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닐 게렐스, 스위프트 망원경에 이름을 남긴 NASA 천체물리학자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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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게렐스
닐 게렐스
Photo: NASA GSFC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52년 10월 3일
Lake Geneva, Wisconsin, United States
사망2017년 2월 6일 (64)
직업천체물리학자
수상헨리 드레이퍼 메달 · NASA 우수 과학 업적 메달 · 단 데이비드 상

거의 20년 동안 NASA 위성 한 대는 우주의 끝자락에서 일어난 폭발을 포착하고, 약 1분 만에 그쪽으로 방향을 돌려 섬광이 사라지기 전에 지상 망원경에 좌표를 전달할 수 있었다. 임무 마지막 몇 년 동안 이 위성에는 처음 제안 단계부터 궤도 진입까지 이끈 고다드 천체물리학자 닐 게렐스(Neil Gehrels)의 이름이 붙었다. 이제 위성은 관측을 멈췄다. 구할 방법이 남아 있지 않은 채 우주선은 상층 대기권으로 가라앉고 있다. 한편 게렐스가 초기 계획 수립을 주도한 또 다른 망원경은 달 너머 훨씬 먼 관측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는 두 순간을 모두 보지 못했다.

게렐스는 위스콘신주 레이크제네바에서 태어나 망원경 가까이에서 자랐다. 아버지인 천문학자 톰 게렐스(Tom Gehrels)가 망원경을 다뤘기 때문이다. 가족은 한동안 텍사스의 맥도널드 천문대에서 살다가 닐이 열네 살 때 투손에 정착했다. 애리조나대학교에서 클래식 음악 작곡가가 되기 위해 공부했지만 음악과 물리학 학위를 모두 받고 졸업했다. 결국 물리학을 택했다. 두 분야를 함께 공부한 일이 겉보기만큼 뜻밖은 아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임무는 타이밍의 문제, 즉 각 장비가 제때 맞춰 작동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로쿠스 포크트(Rochus Vogt)와 에드워드 C. 스톤(Edward C. Stone)의 지도 아래 1982년 캘텍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게렐스는 초기에 보이저호에 실릴 우주선 계측기의 보정 작업을 맡았다. 1979년 보이저 두 대가 목성 옆을 지나갈 때 이 장비는 예상 밖의 사실을 밝혀냈다. 목성 자기권의 고에너지 입자는 대부분 수소와 헬륨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게렐스는 산소와 황이 오히려 우세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입자의 근원은 이오의 화산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는 그의 박사 논문이 됐다. 그는 그곳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던 동료 엘런 윌리엄스(Ellen Williams)도 만났고, 두 사람은 1980년 결혼했다.

게렐스는 1981년 메릴랜드주에 있는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에 박사후연구원으로 들어가 평생 그곳에서 일했다. 초기 프로젝트는 기구에 실어 올리는 감마선 분광기 GRIS였다.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남반구 하늘에 초신성 1987A가 나타났다. 급히 장비를 띄워 관측한 결과, 붕괴하는 코발트-56에서 나오는 감마선 방출선이 포착됐다. 선폭이 넓어지고 위치가 이동한 모습은 폭발한 별의 잔해가 뒤섞이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보여주는 초기의 강력한 증거였다. 그보다 1년 앞서 게렐스는 관측 사건이 몇 건 되지 않을 때 신뢰구간을 설정하는 방법을 다룬 짧은 논문을 발표했는데, 적은 수의 관측값을 다루는 천문학자들은 지금도 이 논문을 인용한다. 1991년 콤프턴 감마선 관측소 발사부터 2000년 궤도 이탈까지 게렐스는 이 관측소의 프로젝트 과학자로 일했으며, 1995년부터는 고다드 천체입자물리학 연구소를 이끌었다.

그의 이름을 알린 것은 스위프트 구상이었다. 감마선 폭발은 몇 초 또는 그보다 짧게 번쩍였고, 수년 동안 천문학자들은 그 뒤에 남은 흔적을 관측할 만큼 빠르게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다. 게렐스는 폭발을 감지한 뒤 지상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자체 X선 및 자외선·가시광선 망원경을 해당 지점으로 돌리고, 그 위치를 전 세계 천문대에 알리는 위성 계획을 주도했다. 그는 1999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수석연구책임자로 일하며 2004년 11월 20일 발사와 이후의 운용을 이끌었다. 2005년에는 짧은 감마선 폭발이 오래된 타원은하와 연관돼 있음을 밝힌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는 짧은 폭발이 거대한 별의 붕괴가 아니라 중성자별 같은 компакт 천체의 병합으로 일어난다는 증거였다. 스위프트는 2년 임무를 목표로 제작됐다. 2,000건이 넘는 폭발을 관측했으며, 임무가 끝나기 훨씬 전부터 하늘에서 갑자기 밝아지는 현상이라면 무엇이든 알리는 범용 경보 체계가 됐다.

