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이비드 체이스, 영화감독을 꿈꾸다 《소프라노스》로 TV를 바꿔 놓은 사람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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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체이스
데이비드 체이스
Photo: US Embassy Dublin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45년 8월 22일
Mount Vernon, New York, United States
직업각본가, 쇼러너, 영화감독, 프로듀서
대표작더 매니 세인츠 오브 뉴어크
수상7 에미상 · Peabody · WGA Laurel Award for TV Writing Achievement · PGA Norman Lear Achievement Award in Television · New Jersey Hall of Fame

데이비드 체이스(David Chase)는 일생의 대부분을 자신이 잘못된 업계에 들어왔다고 말하며 보냈다. 그가 꿈꾼 것은 뉴저지에서 어린 시절 낮 시간에 보던 영화 같은 작품을 연출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20년 동안 그에게 TV 대본만 맡겼다. 탐정물 에피소드와 방송사 드라마를 썼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거의 아무도 보지 않은 성장 드라마도 잠시 만들었다. 그러다 그 좌절을 바탕으로, 어머니 문제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마피아 보스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그 작품은 TV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범위를 바꿔 놓았다. “TV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죠.” 그는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기자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도무지 그 틀을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 모순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The Sopranos는 체이스를 성공으로 이끈 작품이자, 그가 들어가는 곳마다 여전히 질문을 받는 작품이다. 그 뒤로 만든 영화들은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고, CIA의 LSD 실험을 다룬 새 프로젝트는 HBO를 위한 한정 시리즈다. 동시대의 많은 이들이 일을 그만둔 나이에도 체이스는 자신의 이름을 알린 매체와 여전히 씨름하고 있으며, 본인의 말대로라면 아직도 영화를 만들 방법을 찾고 있다.

뉴저지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그리고 리비아의 모델이 된 어머니

이탈리아계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노마와 헨리의 외동아들인 데이비드 헨리 체이스는 1945년 8월 22일 뉴욕주 마운트버넌에서 태어났다. 허드슨강 건너편 뉴저지에서 자랐는데, 처음에는 클리프턴의 작은 정원형 아파트에서 살았고 나중에는 노스콜드웰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베로나에서 라이트스 하드웨어를 운영했다. 집안 이름에는 최근 들어서야 온전히 드러난 사연이 있다. 친할머니 테레사 멜피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편을 떠나 두 자녀 헨리와 에벌린의 친부인 젊은 이탈리아 이민자와 함께 살게 된 뒤, 두 아이의 성을 데체사레에서 체이스로 바꿨다. 멜피라는 성은 수십 년 뒤 토니 소프라노의 정신과 의사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체이스는 자신이 자란 집에 대해 거침없이 말해 왔다. 아버지는 늘 자신을 깎아내리는 화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수동공격적인 드라마 퀸”이자 “몹시 의존적이고 언제나 히스테리에 빠지기 직전인 상태로, 자신이 있는 모든 상황을 좌우하는 신경질적인 여자”였다고 묘사했다. 훗날 그는 어머니를 TV 역사상 가장 두려운 어머니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리비아 소프라노로 빚어냈고, 외숙모의 이름을 따 캐릭터 이름을 지었다. 카를로비바리에서 그는 어머니를 알던 사람들이 “정말 거칠고 웃기는 분이어서, 그분을 두고 뭔가 해야만 했다”고 말해 줬다고 했다.

그에게 또 하나의 결정적인 영향은 스크린이었다. The Public Enemy 같은 갱스터 영화를 낮 시간에 즐겨 봤고, 범죄 시리즈 The Untouchables도 좋아했다. 그가 살던 교외 지역에서 마피아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뉴저지에서 세력을 떨친 강력한 조직범죄 집단 보이아르도 가문은 훗날 뉴저지의 데카발칸테 가문과 함께 The Sopranos의 소재가 됐다. 그는 웨스트에섹스 고등학교에 다녔고 친구들 사이에서 이야기꾼으로 통했다. 나중에 이 작품은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에게서 이름을 빌려 왔다.

