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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 프랑스 대표팀 감독으로…5년간 모든 클럽 제안을 거절한 이유

Penelope H. F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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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
지네딘 지단
Photo: Hadi Abyar /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출생1972년 6월 23일
16th arrondissement of Marseille
직업축구 감독
우승 기록월드컵 · 유로 · 챔피언스리그 ×3
개인 수상월드컵 골든볼 · FIFA 올해의 세계 선수 · L'Équipe 챔피언 오브 챔피언스

금요일 밤, 스타드 드 프랑스는 어두운 정장을 입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 한 남자를 보러 온 관중으로 가득 찼다.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은 프랑스 대표팀 감독으로 처음 홈 관중 앞에 섰고,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선수 시절 마지막으로 맞붙은 뒤 베를린에서 퇴장당한 채 월드컵 트로피 앞을 지나쳤던 바로 그 팀이다. 마이클 올리세가 크로스바를 맞고 들어가는 프리킥을 꽂아 넣었고, 알레산드로 바스토니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경기 막판 다요 우파메카노가 퇴장당했고,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결과는 거의 중요하지 않았다.

지단은 5년을 기다렸다. 그는 그동안 여러 구단에서 제의가 왔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자신이 선수로서 프랑스에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겼던 대표팀 감독직만을 원했기 때문이다. 기다림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머리로 상대를 들이받은 일과 신문에 공개서한을 보낸 일처럼, 중요한 장면마다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곤 했던 축구선수는 이번만큼은 자신이 바라던 문이 열릴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야기는 마르세유 북쪽 외곽의 주택단지 라 카스텔란에서 시작된다. 지네딘 야지드 지단은 1972년 6월 23일, 알제리 카빌리 지역의 아그무네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칸은 그가 15세였을 때 유소년 아카데미에 받아들였고, 지단은 17번째 생일을 몇 주 앞둔 1989년 5월 낭트전에서 칸 소속으로 1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무용수 베로니크 페르난데스를 만나 훗날 결혼했다.

보르도는 1992년 지단을 영입했고, 그를 유럽 전역의 축구팬이 직접 보러 오는 선수로 키워냈다. 발바닥을 이용한 볼 컨트롤과 ‘마르세유 턴’으로도 불리는 360도 회전을 앞세워, 주변의 경기 흐름을 늦추는 듯한 플레이메이커였다. 보르도는 1996년 UEFA컵 결승에 올랐지만 바이에른 뮌헨에 패했고, 그해 여름 유벤투스가 지단을 데려갔다. 토리노에서 세리에 A를 두 차례 우승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두 번 진출했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레알 마드리드에 각각 패했다.

먼저 지단의 진가를 알아본 곳은 조국이었다. 1998년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서 그는 브라질을 상대로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 두 골을 넣어 3-0 승리를 이끌었고, 프랑스는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지단은 같은 해 발롱도르도 수상했다. 2년 뒤에는 프랑스가 유로 2000에서 우승하는 동안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포르투갈과 맞붙은 준결승에서는 골든골 페널티킥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2001년 지단을 스페인으로 데려오기 위해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인 7,750만 유로를 지불했다. 그 시절을 대표하는 장면은 한 시즌도 지나기 전에 나왔다. 200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잔디에 닿기 직전의 높이 뜬 공을 상대적으로 약한 왼발 발리슛으로 때려 바이엘 레버쿠젠의 골문을 열었다. 2003년에는 세 번째로 FIFA 올해의 선수에 뽑혔다.

지단을 우아함 그 자체로만 그리는 간결한 서술은 베를린에서의 일이 단 한 번의 실수였던 것처럼 치부한다. 그러나 기록은 그렇지 않다. 지단은 선수 생활 동안 14차례 퇴장당했다. 1998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푸아드 안와르를 밟아 퇴장당한 일도 포함된다. 그 징계로 대회 도중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그는 결국 그 월드컵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예술계도 이 반복되는 면모를 포착했다. 더글러스 고든과 필리프 파레노가 레알 마드리드의 비야레알전을 17대의 카메라로 동기화해 촬영한 Zidane: A 21st Century Portrait는 난투극 끝에 지단이 퇴장당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고 연장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의 가슴에 머리를 들이받은 뒤, 자신 없이 이탈리아가 승부차기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본 2006년 월드컵 결승전은 그가 은퇴를 발표한 지 불과 몇 주 뒤에 열렸다. 그런데도 지단은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탁월한 기량에는 다혈질 기질도 따라붙었다.

감독 경력은 조용히 시작됐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코치를 맡은 뒤, 구단 2군 팀인 카스티야를 지휘했다. 2016년 1월 구단이 그에게 1군 감독을 맡겼을 때, 이후의 성과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했고, 세 번째 우승은 키이우에서 리버풀을 꺾고 거뒀다. 2017년에는 스페인 리그 우승도 차지했다. 키이우 결승전이 끝난 지 5일 뒤 지단은 사임했다. 2019년 3월 복귀해 2020년 라리가 우승을 다시 거뒀고, 2021년 5월 두 번째로 팀을 떠났다. 이번에는 스포츠 일간지 AS에 공개서한을 보내 구단이 “내게 필요한 믿음을 더는 보여주지 않는다”고 밝히고, 자신의 경질을 둘러싼 이야기가 언론에 흘러나왔다고 비판했다.

그 뒤 지단은 멈춰 섰다. 5년 동안 어느 구단에도 몸담지 않았다. 디디에 데샹은 프랑스 대표팀 감독으로 14년째를 맞았고, 북미에서 열리는 마지막 월드컵까지 팀을 이끌었다. 프랑스는 준결승에서 스페인에 패했고, 마이애미에서 열린 3·4위전에서는 잉글랜드에 4-6으로 졌다. 2026년 7월 28일, 프랑스축구협회는 지단을 데샹의 후임으로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4년으로, 2030년 월드컵까지 이어진다. 취임식에서 그는 “저에게는 그동안 이어져 온 흐름이자 꿈입니다”라고 말했다.

초반 성적만 놓고 보면 거의 이상적이다. 킬리안 음바페는 9월 25일 튀르키예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음바페는 이 과정에서 무릎을 다쳤지만, 지단은 에메 자케 이후 1994년부터 프랑스 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래 부임 첫 경기에서 승리한 첫 감독이 됐다. 사흘 뒤 벨기에전에서는 교체 투입된 올리세가 자기 진영 안쪽에서부터 질주해 경기 막판 결승골을 터뜨렸다. 10월 2일 7만 7,118명의 관중 앞에서 이탈리아와 비긴 프랑스는 3경기에서 승점 7점을 얻어 네이션스리그 조 선두를 지켰다.

지단은 1994년 베로니크와 결혼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엔조, 뤼카, 테오, 엘리아즈 네 아들이 있다. 모두 축구를 택했다. 골키퍼 뤼카는 조부모의 나라인 알제리를 선택해 이번 여름 월드컵에서 알제리 대표팀으로 뛰었다. 아버지가 이끌게 된 대표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바로 그 대회였다.

벨기에는 10월 5일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프랑스와 맞붙는다. 이어 11월 12일에는 이탈리아 원정, 사흘 뒤에는 튀르키예와 홈경기가 예정돼 있다. 그 너머에는 유로 2028과 계약의 목표로 삼은 2030년 월드컵이 기다린다. 최고의 순간마다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곤 했던 지단에게 프랑스 대표팀 감독직은 팀에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한 가지를 요구한다. 바로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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