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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초 마레스카, 첼시를 떠나 스승 과르디올라의 자리를 물려받은 제자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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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초 마레스카
엔초 마레스카
Photo: Timfilbert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81년 2월 10일
Pontecagnano Faiano
직업축구 감독
우승 기록유로파리그 ×2 · EFL 챔피언십 2023-24 · UEFA 컨퍼런스 리그 2024-25 · 유럽 슈퍼컵 · 프리미어리그 2
개인 수상UEFA컵 · EFL 챔피언십 · UEFA 컨퍼런스 리그

거장의 뒤를 잇는 감독은 누구나 비교를 감수해야 한다. 엔초 마레스카(Enzo Maresca)가 물려받은 것은 조금 더 기묘한 비교였다. 한때 거장으로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메모하던 자신의 모습과 비교되는 운명이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그는 한 시대를 허물기 위해 영입된 외부인이 아니다. 그 시대가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의 방식으로 만들어졌음을, 그리고 열쇠 꾸러미를 건네듯 그 방식을 다음 사람에게 넘길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전직 수석코치다.

부임 후 첫 몇 주는 그 질문을 잠재우기는커녕 더 크게 만들었다. 시티는 그가 지휘한 프리미어리그 첫 다섯 경기에서 모두 이겼고, 선덜랜드를 8골 차로 꺾은 뒤 선두에 승점 3점 차로 앞섰다. 과르디올라 시대를 규정했던 중원이 해체되고 새롭게 짜이는 와중에 거둔 성과였다. 마레스카는 기록을 놓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선덜랜드전이 끝난 뒤 “경기에서 이기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한 그는 곧바로 “아직은 상당히 이른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특유의 신중함이었다. 그는 언제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긴 논리를 펼치는 쪽을 택했다.

그의 긴 논리는 이탈리아 남부 살레르노 인근의 마을 폰테차냐노파이아노에서 시작됐다. 1980년 2월 10일 태어난 그는 열한 살에 집을 떠나 AC 밀란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십 대 시절에는 칼리아리 유소년팀으로 옮겼다. 열여덟 살에는 당시 이탈리아 유망주라면 좀처럼 하지 않던 선택을 했다. 잉글랜드 2부 리그의 웨스트브로미치 앨비언과 계약한 것이다. 더 호손스에서 두 시즌을 보낸 뒤 유벤투스가 그를 영입했다. 토리노에서 2001-02시즌 세리에 A 우승 메달을 받았지만 출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진짜 배움은 볼로냐와 피아첸차 임대 생활에서 찾아왔다. 특히 피아첸차에서는 한 시즌 동안 미드필더로 뛰며 9골을 넣었다.

선수 마레스카를 빚어낸 팀은 세비야였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그는 2006년과 2007년 UEFA컵 2연패를 비롯해 2006년 UEFA 슈퍼컵, 2007년 코파 델 레이와 스페인 슈퍼컵을 차지한 팀의 일원이었다. 그 팀에는 세계적인 스타가 없었고, 스타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조직력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미드필더들,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에 기대지 않는 집단적 자신감으로 승리를 쌓았다. 후방 플레이메이커로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도, 메찰라로도 뛸 수 있었던 마레스카는 바로 그런 팀을 이루는 데 적합한 선수였다. 이후 올림피아코스, 구단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도운 말라가, 삼프도리아, 세리에 B 우승을 경험한 팔레르모를 거쳐 헬라스 베로나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리그 394경기에 출전해 49골을 넣었다. 이탈리아 대표로는 21세 이하 대표팀까지 모든 연령별 대표팀을 거쳤지만, 성인 대표팀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2017년 2월 은퇴한 그는 곧바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아스콜리의 코치로 일했고, 이후 세비야에서 빈첸초 몬텔라(Vincenzo Montella)와 다시 호흡을 맞춘 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마누엘 페예그리니(Manuel Pellegrini)를 보좌했다. 2020년 8월 맨체스터 시티는 엘리트 개발 스쿼드 지휘를 맡겼고, 23세 이하 팀을 이끈 유일한 시즌에 프리미어리그 2 우승을 차지했다. 이탈리아축구협회 지도자 교육기관인 코베르차노에서 쓴 논문 제목은 ‘Football and Chess’였다. 그는 2021년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인터뷰에서 논문의 요지를 이렇게 정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 선정과 전략입니다. 감독에게는 체스 선수의 사고방식이 중요합니다. 계획을 세우고, 상대의 대응을 연구하고, 말의 배치를 선택해야 하죠.”

첫 성인팀 감독직은 순탄치 않았다. 세리에 B로 막 강등된 파르마는 2021년 5월 그를 선임했지만, 성적 부진이 이어지자 그해 11월 경질했다. 마레스카는 자신의 축구 철학이 가장 잘 들어맞는 곳으로 돌아갔다. 2022년 6월 후안마 리요(Juanma Lillo)의 후임으로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Pep Guardiola) 코치진에 합류했고, 이듬해에는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제패한 팀의 벤치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그해의 경험은 이후 펼쳐질 일을 거의 모두 설명해 준다. 10년 동안 연구해 온 전술 모델이 가장 완성된 형태로 구현되는 모습을 내부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막 강등된 레스터 시티는 2023년 6월 그를 영입했다. 마레스카는 부임 후 첫 두 달 동안 구단 훈련장에서 생활했다. 팀은 리그 첫 네 경기를 모두 이겼고, 그는 그 시즌 8월과 10월, 12월, 이듬해 4월까지 네 차례나 챔피언십 이달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2024년 4월 26일 승격을 확정했고, 사흘 뒤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3-0으로 꺾으며 우승까지 차지했다. 마레스카 체제에서 레스터는 53경기 동안 103골을 넣었다. 그런 야심을 꺾어야 하는 리그에서, 시티의 축구를 빼닮은 경기를 펼쳤다.

