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버네사 벨,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라는 꼬리표 뒤에 가려진 화가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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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네사 벨
버네사 벨
Photo: George Charles Beresford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879년 5월 30일
London, England, United Kingdom
사망1961년 4월 7일 (81)
직업화가, 디자이너

버네사 벨이 평생 그린 그림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작품은 거의 60년 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캔버스에 평평한 색면을 칠해 완성한 Abstract Painting은 영국 미술가가 그린 최초의 추상화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벨은 가까운 지인들 외에는 거의 누구에게도 이 작품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중은 그 대신 그를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이자 서식스의 한 농가에서 블룸즈버리 그룹 구성원들의 연애사가 이어지고 뒤바뀌는 가운데 중심을 잡아준 인물로 알았다. 두 가지 설명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함께 놓고 보면 한 세대에서 가장 대담한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을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서 조연으로 축소해버린다.

이제 그가 작업하던 방에서 그런 시각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Tate Britain은 덩컨 그랜트와 함께 사용했던 작업실을 찰스턴에서 런던으로 옮겨 재현한다. 두 사람이 걸레받이부터 천장까지 그림을 그려 넣은 이 농가의 작업실은 두 사람의 협업을 하나의 작품 세계로 다루는 첫 대규모 전시, Vanessa Bell & Duncan Grant: Inside Bloomsbury의 중심에 자리하게 된다. 이 전시의 전제는 벨을 옹호해온 이들이 수십 년간 주장해온 것과 같다. 그림이 그려진 문과 캔버스는 애초에 별개의 작업이 아니었다.

버네사 스티븐이 1879년 5월 30일 태어난 런던 켄싱턴 하이드파크 게이트 22번지의 집은 비평가이자 역사가였던 레슬리 스티븐 경의 소유였다. 양쪽 부모가 이전 결혼에서 얻은 이복형제자매들로 북적이는 집이기도 했다. 벨은 어릴 때부터 그림 수업을 받았고, 아서 코프 경의 미술학교에 다닌 뒤 1901년 왕립 아카데미 부설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존 싱어 사전트도 그곳에서 그를 가르쳤다. 아카데미식 교육은 기법을 익히게 해주었지만, 그림의 주제까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1904년 아버지의 죽음은 그 두 번째 요소를 제공했다. 스티븐 남매 네 명은 가족의 집을 팔고 블룸즈버리의 고든 스퀘어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남동생 토비가 케임브리지 친구들과 함께하던 목요일 저녁 모임은 동네 이름을 딴 블룸즈버리 그룹으로 발전했다. 말하는 사람보다 화가를 위한 모임을 원했던 버네사는 금요 클럽을 만들었다.

1907년 벨은 그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인 비평가 클라이브 벨과 결혼해 줄리언과 퀜틴 두 아들을 낳았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개방적인 관계로 바뀌었고, 끝까지 그 형태를 유지했다. 초기 캔버스는 색조가 절제되고 단정했다. 1909년 뉴잉글리시 아트클럽 전시에 걸린 Iceland Poppies는 월터 시커트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 1910년 로저 프라이가 마네, 세잔, 고갱, 반 고흐의 작품을 런던에 소개하면서 그런 단정함은 사라졌다. 1912년 무렵 그린 Studland Beach는 도싯 해안에서 보낸 가족의 하루를 몇 개의 평평한 색면으로 압축하고, 인물 여럿을 뒷모습으로 그렸다. 벨과 프라이는 1911년 튀르키예 여행 중 연인이 됐다. 1913년에는 벨과 프라이, 그랜트가 오메가 워크숍을 열어 새로운 양식으로 그림을 그린 가구와 직물을 판매했고, 사업은 1919년 문을 닫았다.

