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

40년 동안 예상 밖의 선택을 고집한 배우

Penelope H. Fritz

니콜 키드먼은 1967년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생화학 연구를 위해 그곳에 머무는 동안이었다. 네 살 때 가족이 시드니로 돌아왔고, 이후 그를 형성한 것은 호주였다. 아버지는 생화학자이자 임상심리학자였고, 어머니 자넬은 간호학 교수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발레, 마임, 연기를 훈련한 그녀는 사춘기에 내성적이었고, 유독 키가 컸으며, 첫 키스는 무대 위에서 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십대 중반부터 호주 영화와 TV에 출연했고, 스물한 살에 요트 위 공포를 거의 혼자 지탱한 스릴러 『Dead Calm』(1989)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할리우드, 그리고 결혼

『Dead Calm』이 할리우드에 닿아 『데이즈 오브 선더』(1990) 출연으로 이어졌고, 그 촬영장에서 톰 크루즈를 만나 같은 해 결혼했다. 두 사람은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1999) 등 여러 작품에서 함께했다. 이 영화의 촬영을 위해 런던에 18개월 체류해야 했고, 큐브릭은 개봉 전 사망했다. 처음에는 불투명하고 과잉 통제된 작품으로 무시됐지만, 이후 욕망과 결혼에 관한 큐브릭의 가장 엄밀한 탐구로 재평가됐다.

2001년 이혼 후, 그녀는 예술적 명성을 구축한 일련의 선택을 시작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 루즈!』(2001)에서 전례 없는 맥시멀리스트 뮤지컬 속 죽어가는 고급 창부를 연기했고, 『디 아워스』(2002)에서는 의지(義肢)와 의도적으로 감정을 눌러담은 연기로 버지니아 울프를 구현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절제의 미학

2010년 『래빗 홀』은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 역으로, 커리어에서 가장 절제된 연기 중 하나로 꼽힌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관객이 감내하기 힘든 장면들이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그녀의 TV 전환은 어쩌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호(弧)일 수 있다. 리스 위더스푼과 공동 제작한 『빅 리틀 라이즈』(2017)는 프리미엄 한정 시리즈가 극영화 수준의 연기를 담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에미상 두 개를 받았고,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이후 참조해온 하나의 형식을 만들어냈다.

캐스팅 논란이 남긴 질문

루실 볼을 연기한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2021)은 네 번째 아카데미상 후보를 안겼지만, 동시에 격렬한 공개 논쟁을 불렀다. 키드먼의 길고 유럽적 풍모가 볼의 따뜻하고 코믹한 인상과 너무 달랐다는 비판은 정당한 물음을 품고 있었다. 변신 연기는 신체적 불일치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그 논쟁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작업에 밀착해온 감독들과 비평가들은 그 연기를 정밀하고 형식적으로 일관된 탐구로 읽는 경향이 있다. 반면, 그 방법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똑같은 연기를 차갑거나 접근하기 어렵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 간극은 연기 자체만큼이나 기대의 구조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다음

Nicole Kidman in Mongkok (2024)

2024년, 할리나 레인 감독의 『Babygirl』에서 젊은 인턴과 내밀한 관계를 갖는 CEO를 연기해 베네치아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해 미국영화연구소(AFI)로부터 평생공로상을 받았는데, 호주 배우로는 최초였다. 시상식 도중 어머니 자넬 앤 키드먼이 시드니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상실 이후, 그녀는 데스 둘라 훈련을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삶의 마지막 과정을 곁에서 함께하는 실천자가 되려는 것이다. 2026년 3월에는 프라임 비디오 시리즈 『Scarpetta』가 공개됐고, 2026년 9월에는 산드라 불록과 다시 만나는 『프랙티컬 매직 2』가 예정돼 있다. 그녀가 다음에 무엇을 선택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리라는 점은,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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