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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 쿠바르시, 19세에 월드컵 지켜낸 바르사 센터백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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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 쿠바르시
파우 쿠바르시
Photo: Bryan Berlin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2007년 1월 22일
Bescanó, Catalonia, Spain
직업프로 축구 선수
개인 수상FIFA 월드컵 · 올림픽 금메달 · FIFA 월드컵 신인상 · 라리가 · 코파 델 레이 · 스페인 슈퍼컵 · Premi Barça Jugadors

월드컵 결승전 대부분의 시간 동안 파우 쿠바르시는 La Masia에서 배운 대로 움직였다. 골키퍼에게서 공을 받아 빈 동료를 찾고, 다시 패스를 요청했다. Opta 집계에 따르면 이 경기에서 그보다 많은 패스를 성공시킨 선수는 브라질의 둥가뿐이다. 하지만 연장전 마지막 1분, 한 골 차 리드를 지켜야 하는 순간 낮게 깔린 크로스가 스페인의 골문 앞 6야드 구역을 가로질러 마르코스 세네시에게 향했다. 공을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침착한 선수로 칭찬받아 온 수비수는 다리를 뻗어 몸을 던졌다. 공은 골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스페인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장면은 그 몸을 던진 순간이다. 패스 기록보다 그 장면이 쿠바르시가 어떤 선수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더 잘 보여준다.

이 모든 일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쿠바르시는 지로나 외곽, 베스카노 시에 속한 작은 마을 에스타뇰 출신이다. 아버지 쪽 가족은 그곳에서 4대째 목공소를 운영해 왔다. 카탈루냐어를 쓰며 자랐고, 어린 시절 지로나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뛰다가 열한 살에 바르셀로나 아카데미로 옮겼다. 라민 야말과 같은 연령대였다.

그는 2007년 1월 22일 로베르트 쿠바르시와 글로리아 파레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들어가지 않은 가족 사업체 Fusteria Cubarsí는 1905년부터 마을에서 영업해 왔다. La Masia에서는 학교 수업이 그를 찾아왔다. Lleó XIII 학교 교사들이 오전 훈련이 끝난 뒤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진행했고, 쿠바르시는 경영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대학 입학시험을 치를 만큼 학업을 이어 갔다. 그는 공개적으로 말하는 일이 드물다. 파리 올림픽 당시에는 평생 카탈루냐어를 쓰며 살아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인터뷰를 피해 왔다고 털어놓았다.

1군의 부름은 사비 감독 체제에서 찾아왔다. 쿠바르시는 2024년 1월 Unionistas de Salamanca와의 Copa del Rey 경기에서 데뷔했고, 17세 생일을 하루 앞두고 Real Betis를 상대로 리그 첫 선발 출전을 했다. 7주 뒤에는 Napoli와의 Champions League 16강전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대회 데뷔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고, 대회 토너먼트에서 데뷔한 최연소 선수 기록도 세웠다. 5월 구단은 계약을 연장하고 바이아웃 조항을 5억 유로로 정했다. 주로 다른 구단들이 보라고 붙여 둔 액수였다.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은 그해 3월 콜롬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쿠바르시에게 스페인 대표팀 데뷔 기회를 줬다. 쿠바르시는 세르히오 라모스가 보유했던 기록을 깨고 스페인 성인 대표팀에서 뛴 역대 최연소 수비수가 됐다. 하지만 첫 좌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Euro 2024 예비 명단에 들었지만 대회 직전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고, 스페인이 자신 없이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대신 23세 이하 대표팀과 올림픽에 출전해 파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왔다. 프랑스와의 결승전은 연장전 끝에 승리했다.