우울증과 드럼, 그리고 영화 학교까지 돌아간 길

196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체이스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의 웨이크포리스트대학교에 진학했지만, 그곳에서 무너졌다. 십 대 때부터 공황 발작과 우울증을 겪었고, 웨이크포리스트에서 증세는 더 심해졌다. 훗날 그는 당시 상태를 “정상적이지만 끊임없이 괴롭히는 임상적 우울증”이라고 표현하며 “하루에 18시간씩 잤다”고 말했다. 한편 드럼을 연주하며 전문 음악가로 살아가는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서 노래가 얼마나 정교하게 배치되는지 알아챈 사람이라면 기억해 둘 만한 대목이다.

2년 뒤 뉴욕대학교로 편입한 그는 영화 전공을 택했지만, 부모는 이를 반기지 않았다. 1968년 졸업한 뒤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연인 데니스 켈리와 결혼하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스탠퍼드대학교 영화 과정에 등록해 1971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계획은 분명했다. 하지만 업계는 다른 길을 내놓았다.

TV 현장에서 보낸 20년

그의 첫 스크린 크레디트는 1972년 개봉한 저예산 공포영화 Grave of the Vampire였다. 곧 TV 작업이 이어졌고, 그 일은 사실상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Kolchak: The Night Stalker의 스토리 편집자가 된 뒤, 제임스 가너가 형사로 출연한 시리즈 The Rockford Files에서 4년 넘게 일하며 19개 에피소드의 대본을 썼고 제작진 내에서 승진했다. 이 작품은 1978년 프라임타임 에미상 작품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을 수상했다. 체이스가 받게 될 프라임타임 에미상 7개 가운데 첫 번째였다. 2년 뒤에는 십 대 가출 소녀를 다룬 TV 영화 Off the Minnesota Strip으로 각본상을 받았다.

1988년 체이스는 이브 고든과 티머시 데일리가 출연한 첫 자체 시리즈 Almost Grown을 선보였다. 비평가들은 호평했지만, 1989년 초 종영하기 전까지 방영된 에피소드는 열 편뿐이었다. 이후 민권운동 시기 흑인 가정부와 백인 남부 가정의 이야기를 그린 1990년대 초반 드라마 I’ll Fly Away와 Northern Exposure를 제작했다. 두 작품 모두 드라마 시리즈 부문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꾸준하고 평판도 괜찮은 일이었지만, 체이스는 그 상당 부분을 숨 막히는 일로 여겼다. 그는 오랫동안 TV를 “혐오하고 경멸했다”고 말해 왔다. 훗날 그는 방송사 드라마의 규칙 안에서 일해야 했던 좌절감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설명하며 표현을 누그러뜨렸다. 2026년에는 1970년대 자신이 발을 들인 할리우드를 더 날 선 말로 묘사했다. “아파르트헤이트 같은 곳이었어요. TV 작가라면 영화 쪽으로 건너갈 수가 없었죠. 영화 업계 사람들과는 미팅조차 잡을 수 없었어요.”

마피아 보스, 치료사, 그리고 어머니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아이디어는 어울리게도 영화로 시작됐다. 체이스는 “치료를 받으면서 어머니 문제로 골치를 앓는 마피아 보스”를 다룬 장편영화를 구상했다. 에이전트는 이미 한물간 장르라고 했다. “마피아물은 끝났어요.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 없어요. 잊어버려요!” 아이디어는 그렇게 3년 동안 그의 주머니 속에 잠들어 있었다. 매니저 로이드 브라운의 조언을 받아 TV용으로 다시 다듬은 그는 1995년 제작사 브릴스타인-그레이와 개발 계약을 맺고 파일럿 대본을 썼다. 당시 본인도 정신치료를 받고 있었고, 제니퍼 멜피 박사는 자신의 정신과 의사를 모델로 삼았다. 체이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실제로 한 일은 자신의 “가족 역학을 마피아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체이스와 프로듀서 브래드 그레이는 대본을 들고 여러 방송사를 찾아다녔다. 폭스는 관심을 보였지만 대본을 읽은 뒤 거절했다. HBO 오리지널 프로그램 부문을 이끌던 크리스 앨브레히트는 파일럿 제작비를 대기로 했고, 체이스는 1997년 직접 연출에 나섰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아무 소식도 없었다. 시리즈 제작은 무산될 거라 확신한 체이스는 HBO에 45분 분량을 더 촬영할 돈을 요청해 파일럿을 장편영화로 개봉할까 고민했다. 뒷문으로라도 TV를 벗어나 보려는 또 한 번의 시도였다. 하지만 1997년 12월, HBO는 추가 에피소드 12편을 주문했다. The Sopranos는 1999년 1월 10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체이스는 쇼러너치고는 이례적으로 구체적으로 작품의 영향을 열거해 왔다. 각본에는 극작가 아서 밀러와 테네시 윌리엄스, 영화적인 스타일에는 페데리코 펠리니를 꼽았다. 줄거리를 멈추고 꿈 장면이나 곁가지 이야기, 설명되지 않는 이미지를 보여 주는 작품의 태도에서 후자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미국 TV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시도하지 않던 방식이었다.

