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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로프, 독일 대표팀 감독 부임…세 경기 만에 세르비아전 첫 승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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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로프
위르겐 클로프
Photo: Mehdi Bolourian /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67년 6월 16일
Stuttgart
직업축구 감독
우승 기록Bundesliga ×2 · DFB-Pokal 2012 · League Cup ×3 · UEFA 유로파리그 2016 · 챔피언스리그 2019 · Premier League 2020
개인 수상바덴뷔르템베르크 공로장 · 독일 연방공화국 공로십자장 · 독일 연방공화국 공로훈성 십자가

독일축구협회 본부가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첫 기자회견을 연 위르겐 클롭(Jürgen Klopp)은 자신이 어떤 경우에 물러날지 설명했다. 한두 명의 비판자가 아니라 더 넓은 여론이 자신을 떠나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퇴직 위로금도 받지 않고 떠나겠다고 했다. 언론이 가족을 공격해도 물러나겠다고 덧붙였다. 다음 월드컵까지 임기를 이어갈 새 감독이 취임 첫날부터 임기의 끝을 이야기하는 일은 드물다. 클롭은 그렇게 했고, 이는 자신은 더 이상 벤치에 서지 않겠다고 모두에게 말했던 그에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이번 복귀로 한 세대에서 클럽 축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으로 꼽히는 인물이, 자신이 잠시 맡아 지휘할 뿐인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클롭의 명성은 선수들과 매일 호흡을 맞추는 데 바탕을 둔다. 훈련으로 압박을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만들고, 한 주 사이에도 밀어붙였다가 다독일 만큼 잘 아는 선수들과 함께하는 방식이다. 대표팀 감독에게는 클럽 경기 사이 며칠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첫 홈 경기에서 그리스에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패한 뒤, 클롭은 직접 이렇게 말했다. “축구에는 훈련이 필요하고, 축구에는 반복적인 일상이 필요합니다.”

클롭은 1967년 6월 16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 인근 검은숲의 마을 글라텐에서 자랐다. 세 자녀 가운데 막내였으며, 아마추어 골키퍼로 뛴 적이 있는 외판원 아버지 노르베르트의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 마을 팀에서 공을 찼고,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세 팀에서 뛰는 한편 괴테대학교에서 스포츠과학을 공부했다. 졸업 논문 주제는 걷기였다. 훗날 그는 선수로서 자신의 재능을 “4부 리그급 발과 1부 리그급 머리”라고 요약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은 2부 리그의 마인츠 05에서 보냈다. 1990년 공격수로 입단한 그는 11년 뒤 수비수로 팀을 떠났으며, 리그에서 52골을 넣었다. 2001년 2월 구단이 감독을 경질하자 선수였던 클롭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클롭은 마인츠를 강등에서 구해냈다. 이후 세 시즌 동안 저비용으로 꾸린 선수단에 압박과 역압박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고, 2004년에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팀을 분데스리가에 올려놓았다. 마인츠는 리그에서 가장 적은 예산과 가장 작은 경기장을 갖춘 팀이었다. 2007년 강등됐고, 이듬해 승격에 실패하자 클롭은 사임했다. 그때쯤에는 TV 출연으로 마인츠 바깥에서도 얼굴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2006년 월드컵 기간 ZDF에서 축구 분석을 맡은 그는 독일 TV상을 받았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2008년 클롭을 선임했다. 젊은 선수들로 꾸린 팀은 2011년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2012년에는 DFB-포칼까지 들어 올리며 구단 역사상 첫 리그·컵 더블을 달성했다. 이 축구에는 공을 빼앗긴 뒤 물러서기보다 몇 초 안에 다시 공을 쫓는 전술이라는 기술적 명칭, 게겐프레싱이 있었다. 클롭은 여기에 ‘헤비메탈’이라는 더 강렬한 이름을 붙였다. 도르트문트는 2013년 웸블리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지만 바이에른 뮌헨에 패했다. 바이에른은 이후 두 차례 여름 이적 시장에서 마리오 괴체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를 차례로 영입했다. 클롭의 마지막 시즌은 최악에 가까운 출발을 보였고, 그는 2015년 4월 팀을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마지막 경기는 볼프스부르크에 패한 컵 결승이었다.

