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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 아르테타, 22년 만에 아스널을 정상에 올린 감독의 다음 과제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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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 아르테타
미켈 아르테타
Photo: Prime Video AU & NZ /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82년 3월 26일
San Sebastián
직업축구 감독
우승 기록Premier League 2025 · FA Cup ×2 ·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2002 · UEFA 인터토토 컵 · 스코틀랜드 축구 리그 · League Cup ×2
개인 수상프리미어리그 시즌 최우수 감독 · FA 커뮤니티 실드

미켈 아르테타에게 최고의 시즌은 부다페스트에서 가브리엘 마갈량이스가 페널티 지점에서 돌아서며 끝난 최악의 밤으로 마무리됐다. 아스널의 다섯 번째 키커는 실축했고, 파리 생제르맹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지켜냈다. 구단의 오랜 잉글랜드 리그 우승 갈증을 풀어준 감독은 아스널이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친 채 푸슈카시 아레나를 떠났다. 불과 2주도 지나지 않아 그는 런던 콜니 훈련장에서 본머스가 맨체스터 시티와 비기며 자신의 팀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안겨주는 장면을 화면으로 지켜봤다. 두 결과는 모두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두 결과를 함께 놓고 보면 지금 아르테타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스널이 믿어주기를 바라며 오랜 세월 다져온 방식은 잉글랜드 무대에서 성과를 입증했지만, 유럽 무대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했다.

오랫동안 아르테타를 둘러싼 평가는 정반대였다. 아름답고 통제력 있는 팀을 만들고도 2위에 머무는 감독이라는 것이었다. 리그 우승으로 그 논쟁의 한쪽은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나머지 논쟁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아르테타도 이를 알고 있다.

이야기는 산세바스티안의 한 거리에서 시작된다. 아르테타는 1982년 3월 바스크 도시 산세바스티안에서 태어나 안티구오 지구에서 자랐다. 사비 알론소와 같은 거리에서 살았고, 어린 시절 오후에는 해변에서 함께 묘기를 부리며 보냈으며 주말이면 아마추어 유소년 클럽 안티구오코에서 뛰었다. 안도니 이라올라 역시 이곳에서 축구를 배웠다. 15세에 바르셀로나로 떠나 라 마시아에 들어갔다. 당시 라 마시아는 훗날 스페인 대표팀에서 모든 것을 이룬 패스형 미드필더들을 길러내고 있었다. 아르테타도 그들과 같은 스타일로 뛰었지만 대표팀에 진입한 경로는 달랐다. 유소년 대표로는 스페인을 위해 뛰었으나 성인 대표팀에서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 공백은 그의 기량 폭보다 당시 세대의 선수층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더 잘 보여준다.

바르셀로나는 아르테타를 파리 생제르맹으로 임대 보냈고, 그는 그곳에서 인터토토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레인저스에 매각된 그는 글래스고에서 보낸 첫 시즌에 스코틀랜드 리그와 리그컵을 모두 제패했다. 레알 소시에다드로의 복귀는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2005년 1월 에버턴에 임대로 합류한 뒤 완전 이적했고, 그곳에서 잉글랜드 축구계가 그를 알게 됐다. 체구는 작지만 정교한 미드필더로 경기의 속도를 조율했고, 구단 올해의 선수로 두 차례 선정됐다.

아스널은 2011년 8월 이적시장 마감일에 그를 영입했다. 팀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주장 완장을 찼고, 선수로서 FA컵에서 두 차례 우승한 뒤 2016년 은퇴했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생각은 분명했다. 곧장 맨체스터 시티로 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수석코치가 됐다. 그곳에서 보낸 세 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 우승 두 차례와 FA컵, 리그컵 두 차례 우승을 도왔고, 훗날 자신의 팀을 규정하게 될 포지셔널 플레이의 원칙을 익혔다.

아스널은 2019년 12월 그를 감독으로 다시 데려왔다. 3개월 뒤인 2020년 3월, 그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첫 프리미어리그 감독이 됐다. 이 사례는 리그 중단을 앞당기는 데 영향을 미쳤다. 축구가 재개된 뒤 그의 팀은 FA컵 결승에서 첼시를 꺾었고, 아르테타는 아스널의 주장과 감독으로 모두 FA컵을 들어 올린 첫 인물이 됐다. 이후 몇 시즌은 더 험난했다. 8위에 그치면서 구단은 유럽 대항전 진출에 실패했고, 지지를 보내달라는 그의 호소는 많은 팬에게 구호처럼 들렸다. 아마존 다큐멘터리 시리즈 All or Nothing: Arsenal은 라커룸에서 한 그의 연설을 화면에 담아 지지자와 비판자 모두에게 이야기할 거리를 넉넉히 제공했다.

그다음에는 아쉬운 준우승이 이어졌다. 비판자들이 지금도 그의 이력을 들춰볼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대목이다. 2022-23시즌 아스널은 대부분의 기간 선두를 달렸지만 승점 84점으로 2위에 그쳤고, 맨체스터 시티에 5점 뒤졌다. 이듬해에는 승점 89점을 얻고도 2점 차로 우승을 놓쳤다. 그다음 시즌에도 리버풀에 이어 2위에 머물렀고,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PSG에 패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비판은 더 거세졌다. 아르테타의 팀은 세트피스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는 경기 통제가 소극적인 운영으로 바뀐다는 지적이었다. 2023년 11월 뉴캐슬전 패배 뒤 판정에 격앙된 반응을 보인 일은 그의 기록에 터치라인에서의 다혈질 기질까지 더했다. 비판의 일부는 타당했지만, 8위 팀이던 아스널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따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2025-26시즌은 가장 거센 비판에 답을 내놓았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마르틴 수비멘디, 스포르팅 CP에서 빅토르 요케레스,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에베레치 에제를 영입한 여름을 보낸 아스널은 승점 85점으로 맨체스터 시티를 7점 차로 따돌렸다. 2026년 5월 19일 맨체스터 시티가 본머스와 1-1로 비기면서 우승이 확정됐고, 아스널은 최종전에서 크리스털 팰리스를 2-1로 꺾은 뒤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무패 우승을 거둔 2003-04시즌 이후 아스널의 첫 리그 우승이었다. 아르테타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같은 시즌 아르테타는 두 차례 결승에서 패했다. 3월 리그컵 결승에서는 맨체스터 시티가 아스널을 2-0으로 꺾었고, 5월 30일에는 PSG가 카이 하베르츠의 5분 선제골을 따라잡아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이겼다. 리그 우승으로 아르테타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지만, 부다페스트에서의 패배는 다음 평가의 기준을 세웠다.

새 시즌은 아무것도 잃지 않은 것처럼 시작됐다. 아스널은 8월 카디프에서 열린 커뮤니티 실드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3-0으로 꺾었고, 모든 대회를 통틀어 7연승을 달린 뒤 9월 19일 브라이턴에 0-3으로 패했다. 과르디올라가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면서 아르테타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오래 재임한 감독이 됐다. 어린 시절 친구인 알론소는 이제 런던을 가로질러 첼시를 맡고 있다. 브라이턴전 패배 다음 주, 아르테타는 2030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도된 새 장기 계약 조건에 합의했다. 2027년 만료 예정이던 기존 계약을 대체하는 계약이다.

구단 밖에서 그는 조용히 지내는 편이다. 배우 로레나 베르날과 결혼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셋 있다.

아스널은 10월 10일 리즈 유나이티드전을 치르며 A매치 휴식기를 마친다. 리그 우승 트로피는 이제 벽에 걸렸다. 부다페스트에서 페널티킥 하나로 놓친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아르테타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지 결정할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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