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조쉬 하트, 닉스 53년 만의 우승을 만든 기록지 밖의 살림꾼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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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 하트
조쉬 하트
Photo: Erik Drost /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95년 3월 6일
Silver Spring, Maryland, United States
직업농구 선수
개인 수상NBA 챔피언 · NBA 컵 챔피언 · NCAA 챔피언 · 컨센서스 퍼스트팀 올-아메리칸 · 빅 이스트 올해의 선수상 · 줄리어스 어빙 상

NBA의 모든 수비팀은 어느 순간 조시 하트(Josh Hart)를 상대로 같은 도박을 해왔다. 외곽에서 그를 비워두고 도움 수비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선수 생활 대부분 동안에는 안전한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주어진 공간을 활용해 해내는 일은 계산에 넣지 못했다. 자신보다 큰 선수들 사이에서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고, 루스볼을 잡고, 상대 팀이 돌아서기도 전에 속공 패스를 던지는 일 말이다. 이제 뉴욕은 그가 이 모든 일을 해내며 우승을 차지했고, 올가을 닉스가 던지는 질문은 네 팀을 거치는 동안 줄곧 그를 따라다닌 질문과 같다. 가장 중요한 일들이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일일 때, 선수의 가치는 어떻게 매겨야 할까.

그를 알아보지 못한 건 일찍부터 시작됐다.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서 자란 하트는 워싱턴 일대 사립학교들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고, 지역 공립학교인 휘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시드웰 프렌즈로 전학했지만, 성적 때문에 농구를 계속하기 어려울 뻔했다. 학교는 그를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학생과 학부모들이 탄원서를 내면서 한 번 더 기회를 얻었다.

하트는 1995년 3월 6일 모지스와 팻 하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는 이미 스포츠계의 유명 인사가 있었다. 작은할아버지 엘스턴 하워드는 뉴욕 양키스 최초의 흑인 선수로 활약한 포수였다. 2012년 11월 빌라노바대 진학을 결정했을 때, 하트는 자신이 맡게 될 역할을 이례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했다. “결승 3점슛을 넣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할 때 리바운드를 잡으러 가고 루스볼을 향해 몸을 던지는 선수는 될 겁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요.” 지금 보면 선수 생활의 계획서처럼 읽힌다.

제이 라이트 감독이 이끌던 빌라노바에서 하트는 후보 선수로 시작했고, 2015년에는 빅이스트 토너먼트 최우수 선수로 뽑힌 최초의 벤치 멤버가 됐다. 이듬해에는 제일런 브런슨이라는 가드, 미칼 브리지스라는 윙과 함께 2016년 NCAA 전국 챔피언에 오른 팀의 선발 선수로 뛰었다. 4학년 때는 만장일치로 올아메리칸 퍼스트팀에 선정됐고, 빅이스트 올해의 선수상도 받았다. 빌라노바는 2022년 그의 등번호 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프로 무대에서의 행로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유타 재즈는 2017년 드래프트 전체 30순위로 그를 지명한 뒤, 같은 날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했다. 2년 뒤에는 10년 사이 가장 큰 트레이드 가운데 하나의 일부가 됐다. 론조 볼, 브랜던 잉그램, 드래프트 지명권과 함께 뉴올리언스로 건너가 앤서니 데이비스와 맞바뀌었다. 2022년 2월 뉴올리언스는 CJ 맥컬럼과의 트레이드로 그를 포틀랜드에 보냈고, 한 달 뒤 그는 워싱턴 위저즈를 상대로 44점을 넣었다. 지금까지도 개인 최다 득점이다. 포틀랜드는 2023년 2월 그를 닉스로 트레이드했고, 하트는 브런슨과 다시 한 팀이 됐다.