리버풀은 그해 10월 클롭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첫 결승전들도 같은 결과로 끝났다. 2016년 리그컵과 유로파리그 결승, 2018년 키이우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모두 패했다. 그러다 2019년 마드리드에서 리버풀은 토트넘 홋스퍼를 꺾고 유러피언컵 통산 여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에는 승점 99점으로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올랐다. 구단이 30년 만에 거둔 리그 우승이었다. 그 전 시즌에는 승점 97점을 얻고도 맨체스터 시티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2022년에는 FA컵과 리그컵을 차례로 우승했고, 2024년에도 리그컵을 들어 올렸다. FIFA는 2019년과 2020년 클롭을 세계 최고의 남자 축구 감독으로 선정했다.

널리 회자되는 영웅담에는 불편한 대목이 빠져 있다. 마드리드 결승에 오르기 전 클롭은 주요 대회 결승에서 6연패를 당했고, 안필드에서 보낸 9년 동안 리그 우승은 한 번뿐이었다. 지지자들은 이를 맨체스터 시티의 막대한 지출 탓으로 돌리고, 비판자들은 선수와 감독 모두를 소진시키는 전술 탓으로 본다. 클롭은 2024년 1월 리버풀을 떠나겠다고 발표하면서 사실상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에너지가 바닥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해 여름 ESPN에는 감독으로서의 일은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달 뒤 레드불의 글로벌 축구 부문 총괄로 계약했고, 독일에서는 적대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를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의 낭만적인 지도자로 여겼던 팬들과 기자들은 과거 그가 비판했던 멀티클럽 모델에 자신의 얼굴을 빌려줬다고 비난했다. 독일 대표팀이 그를 부르자 독일축구협회는 그를 풀어주는 대가로 레드불 재단에 100만 유로를 지급했다.

기회는 실패에서 찾아왔다. 클롭은 2026년 월드컵 기간 MagentaTV 축구 해설위원으로 일하며 독일이 32강에서 파라과이에 패해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율리안 나겔스만(Julian Nagelsmann)은 7월 3일 사임했다. 3주 뒤 독일축구협회는 베른트 노이엔도르프(Bernd Neuendorf) 회장의 표현을 빌려 클롭을 “의심의 여지 없는 꿈의 선택”으로 소개했다. 계약 기간은 2030년까지로, 유로 2028과 그다음 월드컵까지 포함한다. 클롭은 8월 15일 마인츠 시절부터 함께해온 페터 크라비츠(Peter Krawietz), 리버풀 시절 동료인 펩 레인더스(Pep Lijnders), 그리고 독일 대표팀 출신 스벤 벤더(Sven Bender)와 함께 업무를 시작했다.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네덜란드전은 추가 시간에 코디 각포(Cody Gakpo)가 동점 골을 넣으면서 1-1 무승부로 끝났고, 이어진 그리스와의 홈 경기에서는 1-0으로 패했다. 독일은 점유율 4분의 3을 가져가고도 굴절된 슈팅 한 번에 무너졌다. 클롭은 자신이 책임을 100퍼센트 지겠다고 했고, 이번 결과도 과정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나흘 뒤 뮌헨에서 톰 비쇼프(Tom Bischof)가 A매치 첫 골을 넣고 플로리안 비르츠(Florian Wirtz)가 두 번째 골을 보태면서 독일은 세르비아를 2-0으로 꺾었다. 클롭의 첫 승이었다.

독일 광고에서 맥주와 자동차를 홍보해온 클롭은 가족을 철저히 사생활로 지킨다. 사회복지사이자 아동 도서 작가인 울라 잔드로크(Ulla Sandrock)와 2005년 결혼했으며, 첫 결혼에서 얻은 아들이 한 명 있다. 그는 루터교 신자로, 신앙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왔다. 리버풀은 2022년 그에게 시의 자유인 칭호를 수여했고, 독일은 2024년 연방공로훈장을, 영국은 2025년 명예 CBE를 수여했다.

다음 시험대는 10월 4일 테살로니키에서 만나는 그리스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독일을 꺾었던 바로 그 팀이다. 계약은 2030년까지지만, 클롭은 이미 임기가 단축될 수 있는 조건을 밝혔다. 그가 얼마나 오래 자리를 지킬지는 성적에 달려 있으며, 독일과 독일 언론이 그가 첫날 내건 조건을 지키는지에도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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