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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로이드, ‘샤이닝’의 소년이 생물학 교수가 되기까지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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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로이드
대니 로이드
Photo: Super Festivals from Ft. Lauderdale, USA /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72년 10월 13일
Illinois, United States
직업배우, 생물학 교수
대표작샤이닝, 닥터 슬립, Making 'The Shining'

수년 동안 공포영화 팬들은 스티븐 킹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샤이닝에 나온 그 아이는 대체 어떻게 됐을까? 인터넷은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돼지 농장을 한다, 아이가 여섯이다, 영화가 싫었고 인생을 망쳤다고 원망한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댄으로 불리는 대니 로이드는 대부분의 소문을 바로잡지 않고 내버려뒀다. 해명하려면 인터뷰를 해야 했고, 그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버룩 호텔 복도에서 카메라가 바닥 높이로 그를 쫓는 가운데 세발자전거를 타던 소년은 자라 켄터키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게 됐다. 다만 교실에서는 그 영화를 꺼내지 않는다.

시작부터 묘한 구석이 있었다. 로이드는 철도에서 일하던 아버지와 함께 일리노이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네 살 때, 아버지는 스탠리 큐브릭의 제작진이 연기 경험은 필요 없고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사이인 남자아이를 찾는다는 소식을 지역 라디오에서 들었다. 수십 년 뒤 로이드는 The Guardian에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늘 관심을 끌려고 뛰어다녔다고 하면서 제 사진을 보내셨어요. 사실 장난삼아 하신 것 같아요.” 오디션을 대여섯 번 보고 난 뒤, 큐브릭의 조수가 로이드의 다섯 번째 생일날 한창인 집에 전화를 걸었다. 훗날 감독은 소년의 집중력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1972년 10월 13일에 태어난 로이드는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주했을 때 다섯 살이었다. 촬영은 17주 예정이라고 들었지만, 장면을 거듭 촬영하는 큐브릭의 방식 탓에 거의 1년으로 늘어났다. 로이드는 줄거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그가 알기로는 호텔에 사는 가족을 다룬 드라마를 찍는 일이었다. 큐브릭의 조수였던 리언 비탈리는 로이드의 연기 코치이자 오랜 기간 가족의 친구가 됐고, 주변 어른들은 아이가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보지 않도록 신경 썼다. 웬디가 대니를 안고 호텔을 비명을 지르며 달리는 장면에서 셸리 듀발이 든 것은 사람 크기의 인형이었다. 로이드는 “스캣맨 크로더스가 도끼에 찍히는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촬영장에 아예 못 들어가게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고 말했다.

촬영장에서 기억하는 것은 소박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레이디 자매 역을 맡은 쌍둥이 리사와 루이즈 번스와 함께 먹은 땅콩버터 샌드위치, 큐브릭이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부활절 달걀 찾기, 실내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는 즐거움. “스탠리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저와 공놀이를 하고, 공을 주고받던 모습이 기억나요.” 아버지 잭 니컬슨의 무릎에 대니가 앉아 있는 장면에 관해 그는 2019년 Postmedia에 이렇게 말했다. “잭은 촬영 내내 지친 연기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냥 그 자리에 따라가고 있었죠.” 촬영이 끝나면 세발자전거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스태프도 있었다. “계속 기다렸는데, 끝내 오지 않았어요.”

그런 보호가 이 연기의 숨은 동력이었다. 샤이닝은 1980년 개봉해 위험에 처한 아이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영화가 됐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선 아이는 자신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로이드는 완성된 영화를 열 살이나 열한 살이 되어서야 봤다. 그는 “제가 샤이닝을 볼 때는 집에서 찍은 영상을 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무서워하는지는 알죠”라고 말했다. 화면에서는 끔찍한 비밀을 품은 소년의 침착함처럼 보이는 모습이 촬영장에서는 인내심 있는 어른의 말을 듣고 한 번씩 장면을 소화하던 다섯 살 아이의 모습이었다.

