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유르겐 텔러, 누구도 완벽하게 찍지 않는 패션 사진작가

Penelope H. Fritz
Google에서 추가하기
유르겐 텔러
유르겐 텔러
Photo: Pascal Ferro /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64년 1월 28일
Erlangen, Bavaria, Germany
직업사진작가
수상시티뱅크 사진상 ·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인피니티 어워드, 특별 시상

몇 년에 한 번씩 누군가는 위르겐 텔러가 미술관으로 흘러 들어간 패션 사진가인지, 아니면 마크 제이콥스에게 사진을 의뢰받는 예술가인지 묻는다. 하지만 텔러는 어느 쪽이 정답인지 밝히는 데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강한 직광 플래시, 보정을 거부하는 태도, 인물들이 준비를 마치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하는 버릇은 사진 속 인물이 슈퍼모델이든 교황이든, 바이에른 숲을 걷는 자신의 어머니든 한결같이 드러난다. 후기 작업에서 달라진 것은 그 스타일에 그가 실어 나르는 무게다. 슬픔과 신앙, 아우슈비츠의 현장, 그리고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번져 보일 만큼 가까이에서 찍은 결혼 생활이 그 안에 담겼다.

그는 에를랑겐 근처 프랑코니아 지방의 마을 부벤로이트에서 자랐다. 그의 가족처럼 그곳의 많은 집안은 바이올린용 활과 브리지를 만들었다. 텔러도 그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나무 알레르기가 생겨 그만둬야 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마흔일곱 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상실은 이후 텔러가 만들어낸 거의 모든 작업의 밑바닥에 흐른다.

1964년 1월 28일 에를랑겐에서 태어난 텔러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뮌헨의 바이에른 주립 사진학교에서 공부했다. 이후 영어를 배워 스물두 살에 런던으로 건너갔는데, 독일 군 복무를 피하려는 이유도 일부 있었다. 카일리 미노그의 앨범 Let’s Get to It 아트워크 사진을 찍었고, 1991년에는 너바나의 Nevermind 투어에 동행하며 독일 곳곳에서 밴드를 촬영했다. 커트 코베인이 플라스틱 의자 더미 위에 몸을 뻗고 누워 있는 사진은 지금도 텔러의 이름과 가장 강하게 연결된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패션계가 그를 주목한 계기는 단 한 장의 표지 사진이었다. 1996년 《쥐트도이체 차이퉁 마가진》은 크리스틴 맥메너미의 누드 사진을 실었다. 가슴 위에는 하트 모양으로 “베르사체”라는 글자가 그려져 있었다. 업계를 겨냥한 농담이었지만, 정작 업계는 그 농담을 마음에 들어 했다. 1998년 봄 시즌에는 당시 텔러의 연인이자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베네치아 스콧이 킴 고든의 촬영을 의뢰했다. 두 사람의 협업은 2014년까지 이어지며 당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낳은 광고들을 만들어냈다. 사진가 자신과 나란히 선 신디 셔먼, 소피아 코폴라, 위노나 라이더, 마이클 스타이프, 그리고 2008년 거대한 마크 제이콥스 쇼핑백 밖으로 다리만 내민 빅토리아 베컴이 그 작업들에 등장한다. 제이콥스는 유명인도 상품처럼 포장돼 판매되는 현실에 관한 논평이라고 설명했다.

텔러는 헬무트 랭, 이브 생 로랑, 비비안 웨스트우드, 루이 비통, 셀린느와도 작업했다. 피비 파일로가 이끌던 셀린느에서는 2015년 봄 캠페인을 위해 당시 여든 살이었던 조앤 디디온을 촬영했다. 할리우드 잡지 표지 사진을 포함해, 그는 어떤 의뢰 작업에서도 사진을 보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상업 사진과 예술은 서로 다른 방에 놓인 적이 없었다. 스튜디오에 찾아와 일자리를 얻기를 바라던 젊은 모델들을 담은 사진집 Go-Sees는 1999년에 출간됐고, 2년 뒤 영화로 만들어졌다. 2003년에는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유명인 촬영에서 남은 컷들을 섞은 작업으로 시티뱅크 사진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샬럿 램플링과는 Louis XV를 만들었고, 이 책은 2005년 슈타이들에서 출간됐다. 카르티에 재단은 2006년 그에게 개인전을 열어줬고, 이듬해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우크라이나를 대표한 다섯 명의 예술가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뉘른베르크 미술아카데미에서 사진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독일어로 그의 성은 ‘접시’를 뜻한다. 그는 수년 동안 접시에 초상 사진을 인쇄하고, 촬영한 인물들에게 접시를 들게 해왔다. 큐레이터 프란체스코 보나미는 “그에게 접시는 입맞춤과 같다”고 썼다.