체이스가 HBO에서 만들어 낸 것

8년 동안 86개 에피소드에 걸쳐 이 시리즈는 제임스 갠돌피니가 연기한 토니 소프라노의 공황 발작과 치료, 살인, 뉴저지 교외의 가족 식사를 따라갔다. 체이스는 30개 대본에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지만, 제작자이자 쇼러너, 수석 작가로서 모든 에피소드의 최종 대본을 다시 쓰고 다듬었으며 파일럿과 마지막 회도 직접 연출했다. 그의 작가진은 일종의 학교가 됐다. 테런스 윈터는 Boardwalk Empire를 만들었고, 매슈 와이너는 Mad Men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에미상 21개를 받았으며, 2004년에는 케이블 시리즈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작품상을 수상했다.

체이스는 갠돌피니를 이야기할 때 지금도 경이로움이 묻어나는 어조를 보인다. “그는 정말 훌륭한 배우였어요.” 카를로비바리에서 그는 말했다. “결국 눈이 전부인 것 같아요. 그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그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마흔 살이었지만 얼굴에서 그 어린아이를 느낄 수 있었죠. 우주와 세상 앞에서 어리둥절해하는 아이요.” 토니를 계속 지켜보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은 설명이다. 폭력적인 남자이면서도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린 아들이기를 멈추지 않는 인물이었다.

좌절한 영화감독의 면모는 화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체이스는 한 시간짜리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작은 영화처럼 다뤘다. 꿈 장면과 긴 침묵, 굳이 설명하지 않는 장면이 이어졌다. 오래전 드러머로 활동한 그의 감각은 사운드트랙에서도 드러났다. 오프닝 크레디트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기존 곡들이 대사로는 할 수 없는 역할을 해냈다. 체이스가 실비오 단테 역으로 캐스팅한 E 스트리트 밴드 기타리스트 스티븐 밴 잔트는 훗날 체이스의 첫 장편영화에서 음악 감독을 맡았다.

암전, 그리고 끝나지 않은 논쟁

체이스의 경력에서 결말만큼 논쟁을 불러온 대목은 없다. 2007년 6월 10일 방송된 마지막 회 “Made in America”는 토니와 아내, 아들이 식당에 모여 있는 장면으로 끝났다. 주크박스에서는 저니의 “Don’t Stop Believin’”이 흘러나왔고, 장면이 이어지던 도중 화면이 갑자기 검게 변했다. 일부 시청자는 케이블 방송이 끊긴 줄 알았다. 토니가 죽었는지를 두고 비평가들은 거의 20년 동안 논쟁을 벌여 왔다. 체이스는 결론을 내리기를 거부했다. “이미 있는 것을 설명하거나, 옹호하거나, 재해석하거나, 덧붙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 에피소드로 그는 시리즈 각본 부문에서 세 번째 에미상을 받았다.

체이스에 대한 비평적 평가는 이 작품에 흔히 따라붙는 승리의 서사보다 복잡하다. 그는 역대 가장 높이 평가받는 드라마 가운데 하나를 만들었지만, 자신이 원했던 경력 대신 얻은 위안으로 작품을 묘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 시리즈가 시대에 뒤처질까 걱정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나면 통하지 않을 레퍼런스가 많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특히 코미디 요소나 실존 인물을 언급하는 대목들이요. 그런 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시즌을 비롯해 특정 에피소드에 대한 후회도 있다. “그 작품에서 여성을 너무 섹시하고 매력적으로 그린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죠.” 시리즈가 사회학적 선언이었다는 해석에도 별 관심이 없다. “제 주된 목표는 재미를 주는 거였어요.” 그는 2026년에 말했다. “하지만 그래요, 제 창작 인생의 정점이죠.” 어머니의 목소리가 여전히 칭찬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분 좋아하는 건 허용되지 않아.”