뉴욕에서 10대 때 스스로 설명했던 역할은 통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모습으로 이어졌다. 톰 티보도 감독은 하트를 코트에서 빼지 않으려 했다. 2024년 3월 골든스테이트를 상대로 한 승리에서 하트는 48분을 모두 뛰었고, 월트 프레이저와 제리 루카스에 이어 한 경기 전 시간을 소화한 세 번째 닉스 선수가 됐다. 2024-25시즌에는 출전한 77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서 평균 13.6점, 9.6리바운드, 5.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경기당 37.6분으로 리그 최다 출전 시간을 소화했고, 한 시즌 트리플더블 구단 기록도 세웠다. 2025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한 6차전 대승에서 트리플더블을 추가했다. 1972년 프레이저 이후 닉스 선수로는 처음 기록한 플레이오프 트리플더블이었다.

그런 출전 시간은 하트를 기용한 방식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티보도 감독의 과도한 주전 의존은 오랫동안 팀 안팎에서 불만의 대상이었고, 하트는 그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였다. 슛에 대한 의문도 사라지지 않았다. 상대 팀들은 계속해서 그에게 3점슛을 던지도록 내버려뒀고, 2025년 인디애나와의 동부 콘퍼런스 결승에서는 더 큰 라인업을 선발로 내보내기 위해 하트 자신이 벤치에서 시작하겠다고 요청했다. 닉스는 6경기 만에 시리즈에서 탈락했고, 며칠 뒤 티보도 감독은 경질돼 마이크 브라운 감독으로 교체됐다. 미디어 데이에서 새 감독 아래 후보 역할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하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빈정대듯 답했다. “선발로 못 뛰면 트레이드를 요청하겠죠.” 이어 덧붙였다. “마이크가 뭘 하고 싶든, 뭘 하고 싶지 않든 저는 괜찮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몸 상태였다. 2025년 7월 오른손 약지 수술을 받은 뒤, 하트는 11월 그 손가락에 신경 손상과 감각 저하가 생긴 채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슛을 던지는 손이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뜻밖이었다. 손가락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하트는 2025-26시즌 3점슛 성공률 41.3%를 기록했다. NBA 커리어 최고 기록이었다. 66경기 중 53경기에 선발로 나섰고, 뉴욕은 12월 NBA컵 우승을 차지했다. 클리블랜드와의 동부 콘퍼런스 결승 1차전에서는 부진한 흐름 속에 경기 막판 벤치로 물러났지만, 2차전에서는 플레이오프 개인 최다인 26점으로 응수했다. 2026년 6월 13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파이널 5차전에서 하트는 우승을 확정하는 경기에 39분간 출전해 13점을 넣고 팀 내 최다인 11리바운드를 잡았다. 닉스는 94-90으로 승리하며 53년 만의 우승을 차지했다. 하트와 브런슨, 브리지스는 NCAA와 NBA 우승을 모두 함께 경험한 최초의 선수 3인조가 됐다.

코트 밖에서 하트의 대중적 이미지는 농구와 크게 관련이 없는 부분이 많다. 2024년부터 브런슨, 맷 힐먼과 함께 진행해온 팟캐스트 Roommates Show는 이달 네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Mike and Ike는 경기 전 사탕을 즐겨 먹는 습관을 숨긴 적 없는 하트를 기려 2025년 그에게 ‘최고 캔디 책임자’라는 직함을 붙였다. 하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인이었던 간호사 섀넌 필립스와 2021년 마이애미에서 결혼했다. 두 사람은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으며 뉴욕주 해리슨에 살고 있다.

우승으로 그의 몸값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하트는 우승 반지를 끼고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 모양으로 땋은 머리를 한 채 2026-27시즌을 시작했다. 10월 9일 닉스는 하트, 칼앤서니 타운스와의 연장 계약 협상을 시즌 후반까지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하트의 올해 연봉은 2,090만 달러이며, 구단은 2027-28시즌에 약 2,240만 달러의 구단 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미디어 데이에서 하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별다른 진전도 대화도 없었기 때문에, 계약이 성사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계약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뉴욕이 우승 과정에서 보여준 만큼 그를 높이 평가하는지, 아니면 늘 박스스코어가 보여준 만큼만 평가하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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