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디지털 호랑이로 믿음의 본질을 묻는 보기 드문 걸작이다

이안 감독이 2012년 얀 마텔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Martha O'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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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안 감독이 2012년에 내놓은 영화로, 얀 마텔의 부커상 수상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은 2001년에 나왔고 이듬해 부커상을 받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각색은 〈네버랜드를 찾아서〉와 〈미스 페티그루의 하루〉처럼 20세기 전반의 영국을 무대로 한 영화를 써 온 미국 작가 데이비드 매기가 맡았다. 주인공 파이 패텔은 인도 퐁디셰리 동물원 관리자의 아들이다. 배가 난파한 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벵골호랑이와 한 구명보트에 남겨진다. 원작 소설에서 그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227일을 표류한다.

이안은 한 가지 장르에 머물지 않는 감독이다. 가디언은 이안이 〈와호장룡〉의 중세 중국 무협에서 〈색, 계〉의 전시 상하이 스파이 스릴러로, 〈브로크백 마운틴〉의 서부극으로 옮겨 다니며 작품마다 문체를 바꾼다고 짚는다. 가디언은 그가 이미지에 까다로운 눈을 가졌으면서도 언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다고도 쓴다. 그에게 구명보트 위의 소년과 호랑이는 또 하나의 낯선 무대다. 가디언의 표현대로 로빈슨 크루소를 로렌스 스턴이 다시 쓴 듯한 어조가 환각적인 3D 화면과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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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 안의 또 다른 이야기다. 가디언에 따르면 작가 마텔로 짐작되는 캐나다인(레이프 스폴)이 몬트리올에 신을 믿게 만드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철학을 가르치는 어른 파이(이르판 칸)가 그에게 자기 삶을 들려준다. 이름부터 소동이 벌어진다. 가디언이 전하는 대로 파이의 본명 피신 몰리토르는 삼촌이 아끼던 파리의 수영장에서 따온 것이다. 학교 친구들이 이 이름으로 놀리자, 그는 그리스 문자이자 수학의 상징인 파이로 이름을 바꾼다. 같은 글에 따르면 파이는 다섯 살에는 가우탐 벨루르, 열두 살 무렵에는 아유시 탄돈, 열여섯 살에는 수라즈 샤르마가 연기한다. 원작에서 소년은 힌두교도이자 채식주의자로 자라다 열네 살에 기독교와 이슬람을 접하고, 세 종교를 모두 따르기로 한다. 부모는 난감해하지만 소년은 그저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다. 가디언은 아버지의 합리주의를 거부하는 이 과정을 영화가 존중 어린 재치로 다룬다고 평한다. 믿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설교로 흐르지 않는 것은 이 재치 덕분이다.

화면부터 말해야 한다. 필름 코멘트는 이안이 수년간 중간 수준의 무난함에 갇혀 있었다고 꼬집으면서도, 이 영화가 십여 년 만에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자 3D 덕분에 그의 경력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화려한 작품이라고 인정한다. 이 매체가 묘사하는 도입부는 기린, 원숭이, 분홍 홍학, 나무에 매달린 귀여운 나무늘보가 화면을 채우는 팝업북 같은 동물원이다. 가디언은 이 햇살 드는 동물원의 첫 장면과, 엔딩 크레디트 아래 바닷속에서 반짝이는 물고기와 항해의 흔적을 한 줄로 잇는다. 영화가 동물과 물의 이미지로 열리고 같은 이미지로 닫힌다는 말이다. 더 무비 엘리트는 배가 가라앉는 장면에 감탄하고, 바다 한가운데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마주하는 장면을 압도적이라고 평한다. 이 매체의 필자는 CGI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 영화의 호랑이를 보라고 권한다. 진짜 호랑이와 구별할 수 없었고, 가짜 티를 찾으려고 눈을 부릅떴는데도 그랬다고 한다. 컴퓨터로 만든 동물이 이만큼 믿을 만하니, 보트 위의 두 존재가 나누는 긴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사방이 물뿐인 무대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결국 인물 둘의 거리 감각이고, 그 거리가 살아 있어서 영화가 버틴다.

연기에 대한 평은 갈린다. 심바시블은 수라즈 샤르마가 좋은 연기를 했지만 감탄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며, 이런 이야기가 요구하는 만큼 주인공이 복합적인 인물은 아니라고 짚는다. 같은 글은 호랑이를 지나치게 의인화하지 않고 동물을 동물답게 그린 점은 높이 산다. 파이와 호랑이의 관계가 흥미롭다는 평가다. 나는 이 지적에 동의한다. 영화의 정서적 무게는 소년의 표정보다 호랑이와의 긴장에서 나온다. 철학 교사로 등장하는 이르판 칸은 몬트리올 장면에서 이 모험담을 되돌아보는 목소리를 맡아 이야기의 틀을 붙잡는다. 모험이 끝난 뒤에야 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그의 존재가 계속 상기시킨다.

더 무비 엘리트의 필자는 처음 40분 동안 이야기가 어디로도 나아가지 않는 것 같았고,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고 적었다. 주인공을 소개하는 데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파이가 호랑이와 단둘이 남겨진 뒤에는 영화가 속도를 얻는다는 데 같은 필자도 동의한다. 필름 코멘트는 한발 더 나아가 이 영화가 지나치게 무난해서 오히려 뒷맛이 개운치 않다고 한다. 이안의 노골적인 오스카 욕심과 ‘품격 있는’ 원작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태도가 끝내 놀라움을 막는다는 것이다. 심바시블은 영화가 때로 감상에 빠질 위험을 안았지만 이안이 마음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찾았다고 본다. 같은 영화를 두고 한쪽은 균형을, 다른 쪽은 안전한 계산을 본다. 나는 구명보트 위의 장면에서는 균형이, 길게 이어지는 도입부에서는 계산이 더 눈에 띈다고 느꼈다.

결말에서 영화는 같은 사건을 두 가지 버전으로 들려준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 끝내 못 박지 않고, 이야기를 믿는 일과 진실을 믿는 일의 차이를 관객 앞에 둔다. 심바시블은 이 두 겹의 결말이 깊이 있고 생각할 거리를 주며 정서적으로도 보답을 준다고 쓴다.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를 이야기의 기적 같은 성취이자 시각적 완성도의 이정표로 꼽았다.

흥행 성적도 이런 평가와 어긋나지 않는다. 심바시블에 따르면 영화는 전 세계에서 6억 달러 넘게 벌었고 아카데미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이안에게 두 번째 감독상을 안겼다. 앞 40분은 느리고, 주인공은 원작이 요구하는 만큼 입체적이지 않으며, 오스카를 노린 티는 끝까지 남는다. 그러나 구명보트 위에서 소년과 호랑이가 마주 선 순간부터 영화는 이 결점들을 덮고도 남을 만큼 힘 있게 나아간다. 두 버전의 이야기 앞에서 관객은 어느 쪽을 믿을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출연진

사진: The Movie Database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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