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레이시 피터슨, 크리스마스이브에 사라진 대체 교사의 사건은 아직도 법정에 머물러 있다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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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 피터슨
출생1975년 5월 4일
Modesto, California, United States
사망2002년 12월 24일 (27)
직업대체 교사

레이시 피터슨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대개 재판을 통해 그 이름을 기억한다. 실종자 전단에 실린 환한 미소의 사진, 낚시를 하러 갔다고 말한 남편, 프레즈노에 살며 그의 통화 내용을 녹음한 여자친구, 법원 밖에 늘어선 위성 중계 차량을 떠올린다. 하지만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던 여성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관상원예학 학위를 받고 대체 교사로 일했으며, 남편과 함께 자신의 고향에 집을 마련했고, 2월에 아들을 낳을 예정이었던 여자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지금껏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부분은 바로 이 지워짐이다. 레이시가 실종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그녀의 이름을 딴 사건은 여전히 캘리포니아 법정에서 진행 중이다. 남편 스콧 피터슨은 레이시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수 수감동에서 나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다시 선고받은 뒤에도, 변호인단은 판결을 뒤집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다. 새 서류가 법원에 접수될 때마다 그녀의 사진은 저녁 뉴스에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보도에서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데스토에서 자란 딸

레이시 데니스 로차(Laci Denise Rocha)는 1975년 5월 4일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의 모데스토에서 샤론 로차와 데니스 로차의 딸로 태어났다. 오빠 브렌트, 여동생 에이미와 함께 자랐고, 어머니의 오랜 동반자였던 론 그랜츠키는 평생 대부분 그녀에게 새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가족 간의 유대가 끈끈하고 명절이면 온 가족이 한데 모이는 곳, 모데스토는 그런 동네였다. 로차 가족 역시 그랬다. 레이시의 실종 소식이 빠르게 퍼지고 주변 사람들이 곧바로 충격에 빠진 데는 이런 사정도 있었다.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이들은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레이시는 모데스토의 토머스 다우니 고등학교를 다닌 뒤 남쪽으로 내려가 샌루이스오비스포의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에 진학해 관상원예학을 공부했다. 식물을 직접 키우고 가꾸는 실용적인 전공이었다. 화려한 주목을 받는 삶보다는 가정과 정원, 교실을 중심으로 꾸려갈 삶에 가까운 길을 가리키는 학문이기도 했다.

스콧, 센트럴코스트, 그리고 고향으로의 귀환

1994년 학생 시절, 레이시는 모로베이의 퍼시픽 카페에서 스콧 피터슨을 만났다. 스콧은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에서 농업경영학을 공부하며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1997년 센트럴코스트의 시카모어 미네랄 스프링스 리조트에서 결혼했고, 한동안 샌루이스오비스포에서 ‘더 섀크’라는 스포츠 바를 함께 운영했다.

2000년 가을, 두 사람은 모데스토 코베나 애비뉴에 집을 샀고 이듬해 봄에는 바를 팔았다. 레이시는 어머니와 가까운 고향으로 돌아와 대체 교사로 일했고, 스콧은 비료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2002년 레이시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아들은 2003년 2월 10일 출산 예정이었고, 두 사람은 아이의 이름을 코너로 정해뒀다. 가족의 눈에 그해 마지막 몇 달은 새 식구를 맞이할 평범한 가정의 시작처럼 보였다.

크리스마스이브

2002년 12월 23일 저녁, 레이시와 스콧은 모데스토에 있는 미용실에 들렀다. 여동생 에이미가 일하는 곳이었다. 에이미는 매달 그랬듯 스콧의 머리를 잘라줬다. 그날 밤 늦게 레이시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가족이 레이시의 목소리를 들은 마지막 순간이었다.

스콧의 말에 따르면 그는 다음 날 오전 9시 30분쯤 아내를 마지막으로 봤다. 레이시는 텔레비전으로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고, 바닥을 닦고 빵을 굽고 골든 리트리버 맥켄지와 산책할 예정이었다고 했다. 스콧은 최근에 산 작은 알루미늄 보트를 타고 낚시하러 버클리 마리나로 차를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오전 10시 18분, 이웃 주민 캐런 서바스는 목줄이 달린 채 거리로 나와 있던 맥켄지를 발견해 피터슨 부부의 집 마당에 다시 데려다 놓았다. 그날 오후 스콧은 아내의 전화기에 메시지를 남겨, 오후 2시 15분이며 버클리에서 출발한다고 알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레이시의 차는 진입로에 세워져 있었다. 그날 오후 6시가 되기 전에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

뒤이어 시작된 수색에는 자원봉사자 수백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공원과 운하 주변을 걸으며 레이시를 찾았다. 모데스토 곳곳의 상점 유리창에는 그녀의 사진이 붙었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실종된 임신부의 이야기가 전국 방송에 소개되면서 현상금도 불어났다. 가족들은 명절 내내 전단을 나눠줬다.

