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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맨’ 결말 해석: 프랭크 카터의 마지막 희생자가 왜 친아들인가

Liv Altman

더 위스퍼 맨은 괴물을 체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남자가 죽은 아버지의 집에 홀로 남아 사진을 손에 쥐고, 오직 아이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귀 기울이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제임스 애쉬크로프트(James Ashcroft)가 연출한 넷플릭스 각색판은 앨릭스 노스(Alex North)의 2019년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2시간 내내 연쇄살인범 수사물로 위장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야 진짜 공포는 언제나 가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낸다. 바로 아버지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들이다.

속삭임의 주인은 프랭크 카터(마이클 키튼, Michael Keaton)다. 한때 어린 소년들을 창가로 유인해, 숨결 하나에 문장 하나씩 그들의 삶을 앗아간 살인범.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연기한 은퇴 형사 피트 윌리스는 그를 잡은 사람이다. 그런데 애덤 스콧(Adam Scott)이 연기한 홀아비 소설가 톰이 아들 제이크를 데리고 소년들이 다시 사라지기 시작한 마을로 이사 오면서, 피트가 닫았다고 믿었던 사건이 다시 벌어지고, 소원해진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같은 방에 마주 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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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위스퍼 맨은 유령도 추종자도 아니다. 그는 프랭크의 아들이다. 프랜시스 카터 주니어(오언 티그, Owen Teague)는 마치 다른 아이가 그림을 집에 가져오듯 살인을 저지른다. 보여지고, 칭찬받고, 오직 잔혹함으로만 전해졌던 사랑을 얻기 위해서다. 형사 어맨다 벡(미셸 모너핸, Michelle Monaghan)과 함께 수사하면서 피트는 그 패턴이 유전적이며, 제이크가 최신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구조는 모든 것을 대가로 치른다. 프랜시스는 썩은 다락방 바닥을 뚫고 떨어져 생포되고, 벡은 칼에 찔렸지만 살아남았으나 평생 절뚝이며 걷게 된다. 피트는 끝내 살아남지 못한다. 손자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진정한 순간에 그는 제이크에게 도망치라고 외치고, 상처로 인해 숨을 거둔다. 단 10초 동안, 영화가 결코 될 수 없다고 단언했던 아버지가 되어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매듭을 조여온다. 철창 너머에서 프랭크는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자유를 바친 아들을 맞이한다 — 그리고 그를 정확히 자신의 피해자들을 죽였던 방식으로 죽인다. 셔츠를 얼굴에 덮어씌우고, 손으로 목을 조른다. 살인자의 마지막 희생자는 자신의 자식이었다. 애쉬크로프트는 관객들이 ‘하이파이브 순간’이 아닌 ‘회색 지대’에 남기를 바랐다고 말한 바 있으며, 영화가 마무리하는 두 번의 재회가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톰과 제이크는 피트의 집에서 서로를 치유하고, 프랭크와 프랜시스는 오직 죽음 속에서만 재회한다.

페이지 밖에서도 그것은 재회다. 더 위스퍼 맨은 1997년 이후 처음으로 드 니로와 키튼을 같은 화면에 담아냈다. 미국 영화계의 위협적인 얼굴들 중 두 거장이, 이제는 괴물을 사냥하는 자와 괴물 그 자체로 나뉘어 등장한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이다.

가장 오래 남는 이미지는 가장 작은 것이다. 톰은 제이크의 상상 속 친구 — 파란 점퍼를 입은 소녀 — 가 사진 속 실제 얼굴이었음을 깨닫는다. 여덟 살 아들이 아버지가 말할 수 없는 언어로 삼킨 슬픔이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반쯤 열린 문 — 덫이자 초대 — 은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 있는 자들을 향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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