1916년 벨은 그랜트, 그리고 그의 연인 데이비드 가넷과 함께 이스트서식스주 퍼얼 인근 찰스턴으로 이사했다. 두 사람은 평화주의자였으며 징집을 피하려면 농장 일을 해야 했다. 그곳에 꾸려진 가족은 블룸즈버리의 기준으로도 파격적이었다. 클라이브 벨은 자기 삶과 연인들을 따로 유지했고, 그랜트는 버네사와 평생을 함께했다. 1918년 말 벨은 두 사람 사이에서 딸 안젤리카를 낳았지만, 안젤리카는 클라이브의 자녀로 자랐다. 1917년작 The Tub을 비롯해 이 시기 작품에는 실험적 시기의 단순한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난 뒤 벨은 관찰에 바탕을 둔 실내 풍경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여행에서 얻은 풍경화로 서서히 돌아갔다. 1922년 인디펜던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언니의 호가스 출판사를 위한 디자인 작업도 계속했다. 그중에는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의 표지도 있었다.

가장 야심 찬 공동 의뢰는 1932년 케네스 클라크에게서 들어왔다. 벨과 그랜트는 2년에 걸쳐 역사 속 여성들의 초상화가 담긴 50점의 접시, Famous Women Dinner Service를 그렸다. 그랜트는 유일한 남성으로 자기 얼굴을 작품에 끼워 넣었다. 이 세트는 개인 소장품으로 들어가 학자들의 시야에서 사실상 사라졌다가 2017년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이듬해 런던에서 전작이 공개됐다.

더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벨의 딸이 직접 들려준 이야기다. 안젤리카는 1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친아버지가 클라이브 벨이 아니라 덩컨 그랜트라는 사실을 듣지 못했다. 어머니는 두 남자 가운데 누구에게도 이 일을 꺼내지 말라고 했다. 1984년 출간된 Deceived with Kindness에서 안젤리카 가넷은 그 침묵을 솔직하게, 그리고 침묵을 지킨 어머니에게 별다른 애정을 보이지 않은 채 썼다. 이 회고록은 블룸즈버리 신화 속 온화한 모성상에 복잡한 층위를 더한다. 벨을 다루는 글이 그의 그림보다 사생활을 중심으로 맴도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그런 시선은 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작업실에 간직해둔 추상화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2년 뒤인 1973년, 화상 앤서니 도페이가 기획한 회고전에서야 처음 공개됐다. 후기 자연주의 작품은 오랫동안 가정용 장식품 정도로 취급됐다.

마지막 20년은 상실의 시간이기도 했다. 장남 줄리언은 스물아홉 살이던 1937년 7월, 스페인 내전에서 구급차를 몰다 목숨을 잃었다. 1941년 3월에는 버지니아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버네사는 작업에 더욱 몰두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랜트와 함께 찰스턴에서 몇 마일 떨어진 버윅 교구 교회의 벽화를 그렸다. 벨은 1961년 4월 7일 찰스턴에서 세상을 떠나 퍼얼의 세인트 피터스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랜트도 1978년 그의 곁에 묻혔다.

벨의 재조명은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덜위치 픽처 갤러리는 2017년 벨의 첫 주요 단독 전시를 열었고, 밀턴킨스의 MK 갤러리는 2024년 지금까지 열린 전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소개한 회고전을 선보였다. 영상 매체에서 벨은 대체로 언니의 이야기 주변에 머물렀다. 디 아워스에서는 미란다 리처드슨이, BBC 드라마 Life in Squares에서는 피비 폭스와 이브 베스트가 그를 연기했다. Tate Britain의 전시는 2026년 11월 12일부터 2027년 4월 11일까지 린버리 갤러리에서 열린다. 300점이 넘는 작품과 그 한가운데 놓인 찰스턴 작업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관람객 앞에 내놓는 것은 벨이 작업의 토대로 삼았지만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생각이다. 식사용 접시와 캔버스는 같은 생각을 담아낼 수 있으며, 그 둘을 모두 만든 여성은 가끔 그림을 그리는 장식가가 아니었다. 벨이 벽 쪽으로 돌려놓았던 추상화가 이제 벽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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