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발레리나〉: 화려한 액션에 가려진 얕은 복수극

Alice L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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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현 감독의 발레리나는 움직임과 위협이 소용돌이치는 장면으로 막을 연다. 전종서가 연기하는 장옥주는 전직 경호원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해, 무용수의 정밀함과 포식자의 치명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거미처럼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는 그의 몸은 언제든 덮칠 태세로 팽팽하게 긴장돼 있다. 강렬한 도입부는 서울 범죄 세계의 밑바닥으로 향하는 짜릿한 여정을 예고한다.

발레리나는 세련됐지만 어딘가 공허한 액션 스릴러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촬영과 격투 장면의 안무에 있다. 전작 콜을 연출한 이충현 감독은 시각적으로 인상적이면서도 생생한 액션 시퀀스를 빚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빠른 컷과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촬영한 격투 장면은 쉴 새 없이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특히 옥주가 최 프로 일당의 아지트를 습격하는 장면이 돋보인다. 옥주는 잔혹할 만큼 효율적으로 부하들을 제압하고, 카메라는 치명적인 발레의 파트너처럼 혼란 속을 누빈다. 어둑한 조명은 폭력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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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발레리나는 번지르르한 겉모습 아래 깊이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야기는 익숙한 복수극이다. 성매매 인신매매범 최 프로 때문에 자살에 내몰린 절친 최민희를 위해 옥주가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전종서가 혼신의 연기를 펼치지만, 이야기의 감정적 중심은 충분히 다져지지 않았다. 옥주의 슬픔과 분노는 생생하게 전해지지만, 영화는 그의 내면이나 민희와의 관계를 깊이 파고들지 않아 두 사람의 유대가 온전히 와닿지 않는다.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웃고 늦은 밤 이야기를 나누는 짧고 단편적인 장면들로 우정을 엿볼 수는 있지만, 의미 있는 감정의 토대가 되기엔 이런 순간이 너무 드물다.

조연들의 활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 프로 역의 김지훈은 무난한 악역 연기를 보여주지만, 인물에는 입체감이 부족하다. 최 프로는 동기와 과거가 전혀 조명되지 않은 채 단선적인 포식자로 그려진다. 박유림이 연기한 민희의 비중은 더 제한적이다. 대부분 회상 장면에만 등장해 뚜렷한 인상을 남길 기회를 얻지 못한다. 성매매 인신매매와 착취, 여성의 상품화 같은 어두운 사회 문제를 다루려는 영화의 시도는 내용보다 스타일에 치중한 탓에 힘을 잃는다.

발레리나가 가장 크게 삐걱대는 지점은 속도 조절과 구성이다. 영화는 인물의 성장이나 주제 탐구에 시간을 들이지 않은 채 액션 장면에서 다음 액션 장면으로 서둘러 넘어간다. 도입부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지나고 나면 이야기는 익숙한 리듬으로 흘러간다. 옥주가 단서를 찾아내고, 또 다른 부하와 맞붙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 패턴은 반복될수록 힘이 빠지고, 대결 장면도 점점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충현 감독의 연출에 참신한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음향 설계가 눈에 띈다. 피해자들의 고통이 담긴 최 프로의 USB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나쁜 웅웅거림은 장면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불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반대로 옥주가 아파트에서 홀로 슬퍼하거나 거리를 누비며 먹잇감을 쫓을 때 들려오는 적막은 영화의 폭발적인 액션 장면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이런 요소들은 발레리나를 평범한 복수 스릴러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다만 서사의 허점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트라우마와 정의 같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흥미롭지만 결국 피상적인 수준에 머문다. 옥주의 복수는 단순한 도덕적 당위로 제시될 뿐, 그 과정이 옥주에게 남기는 심리적 대가를 거의 살펴보지 않는다. 최 프로의 범죄 조직 역시 온전히 구현된 세계라기보다 액션을 펼치기 위한 배경처럼 느껴진다.

장르적 성격을 보면 발레리나는 악녀나 아토믹 블론드처럼 스타일리시한 액션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을 겨냥한다. 빠른 편집과 네온빛 촬영,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전개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영화를 찾는 이들에게 잘 맞는다. 반면 주제를 섬세하게 파고들거나 인물을 깊이 있게 그려내길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전종서의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자산이다. 옥주 역에 강렬한 에너지를 불어넣고, 신체 표현과 폭넓은 감정 연기로 진정한 비애가 묻어나는 순간마다 영화에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그의 열연만으로 각본의 약점을 온전히 만회할 수는 없다.

결국 발레리나는 스타일에서는 빛나지만 내용에서는 비틀거리는 영화다. 인상적인 격투 장면과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액션 스릴러지만, 급하게 흐르는 전개와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은 주제 탓에 공허한 인상을 남긴다. 어두운 사회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는 흥미롭지만 결국 표면에 그치고, 감정적 중심도 기대만큼 깊은 울림을 전하지 못한다.

세련된 액션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발레리나에서 만족스럽지만 익숙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주제를 더 깊이 있게 탐구하거나 인물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을 기대한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MCM 평점: 5.7/10 — 완성도 2 / 스토리 1 / 연기 2 / 독창성 1 / 장르 적합도 1.

출연진

사진: The Movie Database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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