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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비 알론소, 레버쿠젠을 무패로 이끈 감독이 이제 첼시를 설득해야 하는 이유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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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비 알론소
샤비 알론소
Photo: DONOSTIA KULTURA /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81년 11월 25일
Tolosa
직업축구 감독
우승 기록챔피언스리그 · DFB-Pokal 2024
개인 수상스포츠 공로 왕립 훈장 금메달 · 란 오나리

사비 알론소(Xabi Alonso)는 축구 인생 내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말을 들어야 했다. 활동량을 킬로미터로 재던 이들은 미드필더였던 그가 많이 뛰지 못한다고 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7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감독으로서의 입지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젊은 감독 알론소가 작고 인내심 있는 팀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이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매번 답은 같은 곳에서 나왔다. 남들보다 1초 먼저 경기장을 읽는 능력, 그리고 바로 그 1초를 중심으로 팀을 세우려는 고집이었다.

첼시에서 마주한 과제는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더 어렵다. 막대한 돈을 쓰고도 안정된 팀을 꾸리지 못했고, 프리미어리그의 어떤 라이벌보다 빠르게 감독을 갈아치워 온 구단에 부임했기 때문이다. 런던 서부에서 보낸 첫 몇 주 동안 짜릿한 승리와 더비 패배, 무승부, 완패가 이어졌고, 팀은 리그 경기마다 두 골 이상을 내줬다. 한때 좀처럼 지지 않는 팀을 만든 감독은 이제 첼시 선수들에게 무너지지 않는 대형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칠 방법을 찾고 있다.

사비에르 알론소 올라노는 바스크 지방 기푸스코아주의 도시 톨로사에서 태어나 축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 페리코 알론소는 미드필더로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바르셀로나에서도 뛰었다. 사비 알론소가 흡수한 바스크 축구 문화는 공동체적이고 실용적이었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의 스타 중심 체제보다는 협동조합에 가까웠고, 팀을 재능 있는 선수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먼저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레알 소시에다드 유소년 아카데미를 거쳐 에이바르에서 성장에 중요한 임대 생활을 보냈고, 산세바스티안으로 돌아와 레알 마드리드와 끝까지 우승 경쟁을 벌인 팀의 지휘자가 됐다. 그 팀은 2002~03시즌 라리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알론소는 주변 선수들과는 다른 속도로 경기를 풀어갔다. 공을 잡으면 서두르지 않았지만 머릿속 판단은 빨랐고, 수비 상황을 공격 상황으로 바꿔놓는 긴 대각선 패스를 늘 노렸다.

리버풀은 2004년 1,070만 파운드에 그를 영입했고, 라파엘 베니테스는 알론소를 중심으로 팀의 패스 전술을 구축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유럽 축구 역사상 가장 기묘한 밤 가운데 하나의 주인공이 됐다. 이스탄불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리버풀은 전반을 마쳤을 때 AC 밀란에 0-3으로 뒤지고 있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빠르게 두 골을 만회했고, 리버풀이 페널티킥을 얻자 알론소가 키커로 나섰다. 디다가 슈팅을 막아냈지만 알론소는 튀어나온 공을 다시 골문에 밀어 넣어 3-3 동점을 만들었다. 리버풀은 승부차기에서 이겼다. 이듬해에는 FA컵 우승도 더했다. 결승전은 발목 부상을 안은 채 마쳤다.

레알 마드리드는 2009년 알론소를 영입했다. 다섯 시즌 동안 그는 속도감 있는 팀의 템포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미 케디라와 함께 수비진 앞에 자리 잡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는 알론소의 패스가 열어젖힌 공간을 파고들었다. 2011년 코파 델 레이, 2011~12시즌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그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승점 100점을 기록했다. 2014년 구단은 마침내 통산 열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뤘지만, 알론소는 리스본에서 열린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준결승전에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슬라이딩 태클을 해 받은 경고로 결승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알론소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옮겼고, 펩 과르디올라는 그의 넓은 패스 범위를 중심으로 미드필드 일부를 다시 짰다. 알론소는 세 시즌 동안 분데스리가 우승을 세 차례 차지한 뒤 2017년 은퇴했다. 과르디올라 밑에서 보낸 시간은 우승 트로피만큼이나 그 이후의 행보에도 중요했다. 알론소는 그 기간 감독이 한 주의 훈련과 선수단, 전술적 구상을 어떻게 조직하는지 지켜봤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A매치 114경기에 출전해 2008년 유럽선수권,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2012년 유럽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유로 2012에서는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두 골을 넣어 2-0 승리를 이끌며 A매치 100경기 출전을 자축했다. 그 시절 그를 따라다닌 ‘기동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알론소의 실제 플레이보다 그 포지션을 평가하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줬다. 그는 자신이 움직일 필요가 없도록 공을 움직였지만, 당시 통계에는 그 능력을 보여줄 항목이 없었다.

그의 지도자 경력은 작은 무대에서 시작됐다. 2018년 레알 마드리드 14세 이하 팀을 맡았고, 2019년부터는 고향으로 돌아가 레알 소시에다드 B팀을 지휘했다. 2021년 5월에는 알헤시라스와의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예비팀을 이끌고 승리해 스페인 B팀으로서는 드문 2부 리그 승격을 이뤘다. 2022년 10월, 바이엘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 8경기를 치른 시점에 팀이 최하위에서 두 번째에 머물자 알론소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알론소는 팀을 6위까지 끌어올렸고 유로파리그 준결승에도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조제 무리뉴가 이끄는 로마에 두 경기 합계 한 골 차로 패했다.