배역은 하나 더 있었다. 1982년 방영된 TV 영화 Will: G. Gordon Liddy에서 로이드는 훗날 워터게이트 사건의 공모자가 되는 인물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그 뒤로 오디션은 이어졌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일리노이주에서 먼 길을 가야 했다. 그는 “학교를 빠져야 했고 부모님도 일을 쉬셔야 했어요. 결국 별로 성과가 없었죠”라고 말했다. 열세 살이나 열네 살 무렵 연기를 그만뒀고, 부모도 말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무대에 자식을 세우는 분들이 아니었어요.” 큐브릭은 로이드를 잊지 않았다. 로이드 가족은 수년 동안 감독에게서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았고, 큐브릭은 로이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전화를 걸어 학교생활은 어떤지 물었다.

로이드를 둘러싼 전설은 그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전설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저주받은 아역 스타라는 신화에는 희생양이 필요하고, 로이드의 침묵은 상처의 증거로 읽기 쉬웠다. 사실은 훨씬 담담하다. 그는 대학 학비를 마련하려고 농장과 월마트에서 일했고, 자녀는 넷이며, 영화를 “좋은 경험이었어요. 좋은 기억으로 돌아보죠”라고 말한다. 배우들을 괴롭힌 감독이라는 큐브릭의 이미지에도 다른 면을 보탠다. 듀발과 니컬슨은 모두 이 영화가 경력에서 가장 힘든 촬영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고, 로이드의 기억이 그 사실을 지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출연진 가운데 가장 어렸던 로이드에게 같은 감독은 공을 주고받으며 놀아준 덩치 크고 수염 난 아저씨였다.

영화가 골칫거리가 된 곳은 교실이었다. 학생들은 로이드가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레드럼”이라고 속삭이곤 했다. 그는 “수업에 방해가 됐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출연 사실을 되도록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시작했죠. 교사는 교실을 통제해야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2019년 당시 그는 엘리자베스타운 커뮤니티 앤드 테크니컬 칼리지에서 10년 넘게 예비 의대생과 약대생, 간호학과 학생들에게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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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돌아가는 계기는 킹의 후속작에서 찾아왔다. 소설 Doctor Sleep이 2013년 출간되자 로이드는 New York Daily News에 “카메오 출연이라면 당연히 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책을 각색하던 마이크 플래너건은 트위터에서 로이드를 찾아 쪽지를 보냈다. 이완 맥그리거가 성인이 된 대니 토랜스를 연기한 2019년 개봉작 Doctor Sleep에서 로이드는 제이컵 트렘블레이가 연기한 소년에게 트루 낫이 다가오는 리틀 리그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으로 등장한다. 제작자 트레버 메이시는 Variety에 “그가 하루 촬영하러 돌아왔는데, 함께하게 돼 정말 기뻤습니다”라고 말했다. 로이드는 비탈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Filmworker에도 본인으로 출연한다.

요즘 대중과 만나는 자리는 1년에 몇 차례 열리는 공포영화 행사다. 그곳에서 로이드는 팬들이 자신보다 아는 게 더 많을 때가 많다고 인정한다. 그는 “저는 잡학 퀴즈 같은 건 잘 몰라요”라고 말했다. 2024년 7월, 듀발이 세상을 떠난 지 며칠 뒤 스티븐 킹 관련 팟캐스트 The Kingcast는 로이드를 게스트로, 플래너건을 공동 진행자로 초대해 큐브릭과 니컬슨, 듀발, 비탈리에 관한 이야기를 되짚는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새로운 작품 출연 소식은 없고, 로이드가 연기를 다시 하려 한다는 징후도 없다. 샤이닝은 35mm 필름 상영본으로 계속 극장에 걸리고, 새 관객이 생길 때마다 세발자전거를 타던 소년에 관한 오래된 질문도 되풀이된다. 로이드의 답은 The Guardian에 했던 말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 학교에서 시험지를 채점해야 하고, 아이들을 재워야 해요. 그저 평범한 일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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