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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공을 원하지 않는다 — 데샹의 마지막 팀은 당신이 공을 잃는 순간을 노린다

Jack T. Taylor

프랑스의 수비를 보면 그 질서를 우연으로 착각하기 쉽다. 열 명이 공 뒤에 좁게, 침착하게 서서 측면 수비수가 한 발 더 올라올 때까지 옆으로 돌리도록 내버려 둔다. 그 순간 공의 주인이 바뀌고, 킬리안 음바페는 이미 출발해 있다. 한 박자 일찍 한 명을 올려보낸 수비를 향해 내리막을 달린다. 그 0.5초, 점유가 뒤집히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디디에 데샹이 가장 무자비한 프랑스를 지어 올린 자리다. 다가올 한 달 전체가 그 위에 얹혀 있다.

이것이 늘 잘못된 이름표가 붙는 프랑스 축구의 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실리주의라 부른다. 더 나쁘게는 지루하다고 부른다. 마치 레 블뢰가 살아남기 위해 훈련받은 것처럼. 아니다. 그들은 매복을 위해 훈련받았다. 프랑스가 내려서는 건 당신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공간은 당신이 공을 빼앗으러 올라온 뒤에야 열리기 때문이다. 대형을 유지하면 그들은 그것을 깨려다 지친다. 대형을 늘여 놓으면 — 흘린 패스, 걷어낸 코너, 따냈다 잃은 스로인 — 세상 어떤 팀도 당신의 실수를 두 번의 패스와 한 번의 마무리로 그보다 빨리 바꾸지 못한다.

점유가 아니라 역습을 위한 26인

구성을 보면 의도가 설계도처럼 읽힌다. 음바페는 공이 없을 때도 높고 넓게 선다. 상설 출구이자, 상대가 측면 수비를 끝까지 올리지 못하는 이유다. 안쪽에서 데샹은 직전 발롱도르 수상자 우스만 뎀벨레를 미카엘 올리세, 스물한 살 데지레 두에와 돌려 쓴다. 모두 달리는 선수다. 뒤에서는 오렐리앙 추아메니가 중원을 닻처럼 붙들고, 서른다섯의 은골로 캉테는 아직도 누가 흘린 공이라 부르기도 전에 그 공에 닿는다. 척추는 한 시간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버틴다. 골문엔 마이크 메냥, 스물다섯에 이미 유럽 최고 수비수 반열에 든 윌리암 살리바, 그 옆에 쥘 쿤데. 경기를 지배하는 데 공은 필요 없다. 결정적인 패스 하나만 막으면 된다.

데샹은 떠난다, 그리고 떠나는 방식을 스스로 골랐다

벤치에서 맞는 네 번째 월드컵이자, 본인의 신호대로라면 마지막이다. 8강 진출자로 부임해 세계 챔피언으로 돌아왔고, 그날 밤의 경기력으로는 닿지 말았어야 할 결승을 승부차기로 내줬다. 14년. 나라 역사상 가장 길고 가장 많이 이긴 시대이자, 오래도록 가장 사랑받지 못한 시대였다. 그의 방식으로 이기는 일이 프랑스가 마땅하다고 믿는 축구와 끝내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대 뒤에서는 지네딘 지단이 기다린다. 대중이 몇 년째 바라온 낭만적 선임이다. 그래서 마지막 명단은 조용히 고집스럽다. 부진한 시즌 끝에 에두아르도 카마빙가를 빼고, 압박하고 공간을 파고드는 장필리프 마테타를 랑달 콜로 무아니보다 앞세웠다. 데샹은 가장 화려한 26인을 고르지 않았다. 한 가지 임무에 맞는 26인을 골랐다.

조별리그는 그 사상에 대한 시험이다

I조는 레 블뢰가 발끝으로 살그머니 들어오게 두지 않는다. 그게 흥미로운 지점이다. 대진이 이 팀이 다칠 수 있는 바로 그 자리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세네갈은 빠르고 강하며 스스로도 전환에 능하다 — 역습에 역습으로 맞받을 수 있는 상대다. 노르웨이는 28년 만에 엘링 홀란과 함께 돌아왔다. 낮은 블록이 가장 풀기 어려운 구체적 난제, 한 번의 방심과 등 뒤로 넘어오는 공 하나면 충분한 공격수다. 이라크는 조의 바나나 껍질, 더 낮게 내려서서 벽을 허무는 일을 프랑스에 떠넘기는 팀이다. 이것이 이번 달의 긴장이다. 상대가 공을 잃기를 거부할 때 이 프랑스는 어떤 모습인가. 올라와 빈틈을 드러내는 브라질과 콜롬비아를 상대로 그 사상은 완벽하게 돌아갔다. 조별리그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답은 늘 주장에게로 돌아온다. 세 번째 대회, 전성기에 두 번째 별을 좇는 사내다. 프랑스의 전환이 마지막으로 강팀을 갈가리 찢었을 때 그는 십 대였다. 어느 오후 아르헨티나를 끊어내려 90미터를 달린 소년. 그는 더 이상 뜻밖의 존재가 아니다. 그가 곧 계획이다. 프랑스의 한 달은 계획할 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는 0.5초에 얹혀 있다. 준비한 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0.5초다. 프랑스는 90분 동안 더 나은 팀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10초 동안 더 치명적인 팀이 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를 지루하다 부르는 누구도 끝내 인정하지 않을 만큼 멀리 데샹을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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