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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세이지는 ‘좋은 친구들’을 오페라가 아니라 르포로 찍었다

Veronica Loop

다른 아이들이 우주비행사를 꿈꾸듯, 헨리 힐은 갱이 되기를 꿈꿨고 영화는 오랫동안 그 꿈을 허락한다. 길 건너 창문에서 그는 폴리 치체로 패거리가 택시 정류장과 동네를 주무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운전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저 남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산다고 결론짓는다. 내레이션은 첫 화면부터 그의 것이다. 불편한 점은 영화가 그의 말에 거의 동의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다투는 것은 도덕이 아니라 톤이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니컬러스 필레지와 함께 쓴 각본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다. 필레지는 원작이 된 논픽션을 취재하며 실제 힐의 곁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그 출발점이 중요하다. 이것은 사건기자가 지은 마피아 이야기이며, 오페라라기보다 훌륭한 음반 컬렉션이 딸린 도청 기록처럼 흘러간다. 잔혹함과 화려함이 같은 화면을 나눠 가지며,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지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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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면이 곧 이 영화의 주제다. 스코세이지는 헨리와 캐런을 길에서 주방을 지나 코파카바나 안으로 데려간다. 건달에게 열리는 모든 문을 차례로 지나치는, 끊기지 않는 스테디캠 한 컷이다. 테이블 하나가 들려 나와 무대 앞에 놓일 즈음이면 유혹은 이미 완성돼 있다 — 캐런만이 아니라 관객의 것으로. 미하엘 발하우스의 카메라는 결코 멈추지 않고, 셀마 스쿤메이커의 편집은 헨리가 건너뛰고 싶어 할 바로 그 순간에 화면을 얼린다. 스타일이 곧 윤리다. 영화는 도취를 보여 주고, 이내 그것을 즐기는 당신을 붙잡는다.

조 페시의 토미는 짜깁기 영상이 사랑하는 배역이다 — 식당 장면, 그 «내가 웃겨?» 장면은 그 시즌에 개봉한 거의 모든 작품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 그리고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안겼다. 그러나 위협은 로버트 드 니로의 것이다. 그의 지미 콘웨이는 말하기보다 듣고, 어느 친구가 이제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야 더 싸게 먹히는지 계산하는 모습이 보인다. 레이 리오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로 중심을 잡는다. 당신을 끌어들일 만큼 매력적이고, 그가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두려워지게 할 만큼 공허하다. 로레인 브라코는 영화가 필요로 하는 두 번째 화자다 — 어쩌다 권총을 침대 협탁에 넣어 두고 그것을 일상이라 부르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사람.

노래들은 또 다른 화자다. 더 크리스털스, 크림, 롤링 스톤스, 시드 비셔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렁크와 냉동 창고에서 발견되는 시신 위에 깔리는 «Layla»의 피아노 코다 — 어느 곡도 아래에 분위기를 깔지 않고, 자신이 뒤따르는 장면에 주석을 단다. 스코세이지는 다른 감독들이 전지적 관현악을 쓰듯 팝 음악을 쓴다. 그래서 영화의 가장 추한 순간이 동시에 가장 역동적인 순간이 된다.

마지막 막은 화려함을 숙취와 맞바꾼다. 손댈 수 없어 보이던 패거리는 마지막 몇 달을 취한 채 편집증에 시달리며 하늘에서 헬리콥터를 살피며 보내고, 헨리는 교외의 증인 보호 속에서 이야기를 닫으며 그곳 스파게티 소스는 잘못 만들어졌다고 투덜댄다. 스코세이지는 관객에게 그에 대한 판결을 끝내 건네지 않는다. 그 거부야말로 영화가 여태 자기 자신과 다투는 지점이다. 도취와 후회가 같은 화면에 담기고, 어느 쪽이 이기는지는 당신이 헨리의 어느 문장에서 멈추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좋은 친구들’은 갱스터 영화가 여전히 자신을 견주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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