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게오르크 나겔, 잘못 만든 용액에서 광유전학의 단서를 찾은 생물물리학자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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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나겔
출생1953년 8월 24일
Weingarten, Germany
직업생물물리학자
수상브레인상 · 칼 하인츠 베커츠상 · 루이-장테 의학상

스톡홀름에서 전화가 왔을 때 게오르크 나겔은 나폴리와 로마 사이 언덕에 자리한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아래로는 올리브나무가 펼쳐지고 곁에는 레몬나무가 서 있었다. 그는 처음엔 믿지 않았다. 친구 몇몇은 매년 가을 노벨상 발표를 챙겨 봤고, 나겔은 늘 흥분하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그가 알기로 광유전학의 혜택을 본 환자는 한 명뿐이었다. 광유전학은 그의 실험이 가능성을 열어젖힌 기술이다. 말라리아 치료제와 암 면역요법은 수많은 사람을 도왔다. 뇌세포를 켜고 끄는 스위치라면 의학상을 받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고 그는 생각했다.

노벨상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University of Würzburg의 생물물리학자인 나겔은 빛에 반응해 열리는 이온 채널과 광유전학에 관한 발견으로 페터 헤게만, 칼 다이서로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 나겔이 이 이야기에서 맡은 역할은 그 주장을 입증한 일이었다. 헤게만은 녹조류 클라미도모나스의 안점에 있는 단백질 하나가 빛을 감지하는 동시에 전하를 띤 입자들이 통과할 구멍을 연다고 오랫동안 주장했지만, 많은 동료가 이를 의심했다. 나겔은 프랑크푸르트의 Max Planck Institute of Biophysics에서 후보 유전자를 개구리 난자에 넣고 빛을 비췄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측정했다. 처음에는 진척이 더뎠다. 그러다 나겔의 설명에 따르면, 잘못 만들어진 산성 용액 한 묶음에서 뚜렷한 신호가 나타났고, 그는 자신이 무엇을 관찰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뜻밖의 사고치고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아떨어졌다. 두 단백질 가운데 첫 번째는 양성자를 통과시키는 채널로 밝혀졌다.

그 끈기는 더 오래된 경험에서 비롯됐다. 나겔은 1953년 8월 24일 독일 남부 상슈바벤의 바인가르텐에서 다섯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심각한 병을 앓았다. 형제자매들이 이웃한 오스트리아로 스키를 타러 가는 동안, 그는 부모가 매년 크리스마스에 선물한 과학 실험 키트로 증기기관과 라디오를 만들었다. 여름방학 중 상당수는 이후 20년간 그가 가르치게 될 도시인 뷔르츠부르크의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며 보냈다. 콘스탄츠대학교에서 생물학과 생물물리학을 공부했고, 첫 생물물리학 강의를 맡았던 에른스트 밤베르크가 그의 멘토가 됐다. 학생 시절에는 카페를 여는 일에도 힘을 보탰다. 졸업장을 받은 뒤 스위스의 사립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뷔르츠부르크에서 다시 수술을 받은 뒤에야 뼈의 염증이 멎었다. 행글라이딩을 시작했고, 밤베르크가 프랑크푸르트로 초청할 때까지 계속 교편을 잡았다. 그는 초청을 받아들였고, Max Planck Institute에서 수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1988년 괴테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예일대학교와 Rockefeller University에서 미국 박사후 연구원으로 5년을 보냈다. 뉴욕에서 컬럼비아대학교 초빙교수로 있던 나폴리 출신 분자생물학자 안나 마리아 무스티를 만났다. 무스티는 그가 생물물리학적 접근법을 과학 전반으로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줬다. 두 사람은 1996년 덴마크에서 결혼했고 딸을 두었다. 나겔은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Max Planck Institute 연구그룹 책임자로 일했다. 1995년 나겔과 밤베르크는 미생물에서 발견되는 빛 구동 펌프인 박테리오로돕신이 개구리 난자에서 발현될 때도 기능하며, 동물 세포를 빛에 민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였다. 개구리 난자는 이후 이어진 연구의 시험대가 됐다.