첼시는 몇 주 만에 그에게 5년 계약을 제안했고, 첫 18개월은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듯했다. 첫 경기는 시티를 상대로 한 안방 0-2 패배였다. 이어 울버햄프턴 원정에서 6-2로 이겼고, 2024년 9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상을 받은 뒤 리그 4위로 시즌을 마쳐 구단을 챔피언스리그에 복귀시켰다. 2025년 5월 첼시는 컨퍼런스리그 결승에서 레알 베티스를 4-1로 꺾어 현재의 UEFA 주관 대회 세 가지를 모두 우승한 유일한 구단이 됐다. 두 달 뒤 뉴저지에서는 새로 유럽 챔피언에 오른 파리 생제르맹을 클럽 월드컵 첫 확대 대회 결승에서 3-0으로 물리쳤다. 미켈 아르테타(Mikel Arteta)는 당시 첼시를 리그 최고의 공격팀이라고, “압도적인 차이로” 그렇다고 평가하며 그 공을 감독에게 돌렸다.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건너뛰고 싶어 하는 대목은 결말이다. 우승을 안긴 방식은 동시에 마찰도 불러왔다. 첫 시즌에 팬들은 느리고 인내심을 요구하는 점유 축구에 불만을 나타냈고, 마레스카는 공개적으로 전술을 옹호해야 했다. 2025년 가을 내내 구단 수뇌부와의 관계는 악화됐다. 12월 에버턴을 2-0으로 꺾은 뒤에는 구단에서 보낸 지난 며칠이 “이곳에서 보낸 시간 중 최악의 48시간”이었다고 말했고, 2026년 1월 1일 결별이 발표됐다. 6개월 뒤 시티가 그를 선임하자 첼시는 “실망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마레스카의 “마음과 생각이 다른 구단, 다른 기회에 쏠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티는 첼시에 약 1,700만 파운드의 보상금을 지급했고, 마레스카는 전 소속팀과 별도의 개인 합의도 맺었다. 그는 “시즌 도중 첼시를 떠난 일이 혼란을 초래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개인보다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경력을 쌓아 온 제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그가 이제 앉게 된 자리는 과르디올라가 10년 동안 20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뒤 시티를 떠나면서 비었다. 2026년 5월 24일, 아스톤 빌라를 홈으로 불러 치른 경기가 과르디올라의 마지막 경기였다. 마지막 시즌에 리그컵과 FA컵을 차지했지만 리그 우승은 놓쳤고, 우승컵은 아스널에 돌아갔다. 마레스카는 6월 29일 3년 계약에 서명했다. 그는 “시티는 운영이 대단히 잘되는 축구 구단”이라며 “구단이 하는 모든 일에는 혁신과 계획, 분명한 목적이 담겨 있다. 감독에게는 꿈 같은 환경이다. 내가 맡은 일을 효과적으로 해내는 데 필요한 안정성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첼시의 입장문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말은 새 구단을 칭찬하는 동시에 전 소속팀에 대한 평가처럼 들린다.

그는 물려받은 유산을 박물관처럼 보존하려 들지 않았다. 과르디올라의 마지막 전성기 시티를 떠받친 미드필더 로드리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베르나르두 실바와 티자니 레인더르스, 니코 곤살레스도 팀을 떠났다. 반면 잉글랜드 국가대표 엘리엇 앤더슨과 아이유브 부아디가 합류했고, 이적시장 마감일에는 첼시에서 엔소 페르난데스를 1억 2,500만 파운드에 영입했다. 영국 이적료 기록과 같은 금액이었다. 마레스카는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페르난데스를 지도했고, 영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새 시티의 중원에는 이처럼 그가 첼시에서 함께했던 선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가장 분명한 신호다. 과르디올라의 모델을 유리장 안에 보존하기보다 자신에게 맞게 바꾸려는 의도다.

그가 선수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축구는 시티에서 배운 문법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억양을 담는다. 팀은 보통 4-3-3이나 4-2-3-1로 출발해 공을 소유하면 3-5-2로 바뀐다. 풀백 한 명이 안쪽으로 들어와 중원에 패스할 선수를 더한다. 공이 없을 때는 높은 위치에서 일대일로 압박하고, 압박이 풀리면 간격을 좁힌 4-4-2 대형으로 내려선다. 영국 언론은 이를 ‘마레스카볼’이라고 부른다. 그가 더하는 억양은 균형이다. 점유를 공격 수단으로만 쓰지 않고 수비 안정성을 지키는 방법으로도 활용한다. 마르첼로 리피(Marcello Lippi)와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페예그리니에게서 배운 점도 과르디올라에게서 얻은 것만큼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제자에게는 스승이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뜻이다.

터치라인 밖에서는 의도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을 한다. 마리아 헤수스 파리엔테(María Jesús Pariente)와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으며, 가족은 그의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레스카는 기자회견을 구조와 공간, 다음 상대에 관한 이야기로 채우는 편을 선호한다.

초반 순위표는 기대를 높이는 동시에 경고도 보낸다. 리그 5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더비에서 10명으로 치른 경기, 그리고 시티가 먼저 실점한 본머스전은 선수단이 압박 속에서도 그의 지시를 이미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짜 시험은 나중에 찾아온다.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와 봄철 리그 막바지 일정, 과거 과르디올라의 시티가 다른 팀들과 격차를 벌리곤 했던 시기다. 마레스카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나의 축구 철학을 배우고, 직접 뛰고, 가르쳐 왔다. 이번 시즌은 그 철학이 과르디올라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이제 마레스카의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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