남편의 이야기가 무너지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수사의 흐름이 바뀌었다. 12월 30일, 프레즈노의 마사지 치료사 앰버 프레이가 수사관들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2002년 11월 20일 스콧 피터슨을 만났고, 스콧은 자신이 미혼이라고 말했다. 레이시가 실종되기 전인 12월 초에는 아내를 잃었으며 아내 없이 처음 맞는 명절을 보내게 됐다고 털어놨다. 프레이는 경찰을 위해 스콧과의 통화를 녹음하기로 했다. 2003년 1월 24일 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이 사건에 어떻게 얽히게 됐는지 설명하자, 대중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달라졌다.

첫 몇 주 동안 스콧의 곁을 지켰던 레이시의 가족은 1월 중순 불륜 사실을 알고 그에게 등을 돌렸다. 한편 수사관들은 몇 주 전 스콧이 산 보트와 직접 만든 닻을 만들 때 사용한 시멘트에 주목했다. 검찰은 나중에 스콧이 가지고 있지 않던 닻들이 아내의 시신을 물속에 가라앉히는 데 쓰였다고 주장했다. 스콧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 결과 사람들은 그의 태도를 더욱 꼼꼼히 살피게 됐다.

2003년 4월

2003년 4월 13일, 한 산책객이 리치먼드 인근 샌프란시스코만 해안에서 남자 태아의 시신을 발견했다. 다음 날 약 1.6km 떨어진 포인트 이사벨 지역공원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두 곳 모두 만의 동쪽 끝에 있었으며, 스콧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낚시를 했다고 말한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4월 18일 DNA 검사 결과 시신은 레이시와 코너로 확인됐다. 검시관은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같은 날 경찰은 샌디에이고 카운티 라호야의 토리파인스 골프장 인근에서 스콧 피터슨을 체포했다. 그는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염색한 상태였다. 차 안에서는 현금 약 1만 5,000달러, 캠핑·생존 장비, 휴대전화 여러 대, 형의 운전면허증이 발견됐다. 그는 두 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2003년 8월 30일, 레이시와 코너는 모데스토 인근 에스칼론의 버우드 묘지에 함께 묻혔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묘비에는 피터슨이라는 성이 새겨지지 않았다. 묘비에 적힌 이름은 로차다.

재판

스타니슬라우스 카운티에서 사건 보도가 쏟아지자 재판은 샌머테이오 카운티로 옮겨졌고, 2004년 6월 1일 레드우드 시티에서 앨프리드 델루치 판사 주재로 시작됐다. 릭 디스타소가 이끈 검찰에는 자백도, 살해 장면을 본 목격자도, 레이시가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 입증할 법의학적 증거도 없었다. 검찰은 여러 정황을 쌓아 올려 사건을 구성했다. 불륜, 프레이에게 한 거짓말, 몰래 산 보트, 시신이 발견된 바로 그 만으로 떠난 낚시 여행, 가족 없이 살아갈 준비를 하는 듯 보였던 남편의 행동이 그 근거였다. 배심원들은 프레이와 스콧이 나눈 통화 녹음도 몇 시간 동안 들었다. 마크 게라고스가 이끈 변호인단은 수사 초기부터 스콧을 범인으로 지목한 수사팀이 다른 가능성은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2004년 11월 12일, 배심원단은 레이시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 스콧 피터슨에게 1급 살인 유죄를, 코너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2급 살인 유죄를 평결했다. 평결이 낭독되자 법원 밖에 모인 군중은 환호했다. 12월 13일 같은 배심원단은 사형을 권고했고, 2005년 3월 16일 델루치 판사는 그에게 공식적으로 사형을 선고했다. 이날 법정에서 레이시의 어머니는 전 사위에게 그가 자신의 가족에게서 빼앗아간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말했다.

구경거리로 변한 사건

레이시 피터슨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언론 보도가 그녀의 이야기에 미친 영향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정직한 글이라 할 수 없다. 케이블 뉴스는 거의 2년 동안 이 사건을 매일 밤 이어지는 연속극처럼 다뤘다. 딘 케인이 스콧 역을 맡은 TV 영화 The Perfect Husband: The Laci Peterson Story는 재판이 시작되고 배심원들이 증언을 듣기도 전인 2004년 2월에 처음 방영됐다. 비슷한 시기 비평가들은 하나의 보도 경향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언론인 그웬 이필은 일부 실종 여성에게는 전국 언론이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쏟고 다른 여성들은 외면하는 현상을 ‘실종된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고 불렀고, 피터슨 사건은 그 대표 사례 중 하나가 됐다.

이런 구경거리는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모습까지 바꿔놓았다. 경찰 수사에 협조했을 뿐인 앰버 프레이는 타블로이드의 인물로 소비됐다. 스콧은 매끄러운 말솜씨로 거짓말하는 남편의 상징이 됐고, 그 상징은 유죄 판결이 증거가 아니라 대중의 증오 때문에 내려졌다고 주장하려는 이들에게 지금껏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레이시 자신은 사진 한 장으로 쪼그라들었다. 식물을 공부하고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가르쳤던 여성은 사망 시각, 목줄, 만의 한 지점이라는 사건의 사실 목록으로 바뀌었다.

