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he 355, 스타 배우들의 재능을 낭비한 빈약한 연출

Liv Altman
Google에서 추가하기

The 355의 오프닝은 콜롬비아 요원 루이스 로하스가 마약 조직과 당국의 눈을 피해 첨단 암호 해독 장치를 빼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역동적이고 혼란스러우면서도 가능성이 엿보이는 출발이다. 그러나 이 기대는 오래가지 못하고, 영화는 결국 아쉬운 기회를 놓친 작품으로 남는다.

사이먼 킨버그가 연출하고 테레사 레벡과 공동 집필한 The 355에는 화려한 배우들이 모였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결단력 있는 CIA 요원 메이슨 ‘메이스’ 브라운 역을, 제시카 차스테인이 아니라 루피타 뇽오는 재치 넘치는 전직 MI6 요원 카디자 아디예메 역을 맡았다. 페넬로페 크루스는 경험은 부족하지만 기지를 발휘하는 콜롬비아 심리학자 그라시엘라 리베라를, 다이앤 크루거는 거침없는 독일 요원 마리 슈미트를, 판빙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 요원 린미셩을 연기한다. 이름만 놓고 보면 전율을 일으킬 만한 라인업이다. 하지만 킨버그의 연출은 재능 있는 배우들을 ‘세계를 누비는 걸크러시 스파이’ 장르의 상투적인 인물로 축소하는 경우가 많다.

YouTube video

The 355에서 빛나는 대목은 주연 배우들 사이의 호흡이 살아나는 순간들이다. 모로코에서 메이스, 카디자, 그라시엘라, 마리가 긴박한 추격전 끝에 마지못해 손을 잡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이 장면에서 각본은 배우들이 진솔하게 주고받는 대화와 농담을 담아내며 캐릭터의 매력을 살린다. 크루스가 연기한 그라시엘라에게서는 뜻밖의 여린 면모가 드러나고, 뇽오가 맡은 카디자는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재치와 여유를 보여준다. The 355가 현대 첩보 스릴러의 매력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번뜩이는 장면들은 정형화된 액션 장면과 뻔한 반전에 지나치게 기대는 각본에 묻힌다. 파리에서 런던으로, 모로코를 거쳐 상하이로 이어지는 세계 일주식 이야기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각 장소는 이야기의 필수적인 일부라기보다 목록에서 하나씩 지워 나가는 체크 항목처럼 느껴진다. 긴 설명 장면들이 속도감을 떨어뜨리면서, 박진감 넘쳐야 할 대목의 리듬도 고르지 못하다.

영화의 가장 큰 실책은 출연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차스테인의 활용도가 아쉽다. 메이스는 진부한 한 줄 대사와 깊이 없는 인물 설정에 발목이 잡혀, 입체적인 주인공이라기보다 액션 피겨처럼 보인다. 크루거가 맡은 마리 슈미트는 냉혹하고 유능한 면모를 한껏 드러내는 장면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내실보다 볼거리를 우선하는 각본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상은 무난하지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킨버그의 연출에는 소재를 한 단계 끌어올릴 만한 감각이 부족하고, 액션 장면 상당수는 흔들리는 카메라와 빠른 편집에 의존해 화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따라가기 어렵다. 사운드트랙은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오래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에너지가 넘쳐야 할 영화가 또 하나의 기회를 놓쳤다.

결국 The 355는 잠재력을 온전히 펼치지 못한 첩보 스릴러다. 오늘날 활약하는 최고의 여배우들을 한데 모아 놓고도, 진부하고 금세 잊히는 각본에 이들의 재능을 낭비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국제적인 여성 요원들이 힘을 합쳐 전 세계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설정은 흥미롭고 시의적절하다. 다양한 인물의 재현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제목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여성 스파이가 사용한 암호명 ‘에이전트 355’에서 따왔다. 이 제목은 역사 속 첩보 활동에서 여성이 맡아 온 역할을 깊이 있게 탐구하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하지만 The 355는 이처럼 풍부한 함의를 좀처럼 파고들지 않는다.

대신 미션 임파서블과 아토믹 블론드를 섞은 듯한, 이미 성공한 첩보 프랜차이즈의 짜깁기에 가까운 피상적인 서사에 머문다. 섬세함이나 스타일은 따라오지 못한다. 유머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극적인 순간에도 감정의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어야 할 액션 장면조차 독창적인 안무나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 부족해 힘을 잃는다.

여성의 주체성과 국제 협력이라는 주제 역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다. 서로 다른 나라와 배경을 지닌 여성들이 힘을 합쳐 세계를 구한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만, The 355는 이들의 관계가 지닌 복잡성을 끝내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인물들은 입체적인 개인이라기보다 희화화된 유형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 관객이 이들의 고투나 성취에 몰입하기 어렵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아토믹 블론드 같은 앙상블 첩보 영화와 비교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지만, The 355에는 이들 작품의 매력과 짜임새가 부족하다. 장르 안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도 실패한다. 액션과 코미디, 드라마를 결합하려 하지만 어느 한 분위기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탓에 영화 전체의 톤이 일관되지 않다.

그렇다고 The 355에 빛나는 순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뇽오가 연기한 카디자와 크루스가 맡은 그라시엘라의 호흡은 짜릿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차갑고 계산적인 첩보 세계에 온기와 진정성을 더한다. 판빙빙이 연기한 린미셩 역시 신비롭고 세련된 분위기로 후반부 장면에 힘을 보탠다.

영화는 통제되지 않은 기술 권력의 위험성이나 전 세계적인 감시가 낳는 윤리적 딜레마처럼 시의성 있는 주제도 다루려 한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은 대개 익숙한 액션 장면을 앞세우느라 겉핥기에 그친다. 이 문제들을 더 깊이 탐구했다면 The 355에 꼭 필요했던 날카로움을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객층을 고려하면 The 355는 빠른 전개와 세계 곳곳을 누비는 스릴러를 즐기는 이들을 겨냥한 듯하다. 하지만 비슷한 작품들이 선사하는 수준의 흥분과 독창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늘어지는 전개와 기억에 남는 장면의 부재 탓에, 가볍게 즐기려는 관객에게도 쉽게 잊힐 만한 영화다.

결국 The 355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작품이다. 훌륭한 출연진, 긴박한 설정, 세계를 누비는 이야기까지 훌륭한 첩보 스릴러를 만들 재료는 모두 갖췄지만, 끝내 하나로 어우러지지 못한다.

출연진

사진: The Movie Database (TMDB)

태그: , , , , ,

Google에서 추가하기

토론

댓글 0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