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세실리 브라운, 욕망의 화가가 공원과 관광객 무리로 붓을 돌렸다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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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 브라운
출생1969
잉글랜드 런던
직업화가
대표작디스트릭티드 – 제한해제

세실리 브라운의 캔버스를 오래 들여다보면 붓질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의 형상이 서서히 드러난다. 무릎 하나, 벌어진 입, 알고 보니 강둑 위에서 뒤엉킨 두 인물. 이렇게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림은 작품이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는 시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제 영국 화가 브라운은 바로 그 매력을 복잡하게 비틀려는 듯하다. 올해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켄싱턴 가든스의 한 갤러리를 쓰러진 나무와 숲길, 동화책에서 가져온 잉크 드로잉으로 채웠다. 한 평론가는 숨겨진 난교 장면을 보러 갔다가 험프티 덤프티를 발견하고 돌아왔다고 털어놓았다.

이것은 후퇴일까, 아니면 브라운이 줄곧 회화와 벌여온 논쟁이 도달한 논리적 결말일까? 브라운은 언제나 관람자 앞에서 그림이 불안정한 상태로 남기를 바랐다. 그는 WSJ Magazine에 이렇게 말했다. “내 작업에는 늘 불안정한 면이 있어요. 어떤 것도 고정돼 있지 않죠.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안다고 여기다가도, 다시 보면 달라져요.” 신작은 그 불안정성을 자신의 명성, 그리고 세실리 브라운의 작품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했던 컬렉터와 평론가들에게로 돌린다.

소설가 셰나 매케이의 딸인 브라운은 1969년 런던에서 태어난 뒤 서리에서 자랐다. 엡섬 미술학교와 몰리 칼리지에서 공부하고 1993년 슬레이드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재스퍼 존스와 리처드 세라를 소개해주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업을 보러 데려간 집안의 친구는 평론가 데이비드 실베스터였다. 당시 미술을 공부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읽었던 베이컨 인터뷰를 쓴 바로 그 인물이다. 브라운은 슬레이드 재학 중이던 21세에 실베스터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여러 해 뒤 그는 그 사실이 가져온 결과를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런던에서는 내가 금수저예요. 여기 사람들은 아버지가 거물이었던 걸 잘 모르죠.” 여기란 뉴욕을 뜻했다.

브라운은 1994년 뉴욕으로 건너갔다. 데이미언 허스트와 세라 루커스가 활동하던 당시 런던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이 어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프리 다이치는 소호의 Deitch Projects에서 1997년과 1998년 두 차례 브라운의 개인전을 열었다. 두 전시 모두 서로 교미하는 토끼 그림으로 가득했다. 2000년에는 가고시안에 합류했고, 토끼는 두텁고 빠른 붓질 속에 반쯤 잠긴 인간의 몸으로 바뀌었으며, 작품 가격은 여섯 자릿수까지 치솟았다.

평론가들의 인정에 앞서 명성이 먼저 찾아왔다. 브라운은 Vanity Fair에 등장했고, 존 커린과 리사 유스카바지와 함께 당대의 구상화가로 묶였다. 《뉴욕 타임스》의 로버타 스미스는 브라운의 첫 가고시안 전시를 혹평했다. 훗날 그는 작품이 “쓸데없이 어수선하고, 괜히 도발적이며”,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작품은 잘 팔렸다. 그런 의심은 10년 동안 브라운을 따라다녔다. 윌럼 데 쿠닝과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호방함을 빌려왔지만 그들이 걸었던 판돈은 감당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사진이 작품의 몫까지 해내고 있다는 의심이었다.

그런 의심이 놓친 것은 표면 아래에 얼마나 많은 미술사적 독서가 깔려 있었는가였다. 브라운은 루벤스와 브뤼헐, 보스, 고야의 작품을 끌어오고, Suddenly Last Summer처럼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서 제목을 가져오기도 한다. 드로잉에서는 더 멀리 나아가 지미 헨드릭스의 앨범 표지 Electric Ladyland까지 참조한다. 큐레이터 이언 알티비어는 브라운의 작품 제목에 되풀이해 등장하는 ‘메이드’라는 단어의 기원을 런던에서 보낸 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브라운은 집 청소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2014년 브라운은 조용히 가고시안을 떠나 전 가고시안 디렉터 앤드리아 크레인과 작업을 시작했고, 뉴욕의 Paula Cooper와 런던의 Thomas Dane에 작품을 나눠 선보였다. 그는 이 결정에 대해 “어쩌면 더 깊이 관여하고, 권한을 그렇게 많이 넘겨주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죠”라고 말했다.