레이시와 코너 법

이 사건이 남긴 가장 오래가는 유산은 어머니가 만들어냈다. 샤론 로차는 임신부에 대한 공격으로 두 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연방 차원에서 인정받기 위해 워싱턴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2004년 4월 1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로차가 참석한 가운데 ‘태아 폭력 피해자법’에 서명했다. 이 법은 널리 ‘레이시와 코너 법’으로 불린다. 임신부를 상대로 한 특정 연방 폭력 범죄 과정에서 태아를 다치게 하거나 사망하게 하면 별도의 연방 범죄로 처벌하도록 한 법이다. 2005년 법원은 레이시의 생명보험금 25만 달러를 그녀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이 아니라 어머니가 받게 된다고 판결했다.

2006년 로차는 For Laci: A Mother’s Story of Love, Loss, and Justice를 출간했고,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올랐다. 레이시를 피해자가 아닌 딸로 그려낸 책 가운데 지금도 가장 온전한 초상화다. 앰버 프레이는 자신의 책 Witness: For the Prosecution of Scott Peterson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2005년에는 제이넬 몰로니가 타이틀롤을 맡은 두 번째 TV 영화 Amber Frey: Witness for the Prosecution도 나왔다.

20년에 걸친 항소

사형 선고는 유지되지 않았다. 2020년 8월 24일,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살인 유죄 판결은 만장일치로 유지했지만 사형 선고는 취소했다. 사형제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예비 배심원들을 부당하게 배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2021년 12월 8일 스콧 피터슨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다시 선고받았다. 배심원 리셸 나이스가 배심원단에 들어가기 위해 가정폭력 피해 경험을 숨겼다는 별도의 주장은 2022년 12월 샌머테이오 카운티의 앤크리스틴 마술로 판사가 기각했다. 그해 가을 스콧은 샌쿠엔틴 교도소에서 이오네의 뮬크리크 주립교도소로 이감됐다.

2024년 초 로스앤젤레스 이노센스 프로젝트가 그의 사건을 맡았다. 변호인단은 크리스마스 무렵인 2002년 피터슨 부부 집 건너편에서 발생한 주택 침입 절도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았고, 코너의 사망 시점을 둘러싼 과학적 증거도 신뢰할 수 없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2024년 판사는 레이시의 옷에서 발견된 덕트 테이프 한 조각에 대한 DNA 검사를 허용했지만, 변호인단의 나머지 요청 대부분은 기각했다. 이 단체는 2025년 8월 실제로 무죄라는 주장을 담은 세 번째 인신보호 청원을 제출했다.

2026년 4월 말, 샌머테이오 카운티 상급법원의 엘리자베스 힐 판사는 청원을 전부 기각했다. 청원에 담긴 14개 주장은 절차상 심리할 수 없거나 근거가 없으며, 새로운 증거라고 제시한 과학적 근거도 수년 전 이미 제기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스타니슬라우스 카운티 검찰은 해당 청원이 이미 나왔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라고 했다. 이노센스 프로젝트는 상급 법원에서 계속 다투겠다고 밝혔고, 2022년 배심원 관련 판결에 대한 이들의 항고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다시 화면에 등장하다

2024년 8월, 이 사건은 한 주 사이에 매우 다른 두 가지 형태로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넷플릭스는 레이시의 가족과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기록 영상을 중심으로 구성한 3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 American Murder: Laci Peterson을 공개했다. 피콕은 이어 감옥에서 카메라 앞에 선 피터슨이 결백을 주장하는 Face to Face with Scott Peterson을 내놨다. 두 작품은 레이시가 실종됐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에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한편, 첫 보도 때와 같은 기준선을 따라 시청자들을 둘로 갈라놓았다. 스콧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과 레이시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로 말이다.

레이시의 가족은 이런 반복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론 그랜츠키는 2018년 4월 세상을 떠나 레이시와 코너 곁에 묻혔다. 친아버지 데니스 로차도 같은 해 12월 사망했다. 샤론 로차는 딸을 대신해 계속 목소리를 내왔고, 항소가 새로 제기될 때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몇 주를 대중 앞에서 다시 떠올려야 했다. 그녀가 첫 기자회견부터 에스칼론의 묘비에 이르기까지 줄곧 강조해온 것은 하나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는 사람에게는 사건이 또 다른 이름을 붙이기 전부터 본래 이름이 있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법원이 앞으로 스콧 피터슨의 청원을 어떻게 처리하든, 2004년 유죄 평결은 지금까지 거친 모든 심사를 견뎌냈다. 레이시 피터슨을 둘러싼 더 큰 질문은 법률 문제가 아니다. 실종을 오락거리처럼 지켜본 나라가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녀를 기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들을 기다리던 모데스토의 교사, 레이시 로차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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