광고 지면과 미술관 벽 사이를 오가는 이런 자유로운 행보가 바로 비평가들이 그를 문제 삼는 지점이다. 런던 ICA에서 열린 2013년 회고전 Woo!를 리뷰한 아틀리스트는 비스듬한 구도와 과하게 번지는 플래시로 이루어진 그의 스냅사진 같은 스타일이 한때는 도발이었지만 이제는 무게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또 “문화의 진화로 한때는 사람을 성가시게 했던 것이 이제는 그저 유치하고, 심지어 진부하게 느껴지게 됐다”고 썼다. 이 비판에는 일리가 있다. 화려함을 꿰뚫기 위해 만들어진 스타일도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될 수 있고, 명품 브랜드들은 그런 ‘꿰뚫기’에 적잖은 돈을 지불해왔다. 다만 이 비판은 텔러의 작업이 언제나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그의 가족에 관한 것이었는지를 놓친다. 아버지의 무덤에서 벌거벗은 텔러를 찍은 사진, 어머니 이레네가 악어의 벌어진 턱 사이에 서 있는 모습, 그리고 2017년 영화에서 텔러가 연기한 투덜대는 프랑코니아식 분신 디터까지, 가족은 작품의 중요한 축이었다.

후기 작업의 전환점에는 도빌레 드리지테가 있었다. 텔러는 리투아니아 출신 예술가 드리지테와 2021년 결혼했고, 현재 두 사람은 창작 파트너로 함께한다. 런던 갤러리스트 세이디 콜스와의 앞선 결혼 생활은 2018년 끝났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에드가 있다. 딸 이기의 이름은 이기 팝에게서 따왔다. 2023년 12월에는 토마스 베스키가 텔러, 드리지테와 함께 기획하고 생 로랑의 후원을 받은 i need to live가 파리의 그랑 팔레 에페메르에서 열렸다. 생존 사진가가 이곳에서 전시한 것은 텔러가 처음이었다. 약 1,000점에 이르는 작품은 이후 2024년 4월까지 트리엔날레 밀라노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해 후반 에를랑겐 쿤스트팔레에서 열린 Where we come from은 텔러의 어린 시절 집과 드리지테의 고향인 카우나스를 나란히 놓았다.

지난 2년 동안 텔러는 초기 경력에서 거리를 두었던 주제들로 향했다. 바티칸의 요청으로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주데카섬의 여성 교도소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촬영했다. 드리지테, 출판인 게르하르트 슈타이들과 함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해방 80주년을 앞두고 기념관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 결과물인 Auschwitz Birkenau는 크리스토프 호이브너의 글을 곁들여 2025년에 출간됐다. 수용소 막사와 울타리, 주차 표지판, 기념품 가게를 기록한 448쪽 분량의 목록이다. 두 작업은 모두 2025년 10월부터 12월까지 아테네의 옛 플라스틱 공장 건물에 문을 연 오나시스 레디의 개관 전시 you are invited에 걸렸다. 가장 최근 연작인 Symposium of Love에는 그리스 해변에서 벌거벗은 텔러와 드리지테가 겹쳐진 노출 사진으로 담겼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들려주는 신화를 새롭게 읽어낸 작업이다. 텔러는 《데이즈드》에 “비극과 유머, 아름다움과 부조리까지 내 사진 안에 모든 것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

상업 작업도 멈추지 않았다. 2026년 1월 몽클레르는 릭 오웬스와 함께한 첫 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텔러가 촬영한 캠페인에서는 오웬스와 그의 아내 미셸 라미, 텔러와 드리지테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입을 맞춘다. 올여름 베를린 컨템포러리 파인 아츠에서는 Guten Morgen Sonnenschein을 선보였다. 매일 아침 텔러가 만드는 커피와 책, 미술 작품, 이기의 그림 가운데 하나를 짝짓거나 잠든 드리지테의 모습을 커피와 나란히 놓은 딥틱 연작이다. 이 연작은 11월 7일 파리 갤러리 수잔 타라시에브에서 개막해 2027년 1월 16일까지 이어진다. 수십 년 동안 슈퍼모델을 돋보이게 찍기를 거부해온 사진가는 결국 아침 커피 한 잔으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도 무엇 하나 말끔하게 정돈하지 않겠다는 똑같은 태도로 찍고 있다.

태그: , , , , ,

Google에서 추가하기

토론

댓글 0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