그해 여름 한지 플릭 감독이 부임하면서 쿠바르시는 특급 유망주에서 팀의 고정 멤버로 자리 잡았다. 플릭이 이끄는 바르셀로나는 수비 라인을 높이 올린다. 이런 전술은 주저하는 센터백을 벌하고, 상대가 패스하기 전에 먼저 길을 읽는 선수에게 보상을 안긴다. 쿠바르시의 예측 능력은 이 전술에 꼭 들어맞았다. 그는 2025년 2월 Atlético Madrid와의 Copa del Rey 준결승 1차전에서 4-4로 비긴 경기 중 헤더로 구단 첫 골을 넣었다. 그 시즌 바르셀로나는 La Liga와 Copa del Rey, Supercopa를 제패했다. 2026년에도 리그 우승을 지켜냈고, 구단 전직 선수 협회는 그 시즌 쿠바르시에게 Premi Barça Jugadors를 수여했다.

그러나 같은 시즌에는 그의 침착함을 둘러싼 단순한 평가에 의문을 던지는 밤도 있었다. 2026년 4월 Atlético와 치른 Champions League 8강 1차전 홈 경기에서 쿠바르시는 최후방 수비수로서 훌리아노 시메오네를 넘어뜨렸다. 주심은 옐로카드를 꺼냈지만 VAR 판독실로 향한 뒤 판정은 레드카드로 바뀌었다. 훌리안 알바레스가 프리킥을 감아 차 넣었고, 바르셀로나는 0-2로 졌다. 엿새 뒤 마드리드에서 2-1로 이겼지만 한 골이 모자랐다. 플릭 감독과 구단은 VAR이 외면한 핸드볼 판정에 항의하고 UEFA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더 뼈아픈 해석은 쿠바르시 자신에 관한 것이다. 굳이 태클을 할 필요가 없는 선수라는 평판을 쌓아 온 수비수의 타이밍이 한 차례 어긋나면서 유럽 대항전의 승부가 결정됐다. 그 나이의 침착함은 어느 정도 평판에 기대고, 평판은 0.5초 만에 무너질 수 있다.

그 뒤 찾아온 여름은 그 평판을 다시 세웠다. 데 라 푸엔테 감독은 쿠바르시를 북미에서 열린 2026 World Cup에 데려갔고,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다. 쿠바르시는 프랑스와의 준결승을 거쳐 7월 19일 MetLife Stadium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결승까지 스페인의 대회 전 경기를 매분 소화했다. 페란 토레스가 106분에 골을 넣었고, 엔소 페르난데스는 이미 쿠바르시에게 파울을 범해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 뒤였다. 10대 수비수는 그날 밤 패스 121개를 성공시킨 데 이어, 우승 트로피를 스페인에 안긴 걷어내기까지 해냈다. FIFA는 그를 대회 최우수 영 플레이어로 선정했다. 야말과 함께 출전한 스페인은 월드컵 결승에 10대 선수 두 명을 내보낸 첫 팀이 됐다.

가을은 한결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어느 정도는 계획된 일이었다. 데 라 푸엔테 감독은 휴식을 주기 위해 10월 Nations League 대표팀 명단에서 쿠바르시를 제외했다. 10월 26일에는 런던에서 열린 Ballon d’Or 시상식에 참석하는 대신 집에 머물렀다. 그는 시상식에서 12위에 올랐다. 3년 연속 Kopa Trophy를 받은 야말은 수상 소감 중 자리에 없는 팀 동료를 언급했다. 자신이 받아야 할 상은 쿠바르시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쿠바르시는 이미 월드컵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 리그 우승 두 차례를 이력에 새긴 채 1월에 스무 살이 된다. 센터백으로서는 묘한 고민이 생길 만하다. 이제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해야 할까. 그는 올해 Golden Boy 최종 후보 가운데 유력한 수상 후보지만, 더 의미 있는 목표는 아직 퇴장 기록이 남아 있는 대회에 있다. 바로 플릭의 바르셀로나가 아직 우승하지 못한 Champions League다. 그에 앞서 10월 31일 Alavés와의 La Liga 경기로 국내 리그 일정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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