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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라스트 하우스’, 그레타 리와 바그너 모우라가 열리지 않는 집에 갇히다

Martha Lucas

한 가족이 깨어나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잠긴 게 아니다. 벽을 봉하듯 봉인되어 있다. 마치 집이 하룻밤 사이 집이기를 그만두고 그릇이 되기로 결심한 것처럼. 창문은 버틴다. 벽도 버틴다. 바깥에서 무언가가 기다리며 제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다. 안에서는 서로를 안다고 여겼던 네 사람이, 더 갈 곳이 없을 때 그 확신이 무슨 값어치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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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르테리에가 매튜 로빈슨의 각본으로 연출한 생존 스릴러 ‘라스트 하우스’는 뺄셈으로 작동한다. 가족에게 집을 주고는 출구를, 설명을, 그리고 한 시간마다 비축분을 빼앗는다. 그레타 리와 바그너 모우라가 네 식구의 부모를 연기하고, 영화는 그들의 온 세계를 하나의 세트와 비어 가는 식료품 창고로 줄인다. 바깥에 위협이 도사리지만 영화는 그것을 셈 밖에 둔다. 위협은 내주지 않는 것으로 규정되며, 내주지 않는 것은 바로 출구다.

캐스팅이 곧 논지다. 리는 ‘패스트 라이브즈’로 인물이 말하지 않기로 한 것 위에 한 장면을 지탱하는 배우로 떠올랐고, 모우라는 십 년간 평정이 기질이 아니라 전술인 남자들을 연기해 왔다. 이런 두 배우를 출구 없는 방에 가두는 것은 영화가 어디를 보는지 말해 준다. 집을 봉인한 장치가 아니라, 음식이 얼마나 버틸지, 어떤 거짓말이 하룻밤 더 버틸지 계산하는 두 얼굴을.

르테리에는 자기 반사신경을 거슬러 찍는다. 그의 이름은 보통 질주하는 대형 화면 위에 놓인다. ‘나우 유 씨 미’의 눈속임, ‘뤼팽’의 속도. 여기서는 반대로 간다. ‘라스트 하우스’는 밀실극이며, 그가 찍은 어떤 작품보다 문을 닫은 연극에 가깝다. 바깥으로 컷하지 않겠다는 거부는 한계가 아니라 방법이다. 카메라는 가족의 공간 경제 안에 머물며, 안의 것이 줄어드는 동안 같은 방들을 거듭 재측정한다.

이 감금은 봉인된 집을 이미 안에서 겪어 본 십 년에 내려앉는다. 나가게 두지 않는 거처, 같은 네 벽을 몇 주씩 배급하고 흥정해야 하는 가족, 우리로 변하는 피신처.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 대는 기억을 불러낸다. SF이기 전에 가정의 이야기다. 르테리에는 위협을 늘 화면 밖에, 설명 없이 둔다. 그 모호함은 너그럽다. 관객은 저마다 바깥을 가장 두려운 것으로 채운다.

긴장은 놀래키기가 아니라 살림의 동선에서 짜인다. 물을 누가 쥐는가. 아이들은 아직 몰라도 된다고 누가 정하는가. 어느 부모가 대치를 깨고 어느 쪽이 끌고 가는가. 봉인은 동력이지만, 이야기는 그 아래로 흐르는 결혼이다. 벽이 둘 다를 감사하는 동안, 부부는 아이들 앞에서 유능함을 연기한다.

The Last House
The Last House. Emma Ho as Ruth in The Last House. Cr. Chris Baker/Netflix © 2026

남는 것은 영화가 던지되 제 벽 안에서는 닫지 못하는 질문이다. 봉인이 깨지면 가족은 거리로 돌아가지만, 그 주를 시작한 자신들로는 아니다. 그들은 출구가 닫힌 채 서로가 고르고, 배급하고, 거짓말하고, 흔들리는 것을 보고 말았다. 생존은 세계를 돌려줄 수 있다. 서로를 그렇게 보지 않았던 일은 돌려주지 못한다.

‘라스트 하우스’는 2026년 8월 7일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동시 공개된다. 르테리에가 매튜 로빈슨의 각본을 연출했고, 약 110분 분량의 이 영화에는 그레타 리와 바그너 모우라를 비롯해 라일리 청, 엠마 호, 노아 알렉산더 소스노프스키가 출연한다. 제작은 Chernin Entertainment.

출연진

  • Emma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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