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프란시스 할전, 남극 땅을 밟지 않고 얼음 망원경으로 노벨상 받은 물리학자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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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할전
출생1944년 3월 23일
Tienen, Belgium
직업물리학자
수상발잔상 · 코코니상 · 줄리어스 웨스상

프랜시스 할젠(Francis Halzen)은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얼음 위에 한 번도 서 본 적이 없다.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의 물리학자인 그는 수십 년 동안 남극점 아래 빙하에 광센서를 설치하면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곳들이 뿜어내는 입자를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안서를 쓰고 검출기를 만든 공동연구단을 이끌었다. 시추 작업과 혹독한 현장 작업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다. 올가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했다. 수백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함께 만든 관측소의 공로를 할젠 한 사람에게만 돌린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특이한 대목은 바로 그 홀로 받은 상이다. 물리학상은 보통 두세 명에게 돌아가고, 아이스큐브는 열두 개가 넘는 나라의 연구진이 참여한 공동연구단의 성과다. 할젠은 아이스큐브의 시작을 우연이 이어진 결과로 설명한다. 미국물리학회와의 구술사 인터뷰에서 그는 “우연히 이 일에 휘말려 들었다”고 말했다. 창립자 네 명 가운데 제안서를 써 본 사람은 그뿐이었다.

남극점으로 향하는 그의 여정은 얼음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시작됐다. 그는 1944년 3월 23일 플란데런 브라반트의 도시 티넨에서 태어났다. 루뱅 가톨릭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해 1966년 석사 학위를 받았고, 네덜란드어로 쓴 강입자의 대칭성 깨짐에 관한 논문으로 1969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제네바 인근의 유럽 입자물리학 연구소 CERN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일한 뒤 대서양을 건너 매디슨으로 왔다. 이곳에서 일한 지도 이제 반세기가 넘었다.

위스콘신에서 그는 쿼크와 가속기 충돌을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로 활동했다. 1977년 정교수가 됐고, 1984년에는 대학 초등입자물리학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돼 지금까지 그 자리를 맡고 있다. 같은 해 영국의 물리학자 앨런 D. 마틴(Alan D. Martin)과 함께 펴낸 Quarks and Leptons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자물리학의 표준 교재가 됐다. 그 무렵 그의 관심은 이미 우주선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우주선은 어떤 실험실에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에너지로 지구를 때린다.

1987년 그는 남극 얼음 속 중성미자를 전파 안테나로 포착하려는 소련의 계획을 접했다. 신호가 너무 약하다고 판단했지만, 얼음 자체는 계속 마음에 남았다. 중성미자는 전하가 없고 질량도 거의 없다. 지구를 가로질러도 멈추지 않는다. 바로 그 점 덕분에 중성미자는 유용하다. 만들어진 곳에서 직선으로 날아오기 때문이다. 드물게 원자핵과 충돌하면 전하를 띤 입자가 생기고, 이 입자는 희미한 푸른빛을 낸다. 할젠은 남극점 아래의 투명하고 어두우며 안정적인 얼음 속에서 그 빛을 관측하자고 제안했다. 1988년 그는 하와이 앞바다에서 수중 검출기 사업을 이끌던 존 러니드(John Learned)와 함께 폴란드에서 열린 학회에서 이 구상을 발표했다. 그는 “AMANDA 구상에 대해 발표했어요… 무대에서 비웃음을 사는지 보려고요”라고 회고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시범 사업인 AMANDA는 1990년 무렵 할젠의 위스콘신대 동료이자 공식 책임연구자였던 밥 모스(Bob Morse)를 비롯한 소수의 물리학자들이 모여 추진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전체 구상을 좌초시킬 뻔했다. 지표 가까운 얼음에는 작은 기포가 가득했고, 기포가 빛을 심하게 흩뜨려 섬광은 순식간에 방향을 잃었다. 더 깊은 곳의 얼음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투명했다. AMANDA는 이 방법으로 중성미자를 관측할 수 있음을 입증했고, 제대로 된 망원경을 만들려면 규모를 훨씬 키우고 더 깊이 설치해야 한다는 점도 보여줬다.

할젠은 2001년 후속 사업인 아이스큐브의 책임연구자가 됐다. 작업팀이 뜨거운 물로 구멍을 뚫고 센서 줄을 내린 뒤 물이 다시 얼기를 기다리는 작업을 6년간 이어간 끝에, 2011년 관측소가 완공됐다. 지표 아래 약 1,450~2,450미터 깊이에 5,160개의 광학 모듈을 설치한, 부피 1세제곱킬로미터 규모의 얼음 검출기였다. 2013년 공동연구단은 태양계 바깥에서 온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첫 증거를 발표했다. 이 입자들은 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가 가속하는 입자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를 지녔다. 과학 잡지 Physics World는 이를 올해의 획기적 성과로 선정했다. 후속 연구에서는 중성미자의 방향을 플레어를 일으키는 블레이저 TXS 0506+056, 활동은하 NGC 1068, 그리고 2023년에는 우리 은하수의 은하면까지 추적했다.

노벨상 수상 이유에 적힌 “결정적인 공헌”이라는 표현에는 무게가 실려 있다. 할젠은 이론물리학자이며, 본인의 말에 따르면 AMANDA 때도 그 이후에도 남극에 간 적이 없다. 수상 발표 후 미국물리학회가 공개한 기고문은 그를 “단독으로 이끈 원동력이나 총괄 설계자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프로젝트를 다룬 마크 보웬(Mark Bowen)의 책 The Telescope in the Ice도 모스와 얼음 시추 전문가 브루스 코치(Bruce Koci) 같은 인물들에게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할젠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이 막 풀리려던 때 자신이 책임연구자가 되지 않으면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하며 “그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저는 책임연구자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과학적으로도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아이스큐브는 우주 중성미자가 꾸준히 흘러든다는 사실을 입증했지만, 그 대부분은 여전히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NGC 1068조차 물리학자들이 발견을 주장할 때 적용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통계적 신뢰도로 관측됐다.

2026년 10월 6일 수상 발표 당시 할젠은 이탈리아에 있었다. 베르가모 과학 축제에서 아이스큐브에 관해 이야기한 지 며칠 뒤였다. 그는 스톡홀름 기자회견에 전화로 참석해 “정말 크게 놀랐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1992년 이후 단독으로 물리학상을 받은 첫 수상자이며, 벨기에 출신으로는 11번째 노벨상 수상자다. 위스콘신대학교 교수진 가운데 현직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례는 1975년 이후 처음이다. 앞서 그해 미국물리학회는 연구 분야에서 이룬 탁월한 성취를 인정해 그에게 메달을 수여했고, 2024년에는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수상 자체를 지원을 끌어내는 지렛대로 삼았다. 매디슨에서 기자들에게 “지금 제안서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 상이 승인을 받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웃음이 터졌다. 공동연구단은 이미 아이스큐브-젠2를 구상하고 있다. 얼음 속 관측 규모를 약 8세제곱킬로미터로 확대하는 사업이지만, 전체 건설 비용은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 지중해와 바이칼호에서는 경쟁 중성미자 망원경 건설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 82세인 할젠은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메달을 받는다. 한때 그가 “귀여운 아이디어”라고 불렀고 “절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프로젝트는 지금도 어둠 속 섬광을 기록하고 있다. 그 빛이 어디서 오는지 밝혀진 곳은 여전히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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