그다음 시즌은 축구계의 기준점이 됐다. 레버쿠젠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해 바이에른 뮌헨의 11시즌 연속 우승을 끝냈고, 리그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28승 6무, 승점 90점이었다. 4월 베르더 브레멘을 5-0으로 꺾으며 우승을 확정했고, 이어 DFB-포칼까지 들어 올려 국내 대회 더블을 달성했다. 알론소의 팀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가다 갑자기 전방으로 속도를 높였다. 윙백과 유연한 스리백,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전진 패스를 할 수 있는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전술을 짰으며, 경기 막판 골로 무승부를 승리로 바꾸는 습관도 만들어냈다. 공식전 무패 행진은 51경기까지 이어졌고, 더블린에서 열린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아탈란타에 0-3으로 패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레버쿠젠은 그해 여름 독일 슈퍼컵도 우승했고, 다음 시즌에는 바이에른에 이어 2위로 마쳤다. 2025년 5월 알론소는 팀을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다음 행선지는 모두가 예상한 곳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2025년 5월 카를로 안첼로티의 후임으로 알론소를 선임했고, 그는 미국에서 열리는 클럽 월드컵에 맞춰 6월부터 팀을 이끌었다. 알론소가 지휘한 마드리드는 알힐랄과 비긴 뒤 파추카를 꺾고 준결승에 올랐지만, 파리 생제르맹에 0-4로 패했다. 2025~26시즌은 첫 14경기에서 13승을 거두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엘 클라시코에서 바르셀로나를 2-1로 꺾으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바로 그 엘 클라시코에서 알론소의 레알 마드리드 시절을 상징하는 장면도 나왔다. 후반 교체된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 공개적으로 항의하며 경기장을 걸어 나간 것이다.

겨울 들어 성적이 흔들렸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더비에서 2-5로 패했고, 셀타 비고와의 홈 경기에서도 졌다. 2026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수페르코파 결승전에서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에 2-3으로 패했다. 다음 날 구단은 알론소와 상호 합의로 결별한다고 발표했다. 선임된 지 233일 만이었다. 스페인과 영국 언론은 비니시우스와 페데리코 발베르데를 비롯한 주축 선수들과의 마찰을 보도했다. 알론소의 전 리버풀·레알 마드리드 동료였던 알바로 아르벨로아가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많은 관측자들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계획을 갈망하던 구단을 바꿔놓은 방식이, 이미 자신만의 계획이 있다고 확신하는 구단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알론소는 오래 쉬지 않았다. 첼시 역시 격동의 시즌을 보냈다. 엔초 마레스카가 1월에 떠났고, 후임 리엄 로세니어는 리그 5연패 뒤 4월 경질됐다. 팀은 9위로 시즌을 마친 뒤 FA컵 결승에서 맨체스터 시티에 패했다. 2026년 5월 17일 첼시는 알론소를 4년 계약의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계약은 7월부터 시작되며, 현 구단주 체제에서 다섯 번째 정식 감독 선임이었다. 부임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단에는 뛰어난 재능이 있고, 이 구단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습니다. 이제는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른 문화를 만들며,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출발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8월 24일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치른 첫 경기에서 주앙 페드루가 31초 만에 골을 넣었다. 프리미어리그 개막 주말 역사상 가장 빠른 득점이었다. 여름에 애스턴 빌라에서 영입된 모건 로저스도 풀럼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고, 첼시는 아르벨로아가 지휘하는 풀럼을 3-2로 꺾었다. 9월 6일 아스널전에서는 로저스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1-2로 패했다. 알론소가 지휘봉을 잡은 뒤 첫 패배였다. 헐과 2-2로 비긴 데 이어 9월 18일에는 브렌트퍼드에 0-3으로 패했다. 런던 서부 더비는 수비의 약점을 하나도 빠짐없이 드러냈다.

알론소의 반응은 단호했다. “지금 우리는 경기 내내 경쟁력을 유지할 만큼 꾸준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문제입니다. 정신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헐과 비긴 뒤에는 선수들이 좀 더 지루한 경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 통제를 강점으로 삼는 감독에게는 이례적인 바람이었다.

그가 앞으로 해내야 할 진짜 과제가 여기에 있다. 레버쿠젠에서 알론소는 계획이 필요하고 그 계획을 믿을 선수들이 있는 팀을 물려받았다. 마드리드에서는 이미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해 변화를 받아들일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선수들을 만났다. 첼시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젊고 몸값은 비싸지만 확고한 정체성이 없는 선수단, 그리고 전략을 바꾸는 것보다 감독을 더 자주 바꿔 온 구단주가 있다. 알론소가 가져오는 것은 선수 시절부터 그를 규정한 능력, 공이 뛰도록 공간을 조직하는 힘이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첼시가 누구에게나 좀처럼 내주지 않았던 자원이다.

브렌트퍼드전 패배 뒤 이어진 3주간의 A매치 휴식기는 알론소가 경기 일정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선수단과 제대로 훈련할 기회가 됐다. 앞으로의 몇 달은 무패 시즌을 설계한 감독이 더 어려운 무대에서 두 번째 팀의 구조를 세울 수 있을지, 그리고 감독을 그토록 자주 바꿔 온 구단이 이번에는 한 사람에게 일을 마칠 기회를 줄 수 있을지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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