게렐스는 관측의 범위를 계속 넓혔다.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의 부책임연구원이자 LIGO 과학협력단의 일원이었으며, 2016년에는 중력파 사건이 일어났을 법한 모은하를 겨냥해 그 빛을 찾는 전략을 공동 집필했다. 이 연구가 내다본 유형의 사건은 2017년 8월 실제로 일어났다. 중성자별 두 개가 합쳐졌고, 스위프트는 그 여파로 나온 자외선 빛을 포착했다. 게렐스는 그보다 6개월 앞선 2017년 2월 6일 췌장암으로 64세에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과 그의 이름을 딴 관측소를 중심으로 짜인 단정한 이야기는 그가 일한 방식과 프로젝트가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있었는지를 놓친다. 2007년 브루노 로시상과 2009년 헨리 드레이퍼 메달은 스위프트 팀과 함께 게렐스에게 수여됐다. 임무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협력기관들과 함께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운영됐다. 2018년 위성의 이름을 바꾼 것은 연합체를 하나로 묶어낸 인물을 기리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했는지는 흐릿하게 만들었다. 기계 자체도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게렐스가 프로젝트 과학자로서 구상한 광시야 망원경은 당시 WFIRST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2018년과 2025년 백악관의 폐기 대상에 올랐다. 의회가 예산을 되살리고 수정 예산이 편성된 뒤에야 살아남았다. 스위프트의 마지막은 NASA가 상업용 견인선에 임무의 생존을 걸면서 다가왔다. 카탈리스트의 LINK는 노후 위성을 붙잡아 더 높은 궤도로 밀어 올릴 예정이었다. 견인선은 2026년 7월 발사됐지만, 8월 자세 제어 문제가 불거져 궤도 상승 계획이 취소됐다. 정비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은 위성을 구하는 일은 새로운 종류의 도박이었고, 판돈은 그가 일군 관측소였다.

두 결과는 몇 주 간격으로 나타났다. 이름을 바꾼 WFIRST, 즉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은 2026년 8월 30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팰컨 헤비 로켓에 실려 발사돼 태양·지구 라그랑주점 L2로 향했다. 첫 과학 관측 이미지는 2027년 초 공개될 예정이다. 주경은 허블 우주망원경과 크기가 같지만, 카메라는 그보다 약 100배 넓은 하늘 영역을 한 번에 본다. 게렐스가 설계에 참여한 암흑에너지 및 외계행성 탐사의 기반이 되는 능력이다. 스위프트는 궤도가 약 275킬로미터 아래로 떨어진 뒤 2026년 10월 20일 마지막 관측을 수행했으며, NASA는 몇 주 안에 대기권에 재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자외선·가시광선 이미지 150만 장 이상을 포함한 관측 자료는 계속 공개된다.

연구실 밖에서 게렐스는 암벽을 올랐다. 2006년과 2015년, 그는 요세미티 엘캐피턴의 노스 루트를 각각 6일에 걸쳐 단독으로 완등했다. 엘런 윌리엄스는 이후 에너지부 산하 ARPA-E를 이끌었으며, 부부에게는 자녀가 둘 있었다. 게렐스는 2010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으로 선출됐고, 소행성 16000 Neilgehrels에도 그의 이름이 붙었다. 그는 2017년 댄 데이비드상 수상자 세 명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스리니바스 쿨카르니(Shrinivas Kulkarni)와 안제이 우달스키(Andrzej Udalski)가 함께 수상했다.

지금 돌아보면 게렐스의 업적은 임무가 남기는 가장 오래가는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몸에 밴 관측 습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스위프트는 천문학자 한 세대가 경보를 받으면 몇 분 안에 방향을 돌리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훈련했다. 로먼은 한 팀이 다 훑어보기에는 너무 방대한 지도를 건넬 것이다. 그의 이름을 단 위성은 불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위성이 만들어낸 즉각적인 대응 습관은 궤도에 위성이 남아 있지 않아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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