많다. 그들이 미루다 한꺼번에 결혼하고 출산하면 절대 수는 잠시 솟는다. 코호트가 빠져나가면 절대 수는 다시 가라앉는다. 이것은 정책이 아니다. 산수다.

정부 정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육아휴직 확대, 출산 장려금, 신혼부부 주거 지원 — 이 모든 것이 결정의 가장자리에 있던 부부들을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은 실제 효과다. 그러나 그 효과의 크기는 0.03이다. 한국이 2006년부터 저출산 정책에 투입한 약 300조 원 — Newsweek의 추산으로 미화 3000억 달러 — 의 결과로서 0.03이다. 이 비율을 정직하게 봐야 한다. 우리는 출산율 곡선을 옮기지 못했다. 우리는 곡선을 한 분기 동안 부드럽게 만들었을 뿐이다.

반대 입장의 가장 강한 버전을 짚어두자. 인구학자 중 일부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떨어졌으니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회복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일본은 30년에 걸쳐 천천히 1.3대로 내려왔지만 한국은 단 15년 만에 0.7대까지 추락했다. 압축된 하강은 압축된 상승의 가능성도 의미한다는 주장. 정부 정책이 단지 시기를 옮긴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의도(intention)를 바꿨다면, 1996년 이후 코호트도 같은 비율로 출산할 것이고 그러면 절대 수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시나리오는 한국이 출산을 어렵게 만든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바꿨다고 가정해야 성립한다. 14시간 노동 문화, 주 70시간 사교육 시장, 결혼이 사치재가 된 부동산 시장, 며느리 노릇이 여전히 한 사람의 직업인 가부장적 가족 구조. 통계청 자료에서 결혼 건수는 출생아 수보다 더 천천히 회복하고 있다. 결혼 건수가 본질적인 선행지표인 사회에서, 결혼이 회복하지 않으면 출산도 회복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반등은 이미 결혼한 부부들이 미뤄둔 출산을 하는 그림이지, 결혼을 새로 시작하는 그림이 아니다. 그 차이는 향후 18개월의 데이터에서 분명해진다.

장혜영 같은 연구자, 또는 압축근대(compressed modernity)라는 개념을 만든 장경섭 서울대 교수의 작업을 읽어보면, 한국의 인구 위기는 정책 변수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적 시간의 충돌이다. 한국 여성들은 2030년대 유럽 여성처럼 살고 싶어하지만, 한국 가정은 여전히 1980년대 한국식으로 운영된다. 이 격차가 메워질 때까지 합계출산율은 1.0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정책이 사슬의 일부 고리를 풀 수는 있다. 사슬 자체를 풀려면 일하는 방식, 가르치는 방식, 결혼하는 방식, 늙는 방식 모두를 다시 써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증거는 — 솔직하게 말해 —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반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두 개의 자세가 있다. 하나, 정부의 자세 — 정책이 효과를 본다, 더 투입하면 더 효과가 난다, 다음 5년 안에 1.0 대를 회복한다. 이 자세는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지만 다음 코호트가 도착하면 무너진다. 둘, MCM의 자세 — 반등은 진짜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평탄화일 뿐이다, 진짜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 자세는 정치적으로 불편하지만 데이터에 충실하다. 그리고 데이터가 곧 우리에게 자세를 강요할 것이다. 2027년 출생아 수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면 — 수학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이 글이 묻는 질문은 그때 우리가 어떤 정책을, 어떤 문화적 합의를 가지고 그 데이터를 맞이할 것인가이다.

한국은 후기 산업사회의 인구학적 미래를 가장 빨리 살고 있는 나라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중국, 곧 폴란드와 그리스가 우리 뒤를 따른다. 우리가 지금 만드는 답 — 정책의 답이 아니라 문화의 답 — 이 그들이 5년 뒤, 10년 뒤 참고할 모델이 된다. 그러므로 이 반등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일은 한국의 일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일이다. 자축은 빠르고, 정직은 느리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큰 책임인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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