마침내 만든 영화들

마지막 회가 끝난 뒤 체이스는 스탠퍼드 시절부터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드디어 연출했다. 2012년 12월 21일 개봉한 Not Fade Away는 그의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1960년대 뉴저지의 십 대 록 밴드 보컬 이야기를 음악 중심으로 그린 성장 영화로, 존 마가로가 주인공을 맡았고 제임스 갠돌피니가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다. 벨라 히스코트와 잭 휴스턴도 출연진에 이름을 올렸다. 밴 잔트는 음악 감독과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체이스는 이 작품을 “전쟁 이후, 대공황 이후 세대의 부모가 자신은 자라면서 누리지 못했던 모든 이점을 아이에게 안겨 줬지만, 이제는 아들이 누리는 자유롭고 모험적인 삶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가 만든 작품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영화다.

그는 수년 동안 소프라노 세계로 돌아가는 일을 거부했다. 2018년 뉴라인 시네마는 그가 로런스 코너와 함께 각본을 쓰고 제작한 프리퀄 The Many Saints of Newark를 사들였다. 시리즈의 베테랑 연출자인 앨런 테일러가 감독을 맡았다. 1967년 뉴어크 폭동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체이스가 조부모와 함께 그 도시에서 토요일 저녁 식사를 하던 기억을 바탕으로 했으며, 제임스 갠돌피니의 아들 마이클 갠돌피니가 십 대 시절 토니 역을 연기했다. 팬데믹으로 개봉이 여러 차례 미뤄졌고, 마침내 2021년 10월 1일 극장과 HBO Max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체이스는 영화의 결과를 이례적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해 왔다. 카를로비바리에서 그는 처음부터 기원 이야기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제작 과정 전체를 장악했다”고 말했다. 그는 디키 몰티산티의 과거사를 예로 들었다. “The Sopranos 내내 그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마약 중독자에 알코올 중독자고 제정신이 아니었다고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 때는 그가 나오지 않았어요.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우리가 실수한 겁니다.” 그는 이어 영화가 “극장에서는 성공하지 못했고, TV에서는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프로젝트들은 아예 제작에 이르지 못했다. D. W. 그리피스 밑에서 일하던 두 남자가 수십 년에 걸쳐 할리우드의 권력자로 올라서는 이야기를 그린 야심 찬 HBO 미니시리즈 A Ribbon of Dreams는 2021년 무산됐다. 체이스에 따르면 방송사가 “볼품없는 예산”을 제시했고, 그는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다. 2021년 10월 그의 제작사는 워너미디어와 계약을 맺었으며, 2022년에는 체이스와 감독 필 에이브러햄이 슈퍼볼 광고를 위해 The Sopranos의 캐릭터 두 명을 다시 등장시켰다.

Wise Guy와 작품 뒤에 선 남자

경력 대부분 동안 체이스는 자신의 히트작과 관련된 사람 가운데 가장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다. 2024년 9월 7일 HBO가 오스카 수상 감독 알렉스 기브니가 연출한 2부작 다큐멘터리 Wise Guy: David Chase and the Sopranos를 공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체이스와 나눈 긴 대화를 중심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시리즈의 밑거름이 된 가족사와 우울증, 방송사와 타협하며 보낸 세월을 짚었고, 무뚝뚝하다는 평판이 암시하는 것보다 훨씬 불안하고 유머러스한 인물을 보여 줬다. 그보다 1년 앞선 2023년에는 뉴저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작품의 25주년을 전후해서는 심야 토크쇼에도 출연해 자신이 마피아와 잠시 얽혔던 일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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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HBO로, 그리고 LSD로