2002년 나겔과 헤게만, 밤베르크 및 동료들은 학술지 Science에 채널로돕신-1을 빛에 반응해 열리는 양성자 채널로 기술했다. 공동저자에는 무스티도 이름을 올렸다. 2003년에는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실린 논문에서 나겔 연구팀이 채널로돕신-2가 빛을 받으면 곧바로 열려 양이온을 통과시키며, 사람의 신장 세포에서도 작동해 청색광 아래에서 세포막을 탈분극시킨다고 밝혔다. 다이서로스는 유전자를 보내 달라는 편지를 나겔에게 보냈고, 스탠퍼드대학교의 그의 연구팀은 2005년 이 유전자를 이용해 배양 뉴런을 원하는 때에 발화하게 했다. 나겔과 밤베르크도 공동저자로 참여한 논문이었다. 같은 해 나겔은 알렉산더 고트샬크와 함께 채널로돕신으로 온전한 동물의 행동을 제어한 초기 연구 가운데 하나를 발표했다. 대상은 회충인 예쁜꼬마선충이었고, 전류를 강화하도록 나겔이 만들어낸 돌연변이체를 사용했다.

2004년 그는 Julius von Sachs Institute의 분자식물생리학 교수로 뷔르츠부르크에 부임했다. 예상 밖의 거점에서 20년 동안 신경과학 도구의 활용 범위를 넓혀 나갔다. 가오스창과 함께 연구팀은 신호전달 분자인 cAMP와 cGMP를 조절하는 광제어 효소를 만들었고, 그 가운데 하나인 CyclOp은 2015년에 소개됐다. 빛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지만 로돕신에 필요한 레티날이 없는 식물에 이 방법을 적용하기도 했다. 2021년 Nature Plants에 실린 연구에서는 나겔이 선임저자로 참여해 조류에서 가져온 광개폐 채널로 담배 식물의 생장을 제어했다. 그는 2019년 Institute of Physiology로 자리를 옮겼으며, 2021년부터는 그곳에서 석좌교수로 연구를 이어갔다.

이번 수상은 붐비는 방 안에 선을 긋기도 한다. 노벨상 규정상 수상자는 최대 세 명이다. 수상자 명단에는 나겔의 멘토이자 훗날 프랑크푸르트 연구소장이 된 밤베르크가 빠졌다. 밤베르크는 채널로돕신 논문들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2005년 뉴런 연구 논문의 제1저자인 에드워드 보이든, 다른 체계를 이용해 그보다 앞서 뉴런을 빛에 반응하게 만든 게로 미젠뵈크도 명단에 없다. 여섯 사람은 2013년 브레인 프라이즈를 함께 받았다. 나겔은 이 연구에 걸린 위험이 어디에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한다. 다이서로스는 리뷰 논문에서 채널로돕신을 뉴런에 넣는 일이 매우 위험한 프로젝트였다고 썼다. 수상 발표 뒤 첫 인터뷰에서 나겔은 단백질이 신장 세포에서 워낙 잘 발현됐던 만큼 그 말에 조금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도구를 널리 알리고 설명한 다이서로스의 작업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의학적 성과를 이야기할 때도 같은 신중함이 필요하다. 가장 잘 기록된 인간 대상 사례는 색소성 망막염으로 시력을 잃은 남성이 조류 유래 채널로돕신을 이용한 유전자 치료를 받은 뒤 제한적이나마 시력을 회복한 경우다. 이 사례는 2021년에 보고됐다. 임상시험은 계속 진행 중이며, 광유전학은 여전히 무엇보다 연구 기법이다.

스톡홀름의 수상은 오랜 기간 이어진 수상 경력의 마지막에 놓였다. 2010년 헤게만, 밤베르크와 함께 받은 와일리상과 카를 하인츠 베커르츠상, 2013년 루이장테 의학상, 2019년 럼퍼드상, 2020년 헤게만과 미젠뵈크와 공동 수상한 쇼상 생명과학·의학 부문이 그 뒤를 이었다. 그는 2026년 6월 말 공식 은퇴했다. 그와 무스티는 추운 계절이면 나폴리 근처에서 지낸다. 평균 기온이 뷔르츠부르크보다 10도 높고 안개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은퇴 뒤에도 2025년 혈소판에서 칼슘을 통과시키는 채널로돕신을 이용한 연구를 비롯해 새 논문에 그의 이름이 계속 실렸다. 2026년 10월 5일 발표로 그는 University of Würzburg의 열다섯 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그는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메달을 받는다. 그가 처음 개구리 난자에 넣어 작동시킨 단백질은 이제 전 세계 연구실에서 신호에 맞춰 열린다. 그것이 두 번째 환자, 세 번째 환자에게까지 이어질지는 수상이 조금 더 기다렸어야 한다고 그가 생각했던 바로 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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