결정적인 재평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뤄졌다. 알티비어가 기획하고 2023년 4월부터 12월까지 열린 Cecily Brown: Death and the Maid는 뉴욕에서 열린 브라운의 첫 전면적인 미술관 회고전으로, 해골과 거울을 들여다보는 미녀들을 중심에 두었다. 브라운은 전시 개막을 앞두고 “완전히 사기꾼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스미스는 전시를 세 번 찾은 뒤 “세실리 브라운에 대한 내 판단이 틀렸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발표했다. 자신이 작품을 충분히 천천히 들여다보지 않은 탓에, 의도된 복잡성을 그저 부산스러움으로 받아들였다고 인정했다.

시장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평론가들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있었다. Suddenly Last Summer는 2018년 소더비에서 약 680만 달러에 팔렸고, 2025년 11월에는 토끼를 그리던 시절의 캔버스 High Society가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981만 달러에 낙찰됐다. 종전 기록보다 44퍼센트 높은 금액이었다. 브라운은 작품의 영향력을 미술계 바깥으로도 넓혀왔다. 2021년에는 환경법 자선단체 ClientEarth를 위해 There’ll be bluebirds를 기부했고, 이 작품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350만 파운드를 모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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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2026년 3월부터 9월까지 서펜타인 사우스에서 열린 Cecily Brown: Picture Making에 대한 반응이 중요하다. 2005년 모던 아트 옥스퍼드 전시 이후 처음으로 영국의 주요 미술관에서 열린 브라운의 회화전은 오래된 비판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다. The Arts Desk는 전시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 20여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평했고, 신작 캔버스는 “침체되고 생기 없다”고 했으며, 자연 속 산책을 다룬 연작은 “풍경화의 진부한 상투형”이라고 일축했다. Cultbytes는 브라운이 작품의 에로틱한 긴장감을 낮췄다는 말로 리뷰 제목을 달았다. 이제 제기되는 불만은 브라운이 사람들이 돈을 내고 보러 오던 화가이기를 그만뒀다는 것이다. 2000년 스미스가 내놓은 비판보다 낯선 주장이다. 붓질만큼이나 작가의 브랜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브라운은 그런 비판에 답하려고 작업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토머스 데인과 함께하는 네 번째 전시이자 나폴리 공간에서 여는 두 번째 전시인 A sunset, a ruin, a crowd, and a battle는 9월 29일 개막해 2026년 12월 19일까지 열린다. 신작 회화와 드로잉 30점은 런던 전시의 공원에서 유럽의 여름 해변으로 무대를 옮긴다. 중심 작품인 Sorrento Sunset은 폭이 거의 4미터에 이른다. 관광객으로 빽빽한 해변 마을에서 사람들은 역광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려 다툰다. 여름 동안 미시간의 크랜브룩 미술관은 브라운의 대형 캔버스 한 점을 조앤 미첼, 샘 길리엄의 작품 옆에 걸었다. 오랫동안 브라운을 견줘온 화가들과 나란히 놓은 것이다.

브라운은 2008년 결혼한 건축 평론가 니콜라이 우루소프와 뉴욕에서 살고 있다. 두 사람의 딸은 이듬해 태어났다. 브라운은 유니언 스퀘어 인근 작업실에서 일하며, 하루 만에 대형 캔버스 작업에서 수채화, 판화로 옮겨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폴리 전시는 런던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른다. 몸들이 돌아왔다. 이제 그들은 햇볕에 그을린 채 휴대전화를 들고 칵테일을 기다리며 줄을 선 군중이다. 숲속 연인들을 원했던 컬렉터들이 해변의 군중도 원할지는 브라운의 다음 10년을 둘러싼 열린 질문이다. 브라운은 이미 물감으로 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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