2024년 3월 뉴라인은 체이스가 테런스 윈터와 함께 쓴 각본을 바탕으로 연출할 제목 미정의 공포영화를 발표했다. 두 사람이 장편영화에서 협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작 일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2025년 10월 HBO는 한층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Project: MKUltra는 존 리슬의 논픽션 Project Mind Control: Sidney Gottlieb, the CIA, and the Tragedy of MKUltra를 원작으로 개발 중인 한정 시리즈다. 체이스는 판권을 확보하고, 자신의 회사 리버레인 픽처스가 HBO와 맺은 우선 검토 계약에 따라 각색 대본을 쓰고 있다. 니콜 램버트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이야기는 ‘검은 마법사’로 알려진 화학자이자 첩보 책임자 시드니 고틀립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는 냉전 시기 CIA가 자발적·비자발적 실험 대상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환각제 및 정신 조종 실험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시리즈로 제작된다면 The Sopranos 이후 체이스의 첫 TV 시리즈가 된다. 비슷한 시기, 제작되지 않은 체이스의 각본이 앨리슨 브리 주연의 증인 보호를 다룬 FX 파일럿의 바탕이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026년 7월 열린 제60회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체이스는 이 소재에 끌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마 젊었을 때 LSD를 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는 말했다. “애시드에 빠져 살았던 건 아니지만, 여덟아홉 번쯤 했고 그게 제 인생을 바꿨다고 믿어요. 아직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그는 5년 동안 이 소재로 장편영화 대본을 쓰고 있었는데, 마약 영화가 아니라 “가족 이야기”였다고 했다. 리슬의 책 판권을 산 것도 다른 사람이 먼저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HBO의 케이시 블로이스와 프란체스카 오르시에게 이야기하자마자 두 사람은 판권을 샀다. 시리즈는 “이야기를 개발하는 단계”라고 그는 말했다. 영화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했다. “일단 영화를 만든 다음 배급사를 찾아봐야 할 것 같네요.”

거의 20년 만에 시리즈 작업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 이유를 묻자, 체이스는 특유의 건조한 어조로 답했다. “글쎄요, 이것저것 많이 썼는데 아무도 사지 않았어요.” 그는 안전한 선택만 거듭하는 업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스튜디오들은 “전에 봤던 것만 원해요. 예전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걸 다시 원하죠.” 크리스토퍼 맥쿼리의 말을 빌려 할리우드는 탐욕과 공포, 두 가지로 굴러간다고 주장한 그는 영화업계의 이윤율이 늘 6% 안팎이었다고 지적했다. “운동화를 파는 편이 낫죠.” 오늘날 HBO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제가 그쪽과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다시 방송사 TV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생활

체이스는 1960년대 후반부터 데니스 켈리와 결혼 생활을 이어 오고 있다. 두 사람의 딸인 배우 미셸 데체사레는 The Sopranos 여섯 편에 메도 소프라노의 학교 친구 헌터 스캔가렐로 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우울증과 치료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해 왔으며, 치료가 자신의 인생을 규정한 작품의 출발점을 마련하는 데 부분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평판에 비해 대중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의 심야 토크쇼 출연과 영화제 질의응답,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보면 코미디언 같은 타이밍 감각을 지닌 수다스러운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수상 및 인정

체이스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을 일곱 차례 받았다. 1978년 The Rockford Files, 2004년과 2007년 The Sopranos로 드라마 시리즈 작품상을 수상했고, 1980년에는 Off the Minnesota Strip으로 각본상을 받았다. The Sopranos 에피소드 “College”로 1999년, “Whitecaps”로 2003년, “Made in America”로 2007년에도 각본상을 수상했다. The Sopranos는 피바디상도 받았으며, 체이스는 로레인 브라코와 함께 상을 받았다. 미국작가조합은 2007년 TV 각본 공로를 기리는 로럴상을 수여했고, 미국프로듀서조합은 2008년 노먼 리어 텔레비전 공로상을 안겼다.

앞으로의 계획

체이스에게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 그는 Not Fade Away에 출연한 잭 휴스턴, 윌 브릴, 벨라 히스코트를 다시 모아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일할 기회도 마침내 얻고 싶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이탈리아의 인구가 빠져나간 마을에서 값싼 집을 사는 이야기도 구상 중이다. 네 사람이 옛 고향으로 돌아가 “무슨 뜻밖의 일이 기다리는지”를 다루는 이야기다. 마피아 영화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말하지만, 당장은 구체적인 작품이 없다. 다음으로 확정된 행보는 HBO의 Project: MKUltra다. TV 대본을 쓰고 싶지 않았던 남자가 다시 TV 시리즈를 맡아, 처음에는 영화로 떠올렸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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